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소리 체험 수업을 다녀오다.
몬테소리 체험 수업을 다녀왔다.
30분 정도 교구를 탐색하게 하더니 선생님은 아기의 기질을 술술 읊어대셨다.
마치 유명한 점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선생님이 해석한 똘이의 기질 중 내가 아는 것이 반, 모르는 것이 반이었다.
선생님은 똘이가 예민덩어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가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닌 티가 난다며.
애착이 잘 되어있고, 여러 경험을 하며 그 예민함이 깎인 덕분에 겉보기엔 온순한 아기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 자체는 겁이 많고 예민하며 탐색하는 걸 좋아하는 아기라고.
이런 아기를 36개월까지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같은 데 데려가는 건 부모님의 욕심이지,
아기는 새로운 환경을 즐기지 않을 것이라 했다.
선생님의 말대로,
똘이는 정신없고 빠르게 진행되는 문센 수업보다 몬테소리 체험 수업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그곳은 조용했고, 교구 하나하나 자세히 탐색 가능했다.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이제껏 똘이가 (왜 다른 애들과 달리) 문센을 싫어하는지, 가면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그 기질이 엄마로부터 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평생 나를 오해하며 살았다.
아기의 기질검사를 받기 전까지.
우리 부모님은 주말마다 오빠와 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셨다.
엄마아빠는 내가 차만 타면 잠만 잔다고 불만을 자주 토로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는 그 여행이 스트레스였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 친구들의 자녀들과 어울려야만 하는 여행.
그곳에서 사회성을 터득하기도 했으나, 가기 전날부터 잠을 설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엄마 아빠가 친구들과 함께 기행을 자주 펼쳤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 대신, 문이 열려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라면을 끓여 먹는 행동 같은 것.
초등학교 운동장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거지무리들처럼 라면을 먹고 오는 일,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라면 그릇을 들고 혼자 차에 들어가 먹곤 했는데,
엄마 아빠는 두고두고 그런 나의 행동을 놀렸다.
공주냐며.
다들 잘 어울리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계획에 없던 일들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반면, 방 안에 틀어박혀 소설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늘 좋았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하거나 친구들이 많고 잘 어울렸던 기억 때문에
평생 내가 활발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좋아하며, 새로운 경험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해하며 살았다.
몬테소리 선생님은 똘이가 탐구형 아기라고 했다.
단호하게 윽박지르는 훈육은 통하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비서처럼 아기에게 하루 일과를 읊어주라고 했다.
부모님이 나의 기질을 알고 키웠다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자라났을까?
그들은 너무 엄했고, 때론 무서웠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자주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켰다.
평생을 열심히 키워도 불만이 생긴다는 아이러니가 무섭다.
나중에 똘이는 커서 어떤 원망을 토로하려나?
요즘 똘이가 부쩍 자다가 소리를 지른다.
스트레스가 밤에도 똘이를 붙잡는 듯하다.
하루 종일 엄마가 옆에 붙어 케어하는데도, 예민한 기질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
그것 또한 닮았다.
나는 요즘도 잠결에 소리를 자주 지른다.
똘이가 예민한 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입모아 순한 아기라고 했고,
성깔은 있지만 예민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험이 기질을 누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서 키우기보다
아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나는 똘이가 아니기 때문에 노력해도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놓은 수없는 선택 앞에서, 나보다 아기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봤으니까 알아, 이게 맞는 거야. 라고 쉽게 말하지 않고.
홀린 듯이 몬테소리 3개월치를 결제했다.
귀 얇은 부모의 선택이 똘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