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m] 12인의 성난 사람들:
법적 쟁점

03.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by 삐얏


01. 영화적 배경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 –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에 제작된 법정 영화로, 현재까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변호사나 피고인의 처절한 싸움을 다루는 다른 법정 작품과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배심원들의 치열한 토론만을 담아내었다는 점이다. 러닝타임 내내 12인의 배심원들은 더운 여름, 좁은 방에 거의 갇히다시피 앉아 격렬하게 논쟁한다. 역동적인 액션이나 장면 전환이 전혀 없음에도 카메라는 뜨거운 열기 아래에서 담담히 이들의 열변을 담아 보는 이의 손에도 땀을 쥐게 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무죄추정의 원칙 – 피고인이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어떻게 만장일치 합의를 내게 되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등장하는 배심원 제도는 미국의 사법 전통 중 하나로써 무작위 추첨으로 배심원이 된 시민이 소송법적인 도움 아래 생업을 미루고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1)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법조인이나 관련 전문직 종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공동체를 대표하는 구성원이 되어 사법 체계에 대한 사명감으로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2)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도 은행원, 시계공, 건축가, 주식중개인 등 다양한 업종의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이들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사망케 한 소년의 살인 혐의를 중심으로, 그의 유무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모이게 된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 모두가 소년을 유죄로 판단하지만, 오직 배심원 8(데이비스)만이 소년의 무죄를 주장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무죄가 아니라 ‘유죄라고 판단할 확실한 증거가 없음’, 즉 합리적인 의심(reasonable doubt)을 할 만한 상황임을 굳건하게 주장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의 법정 쟁점은 소년의 범죄에 대해 증명한 증인의 증언 신뢰성 여부, 그리고 소년의 알리바이 및 증거품의 증거력 여부이다.




02. 소년의 범죄에 대해 증명한 증인의 증언 신뢰성 여부

(소극)


침착하고 날카롭게 사실관계에 대해 지적하는 주식중개인, 배심원 4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소년의 유죄를 주장한다. 사실상 배심원 4가 유죄를 주장한 11명 가운데 법적 합의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소년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두 증인의 증언이다.’라고 할 정도로 증언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낸다. 사실상 소년이 아버지를 찌른 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이상, 증인들의 말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년이 사형을 받을 것인지는 이들의 증언에 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술의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경우, 참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3)


4ojfzxnvvov71.png 배심원 4: 영화가 마지막까지 팽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냉철한 논리력 덕분이었다.

해당 사건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증인은 두 명이다. 첫 번째 증인은 아랫집에 홀로 거주하는 노인으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소년의 “죽여버릴 거야!” 고함과 무언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를 듣고 현관에 나가보니 급하게 도망치는 소년을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두 번째 증인은 살인사건이 일어난 소년의 집 건너편 건물에 사는 여성으로, 해당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열차 창문을 통해서 소년이 아버지를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들의 증언은 영락없이 소년의 살인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배심원들을 설득하였지만, 배심원 8(데이비스)은 이 두 증언의 신뢰성이 떨어짐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와 뜻을 함께하는 ‘무죄 파’가 증인들의 진술에 대해 제기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노인은 소년의 고함과 아버지가 칼에 맞고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갔다. 여성은 지나가는 기차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열차 칸의 창문을 통해서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 두 증언을 합쳐본다면, 소년은 열차가 지나가고 있을 때 고함을 지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차가 지나갈 때 윗집에서 외친 고함을 노인이 정확하게 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2. 다리를 절고 있는 노인이 먼 복도를 15초 만에 가로질러 뛰어나가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3. 여성은 열차의 창문을 통해서 살인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녀가 잠자리에 들기 전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뚜렷하게 보았다고 보기 어렵다.


증인의 진술을 교차검증하는 과정에서 배심원 4를 포함한 배심원 대부분은 증인들의 진술에 모순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증거능력에 관한 법칙으로는 전문법칙이 있다. 전문법칙은 ‘쟁점 사실’을 중심으로 경험한 자의 진술이 아니라 그 진술을 들어서 전달된 말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원칙이다. 배심재판을 기본으로 두고 있는 영미법에서 자백배제법칙과 함께 생긴 증거 법칙으로,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나온 것처럼 배심원들의 합리적 심증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4)




03. 소년의 알리바이 및 증거품의 증거력 여부 (소극)


