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는 게임을 논하다.
“서역과 교류의 시작” – 『대원열전』
대원은 지금의 중앙아시아 동부, 페르가나 지방에 있던 나라로 한나라 효무제 때 장건에 의해서 알려지게 된다. 장건은 한중 지방 출신으로 하급관리(낭관)였다. 장건은 무제 때 흉노에서 투항한 사람들을 심문하다가 월지족이 흉노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 했지만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한무제는 흉노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위대한 제국의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월지족과 군사동맹을 맺어 흉노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월지로 가려면 흉노의 땅을 지나야 했다. 스스로 사신을 자청하는 자가 없었지만 이때 장건이 자원해 임무를 수행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장건은 흉노족 노예인 감보와 함께 잠입하여 월지로 가던 중 흉노에 잡히고 만다. 그 당시 흉노의 왕인 선우에게 끌려가게 되고 한나라의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선우는 장건을 10년 동안 붙잡아 결혼시키고 아기까지 낳게 되었다. 그러나 장건은 자기의 임무을 잊지 않고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다. 세월이 지나면서 느슨해진 감시를 틈타 월지를 향해 도망가게 되었다. 장건은 수십 일이 지나 대원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대원의 왕은 한나라가 물자가 풍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류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터에 장건 일행을 보게 되었고,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장건은 자기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인도해줄 호위병과 안내자를 제공해 주면 월지로 가서 사명을 완수하고 한나라로 돌아가면 많은 재물을 줄 것이라고 설득해 호위병과 안내자를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월지에 도착했으나 동맹을 통해서 흉노를 공격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1년여간 머물다 귀국길에 오르다. 흉노에게 다시 잡혀 1년 정도 머물렀다. 이후 흉노의 왕 선우가 죽고 혼란한 틈을 타 한나라로 13년 만에 돌아왔다.
효무제는 돌아온 장건을 태중대부로 임명한다. 장건은 가본 여러 나라들의 정보를 보고서로 올리게 되었고, 그리고 이를 통해 동서간의 교역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장건이 올린 보고서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원: 흉노 서남쪽, 포도주, 한혈마, 인구 수십만, 활과 창을 다룬다
오손: 대원의 북동쪽, 유목생활을 하고 궁병이 수만이고 형식적으로 흉노를 섬겼다.
강거: 대원의 서북쪽, 유목생활을 하고 월지와 비슷 궁병이 8에서 9만, 월지와 흉노를 섬겼다.
엄채: 강거의 서북쪽, 유목생활 호수가 크고 궁병 10여만
이런 식으로 대월지와 안식, 조지, 대하 등의 나라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후에 사신을 파견하여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전월과도 교류를 하게 되었다.
장건은 후에 흉노를 정벌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사기의 기록에서 서역과 교류를 열전에 포함시킨 것을 그만큼 국제 정세가 나라의 존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포함한 것으로 생각된다. 게임을 개발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게임은 다양한 국가에 수출 또는 앱스토어를 통해 서비스하기 때문에 장건이 수집한 국제 정보를 이용한 것처럼 개발 단계에서부터 미리 고려한다면 게임을 해외에 수출하기 쉽게 될 것이다.
만약 국내향과 스타일로만 개발하고 이후에 나라별로 제작을 따로 하는 경우는 시간과 비용적인 면에서 경쟁력을 떨어지게 마련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준비를 철저히 한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의 차이는 상상 이상의 결과였다.
한무제 때의 실크로드 개척은 후세에 찬란한 문화를 남기게 했으며, 이것이 큰 업적으로 기록되는 것을 교훈 삼아 게임도 글로벌 한 게임 개발에 힘써 문화 콘텐츠의 강국으로 이름을 떨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