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톤의 벽에 짙은 나무색 기다란 선반, 그 선반 끝에 벽을 타고 옆으로 퍼지는 마다가스카르 자스민 토분 하나, 그리고 그 아래 동그란 화이트 테이블과 라탄 의자 두 개.
여느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깔끔하면서편안해 보이는 분위기의 거실 한 코너는 상상 속의 공간일 뿐 내 거실은 브라운톤과 화이트 가구의 무질서한 어울림 속에 여기저기 자리 잡은 초록이들과 꽃들로 꽤 산만하다.
플라스틱 물통에 담긴 보리사초 몇 대와 부들 두 대는 기다란 감자칩 종이통에서 그린 그린 하며 TV장 옆에 기다란 잎을 펼치고 있고, 거실 창 한쪽 커튼봉에는 패브릭 실로 꼬아 만든 걸이에 플라스틱 음료컵을 화분받침으로 베란다 아이비즐기 잘라 넣은 미니화분이 매달려 있다. 작은 테이블에는 아이비 줄기 담긴 커피캔이, 주방창 앞 커피코너에는 호야 줄기 뚝 잘라 넣은 초록과 빨강이 선명하게 박힌 흰 아이스크림 빈통과 미니 잼병이 놓여있다.
흩어져 있는 것들은 모아 놓고 필요 없는 것들은 치워야 하는 인테리어 공식을 철저히 무시한 내 집은 단정함이나 깔끔함,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멀며 시각적으로 더위를 줄여줄 수 있는 한여름 인테리어 팁을 적용하기에는 무언가 많고 다양하다.
두어 번 바니쉬를 발라 둔 양송이 수프 캔은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적절하여 초록 아이비 줄기 몇 개 잘라 짧은 길이의 꽃송이와 함께 넣어주었더니 식탁 한쪽에 올려두기 딱 좋은 사이즈의 화병이 되어준다.
양념병 뚜껑에 구멍 빵빵 몇 개 뚫어 가느다란 스카비오사 몇 줄기 넣어준 양념 유리병은 투명하고 시원한 화병으로 변한다.
색과 그림이 이쁜 테이크아웃 컵, 작고 네모난 갈색 화장품병, 멋진 필체의 검은 글씨가 눈에 들어오는 반투명 술병, 찐 초록 캔맥주 틴케이스와 파란 쿠키 통.
분리수거통에 담겨야 할 이 모든 것들은내 손에 걸러져꽃과 초록이들을 위한 소품으로 거실 장식장한 칸을 채우고 있고, 주방 장식장 한 편에도 쌓여간다.
언제부터인가 플라스틱 용기, 유리병, 종이박스를 버릴 때 쓸모를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따로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되어서
남들도 흔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창 유행하는 것들이 아니어서.
이렇게 모아 둔 것들은 나에게는 소중한 장식품들이 되어 꽃과 초록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하루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이런 버려지는 것들이 좋다.
아주 가끔은 빈티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추억의 물건에 눈독을 들이는 오래된 취향 때문에 이쁜 쓰레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작정하고 사들여 장식장을 채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