배심원 8: 판을 뒤집을 수 있었던 논리력을 보여준다

초반 ‘유죄파’ 배심원들은 증인들의 진술 외에도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소년의 알리바이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가 지니고 다닌 특이한 문양의 칼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을 논거로 소년이 아버지를 찔렀다고 보았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증거재판주의를 주장하며,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배심원 8(데이비스)은 유일하게 소년의 유죄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으로, 증거재판주의를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증명력은 요증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실질적 가치를 의미하며, 아무리 증거가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는 자료로 사용될 수가 없다.5) 따라서 비진술증거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살인 혐의를 받게 된 소년은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 경찰관에 의해 새벽 3시에 붙잡히게 되고, 심문을 받게 된다. 이때 소년의 진술과 현장에 남겨진 칼이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지가 쟁점이다. 이에 대해 배심원 8(데이비스)을 주심으로 다수 의견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소년은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맞고 영화를 보았다는 가정하에, 영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가 살인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

2. 소년이 아버지를 찌를 때 사용하였던 칼이 특이한 문양인 것은 맞으나, 거리 pawnshop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칼이다. 배심원 8(데이비스)이 같은 칼을 지니고 있으므로, 살인한 사람이 소년으로 특정될 수 없다.

3. 소년은 칼을 잘 다룬다고 하였다. 살인에 사용된 Switchblade는 자동으로 날이 튀어나오는 칼로, 빠르게 상처를 입히는 칼이다. 아버지는 위에서 아래로 찔렸다. 이 또한, 칼을 잘 다루는 소년이 오랫동안 학대받아온 아버지를 살인하였다고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다.

4. 칼에는 지문이 없었다. 소년이 지문을 지우고 아버지를 찔렀다면, 새벽 3시에 합리적으로 들어갈 이유를 보기 어렵다.


소년이 아버지를 찔렀다고 한 칼과 배심원 8이 근처 상점에서 구매한 칼.

증거, 특히 물증의 증거능력은 판결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만큼, 증거에 대해 배심원들이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못하자, 몇몇 배심원들은 개인적인 편견으로 소년을 몰아세우기까지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04. 작품의 의의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유죄파’ 배심원들에는 배심원 3과 배심원 10이 있다. 이 둘은 다른 배심원들이 서서히 배심원 8(데이비스)을 따라 유죄가 아닐 수도 있음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자, 화를 내며 답답해한다. 배심원 3은 사적인 감정으로 재판에 임하며, 타당한 지적이 오갈 때 그럴 가능성이 없다며 확신한 모습을 보인다. 배심원 10은 토론에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끝까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지만, 배심원 3과는 다르게 빈민가 이민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편견으로 판단하고자 한다. 결국 배심원 3과 10은 마지막에 이르러 본인들의 주장이 모순됨을 인정하게 되며, 작품은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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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10과 3: 혐오와 편견만을 근거로 유죄를 주장한 이들을 외면하는 다른 배심원들

긴 러닝 타임 동안 좁은 방 안에서 12명의 배심원은 긴장감이 감도는 회의실에서 서로 독설, 방해, 욕설, 설득, 그리고 대립한다. 이들은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가끔은 존중과 이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와 배척감으로 상대편을 지적한다. 어쩌면 시간 낭비, 그리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이 장면들이 민주주의적 배심원 제도의 목적 자체를 보여준다. 12명이라는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이 각자의 배경과 각자의 사명감을 갖추고 시작하는 대화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민주주의적 배심원 제도의 추잡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해, 수용, 그리고 인정을 그려낸다. 사건의 진위가 점점 밝혀지면서 영화적 카타르시스가 발생하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인 증거 없이는 사형을 거부하는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합리적 의심을 둔 판단력의 중요성을 담은 훌륭한 작품이다. 법적 판결에서는 편견, 권리, 그리고 사회적 배경 등 다양한 시각을 가진 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알려준다.


MV5BNGRlZjVhNWMtOTUxYi00MTYxLWEzOWUtMTM1NDc3ZWRjMDZjXkEyXkFqcGdeQWRpZWdtb25n._V1_.jpg 배심원들은 관객을 바라본다. 당신은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출처:


1) 김진한 변호사, «배심제도, 사법 엘리티즘, 그리고 민주주의», <법률신문>, 2024년 4월 6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7301, 2024년 12월 20일.

2) 위의 글.

3)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4) 김희균, 이민우, «전문증거와 본래증거의 구별», <저스티스> 통권 제182호, 497쪽, 2021년 2월, 2024년 12월 20일.

5) 김종민 변호사, «형사증거법 이대로 좋은가», <법률신문>, 2024년 5월 22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8398, 2024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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