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기술_존엄사
행려환자였다.
의식은 없었고,
가족도 없었다.
의료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기계가 숨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은 할 수 없었다.
가족 2인 이상의 합의가 없으면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지점에서 멈췄다.
입원비는 지자체가 부담한다.
행정 절차도 우리가 대신한다.
사망 후 장례도 우리가 처리한다.
삶의 마지막 과정 대부분을
공공이 책임진다.
그런데
마지막 선택만은
“권한이 없다”고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행려환자도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무연고 행려환자의 경우,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지자체, 의료진, 인권을 책임지는 시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집단적 책임 구조 속에서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심의하도록 하자고.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공적 판단 체계로 보완하자는 취지였다.
논의는 쉽지 않았다.
윤리의 문제,
존엄의 문제,
오판의 책임 문제.
결론은 미뤄졌다.
제도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존엄의 선택권까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은 때로
정답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겨야 한다.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은 언젠가
제도의 출발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