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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LAN Jan 07. 2022

여름날의 나무 그늘

초보 플로리스트가 만드는 감성 꽃말

동그라미 테이블과 작은 1인용 소파가 놓여있는

거실 한쪽 하얀 창가 앞자리에 앉으면

정지된 듯 보이는 아파트 숲과

조금 멀리는 지나가는 차들도 볼 수 있다.


안정감, 단조로움에 약간의 움직임이 함께하는

전망이어 간단하게 아침 먹기에도

오후에 커피 마시기에도 딱 좋아

언제부터인가 이 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다.


원형 테이블 위에는 몇 개의 작은 화분들과

테이블 양옆으로 중간 크기의 화분들까지 있어

눈이 편안해지는 최고의 자리이다.



딸아이가 성수동까지 가서 사다 준 소금 빵과

봉지 양송이 수프로 아침을 먹는 중

테이블 위 센터에 놓인 아스파라거스 나누스의

곧고 가는 줄기 따라 넓게 펼쳐진 푸른 잎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이중창을 뚫고 들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인지

넓은 상판을 얹어놓은 테이블의 불안정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낯선 경험에 한참을 바라본다.


4년 전 친구가 신랑 승진 선물로 보내 준

서양난 화분 한쪽에 심어져 있던

작은 포트 사이즈의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일 년쯤 지나 서양난이 과습으로 죽은 후

베란다 그늘에 두고 물만 가끔 주었는데 잘 자라는.


작년 1월 베란다 정리를 하면서

커다란 난 화분을 치울 겸 분갈이를 해 놓고 보니

토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섭생에 맞는지

목문 앞 테이블을 명당 삼아 일 년 만에 쑥쑥 성장해

테이블의 메인이 되어 초록으로 빛나고 있는.



하늘하늘한 잎은 잎을 가장한 줄기이며

작은 가시가 있어 부드러움에 훅 빠져 무심코

 만지다 보면 가시에 긁힐 수도 있는 반전의 식물.


여린 잎이 쉽게 시들 것 같지만

생각보다 하엽이 많이 생기지 않는 단단한 식물.


풍성하면서도 가벼워 보이는 수형이

다른 화분들과 함께여도 좋고 따로 두어도

한 공간을 충분히 채우는 든든한 식물.


키우는 4년 동안 하얗고 작은 꽃을 보여준 적이 없어

앙증맞은 이쁜 꽃 보게 되는 날을 기다리게 하는 식물


바람에 흔들릴 때의 살랑거림과

해 질 녘 그림자가 만들어주는 아련함도 함께 해 감성적이기까지 한 식물.


휘어진 줄기 사이사이로 조심스레 뻗어 나오는

여린 연둣빛 새잎이 반가웠던 오늘.


동네 걷기를 하다 동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친한 언니들과 오랜만에 카톡으로 안부를 묻던

지난 여름날의 맑은 아침이 문득 떠오른다.


줄기 아래 놓아둔 미니어처 의자 두 개가

동네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 놓인 쉼터의 의자 같아

 여름날 무성한 초록잎을 그늘 삼아 앉아

청량한 아침 바람을 맞는 듯하다.


반그늘에 두고 일주일에 한 번 물 주기만으로도

쑥쑥 자라는 이쁜 식물 아스파라거스 나누스가

 자리 잡은 테이블 앞자리는

어느 여름날 아침의 휴식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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