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통신, 그리고 가십의 진화

버티는 기술_뒷담화 이론

by 안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인간은 약 150명 규모까지는 강한 통제가 없어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¹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가십’, 즉 뒷담화다.

이른바 **‘뒷담화 이론’**이다.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누가 규칙을 어겼는지,

누가 협력적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는 설명이다.


처음엔 흥미로웠다.

소문이 공동체를 지탱한다니.


하지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그 150명을 훌쩍 넘는 조직에 속해 있다.

그리고 가십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진화했다.


복도에서 속삭이던 말은

이제 실시간 메신저를 타고

몇 분 만에 수십 명에게 공유된다.


가십은 원래

공동체를 묶는 장치였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그 기능은 변질된다.


정보는 왜곡되고,

추측은 확신이 되며,

이야기는 새로운 ‘진실’이 된다.


특히 성비위 사건에서는 그 속도가 더 빠르다.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는 이미 유죄가 되고,

누군가는 낙인이 찍힌다.


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조직 내부의 평판은 먼저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설명보다 상처를 먼저 받는다.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그 사람 원래 좀 그랬대.”

“아, 그래서 그런 거구나.”


말은 짧지만

파장은 길다.


가십은 원래 협력을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으면

가장 잔인한 사회적 처벌이 된다.


나는 가끔 멈춰 선다.


내가 지금 전하려는 말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소모하기 위한 것인가.


뒷담화 이론은 인간을 설명하지만,

윤리는 인간을 지킨다.


조직이 커질수록

입은 더 조심해야 한다.


복도 통신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그 흐름에 무심코 올라타지 않기로 한다.


¹ 던바의 수(Dunbar’s Number) : 영국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이 인지적으로 안정적인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규모를 약 150명 정도로 본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