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PLAN Aug 17. 2021

제철음식처럼 제철꽃으로

초보플로리스트의 친환경꽃놀이

  하얀 계란 프라이 꽃이 사방에 피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넓은 데이지 꽃밭을 갖고 싶었다. 길게 자른 줄기 엮어 만든 화관을 머리에 얹는 것이 살짝 민망한 나이이지만 그런 사진도 찍고, 빵과 커피 세팅한 하얀 철제 테이블과 의자 놓고 앉아 하얀 꽃 속에서 꽃놀이도 하고.


  작년 3월 첫 주 토요일 아침에 손 호호 불어가며 흙에 섞어 뿌린 샤스타데이지는 일 년 동안의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올봄 두 달 동안 하얀 물결을 만들어 주었다. 뚝뚝 잘라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 차 음료 박스에 잘 넣어가지고 집으로 데리고 온 데이지 꽃 한 다발.


  이쁜 모양의  바구니 속에 물통 넣고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쏙쏙 넣어주기도 하고, 옆으로 기다란 바구니에 물통 비스듬히 넣어 바구니 밖으로 넘쳐나게 담아놓기도 하고.


'Daisy Basket'.


데이지와 바구니, 좋아하는 두 단어의 조합은 여느 비싸고 귀한 꽃들보다 나를 설레게 했고, 꽃 만지는 재미를 더해 주었으며 3주 정도 지나 팝콘 터지듯 팡팡 터진 금계국과 함께 나만의 풍요로운 꽃밭을 연출해 주었다.


마당에서 뒹굴던 파란색 플라스틱 물뿌리개에 푹 넣어도,  한쪽에 엎어져 있던 양은 주전자에 노랑꽃과 함께 공식 없이 이렇게 저렇게 대충 넣어도 근사한 꽃 오브제가 되어주어 큰 재주라도 부린 듯 어깨가 으쓱해진다.



  꽃밭 돌보기가 쉽지 않은 여름날 아침.

높은 기온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꽃들을 제치고 꽃밭의 주인이 되어 있는 꽃밭에서 꽃 기를 한다.

이른 더위에 작년보다 한 달 정도 먼저 피어난 코스모스, 과꽃, 수국을 톡 자르고 그늘에 옮겨둔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완샷 하며 화기에 조화롭게 넣어주니 테이블 주변의 풀들도 꽃으로 보이는 마력이.

 집으로 가져와 이블 위에, 장식장 위에 두고 보며 꽃밭 만나는 토요일을 기다린다.



    작년 꽃 수업에서 처음 보고 그 매력에 반해 있던 중 블로그 이웃님의 나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여 두 손 들고 받아 든 풍선초 씨앗. 아파트 베란다에서 파종해 가느다란 줄기에 잎 세장 달린 모종을 엄마 꽃밭 한쪽에 심어준 지 세 달쯤 지나니 밝은 회색 벽 위에 연둣빛 그림을 그려놓는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매력을 지닌 풍선초.


길게 자란 덩굴을 중간에서 뚝 자를 수 없어  열매가 있는 짧은 줄기 몇 개를 잘 골라 집으로 데려와 엄마가 쓰시던 나무절구에 길고 짧게, 사방으로 넣고 해질 녘의 빛을 조명 삼아 한참 동안 꽃놀이를 한다.

  

  코스모스, 설악초, 자리공, 수국, 금계국 등등 토요일에 잘라온 내 꽃들과 함께 양철 화기에 이리저리 꽂아주니 찐 분홍 코스모스, 연분홍 자리공 열매, 연둣빛 풍선초가 어우러져  돈 하나도 들이지 않고 멋진 센터피스가 만들어진다.


  이쁜 꽃 오래 보기 위해 이틀 후 짧게 잘라 라탄 화병에 쏙쏙 넣어 밤에는 냉장고 한편에 넣어두었다 아침에 꺼내 놓으니 화사해 나름 우아한 아침 식사 테이블을 만들어준다.


  

  지난 목요일 데려온  엄마 꽃밭의 풍선초, 여주 잎, 설악초.

둥글둥글 리스에 워터픽을 세 군데 고정하고 가지들을 꽂아 말아 올리니 여름 느낌 물씬 나는 시원한 리스가 만들어진다. 하루 한 번 워터픽에 물 보충을 해서인지 5일째인 오늘도 그린그린 청량하다.



  풍선초 덩굴의 풍선들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나보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루한 여름이 가고 있는 것은 반갑지만 연둣빛, 초록빛 계절도 덩달아 가고 있음은 참 아쉽다.


  작년 가을 황량한 시골 꽃밭에 군데군데 피어나 여기는 꽃밭 임을 보여 주었던 백일홍, 코스모스, 달리아로 만들었던 분홍빛 센터피스로 시작된 컷 플라워 가든.


                      아름다운 제철 꽃을

                기르고 수확하고 장식하기

         -에린 벤자킨, 줄리 차이  Cut Flower Garden-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정원에서 키워낸 화려한 장미도 아니고 길을 가다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지만 내 맘대로 뚝뚝 잘라 내 맘대로 스타일링하며 컷 플라워 가든 흉내를 낼 수 있어 나에게는 참 소중한 꽃들.


  가을바람처럼 부는 아침 바람에 날리는 거실 망사 커튼을 보니 이젠 슬슬 내년의 컷 플라워 가든을 위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내  맘대로 잘라 쓸 수 있는 내 꽃밭을 위해 부지런해져야 할 때가 왔다.






작가의 이전글 이번 생엔 미니멀리스트는 안 되는 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