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입출금이 가능하면 좋겠습니다.

동짓달 지난 긴 밤을

by homeross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임 오신 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


학창 시절 황진이의 시를 문학 수업에 듣고는

적지 않은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외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잘라내어

행복한 임이 오신 날 그 시간을 붙이어

쓰고 싶다는 그 발상이 어린 나에게도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나이가 들고 나름 세상의 많은 일들을 겪고 난 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불편해졌다.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고 짙어질수록 어쩐지 불안해진다.

행복한 시간뒤에는 상대적이든 아니든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행복한 시간을 베어내어 어딘가에

입금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힘들고 고된 순간이 왔을 때

차곡차곡 모아둔 행복을 출금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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