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서를 일곱 번 읽는다는 것

버티는 기술_공무원 시험 준비

by 안나

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때

우리 집은 부도가 났다.


쌀이 없어

고모와 할머니가 사다 주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우리 집은 보리타작을 했다.


가족 5명이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모두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개학 첫날,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해수욕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놀았길래 이렇게 탔니?”


그 말에

나는 교실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는 서러웠지만

지금은 미소로 떠올릴 수 있는

사춘기의 한 장면이다.


엄마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한동안씩 집을 비우곤 했다.


어디로 갔는지, 왜 그랬는지

그때의 나는 묻지 않았다.


다만

동생들 가방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누나였고,

어쩌면 잠시 맡겨진 보호자였다.


그 시절을 함께 버틴 동생들은

각자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낸 셈이다.


지금도 동생들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누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애잔하고, 고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회사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임시직의 서러움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나는 밤을 새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어느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다.


“기본서를 일곱 번 정독하면

못 붙을 시험은 없다.”


처음 기본서 한 권을 보는데

3개월이 걸렸다.

그다음은 2개월,

그다음은 1개월,

3주, 2주, 1주, 사흘.


그렇게 줄여가며

일곱 번을 돌렸다.


지금의 나는

그 시간 위에 서 있다.


나는 아직도 믿는다.


노력해서

가끔은 안 되는 일도 있지만,

끝까지 버틴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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