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치남 Jul 20. 2024

나는 중국에서 결혼하고 중국에서 이혼했다. 06

화성에서 온 한국 남자, 금성에서 온 중국 여자

  아내와 처음 다투게 된 것은 현관문을 열쇠로 열어야 하느냐 안에서 열어주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나는 유학생활 5년 동안 열쇠로 문을 열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초인종을 누르고 아내가 웃으며 반갑게 맞아줄 줄 알았다. 


  "띵동, 띵동~"

  "누구야?"

  "여보 나야"


  처음으로 문을 열어주는 아내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열쇠 없어?"

  "있어."

  "근데 왜 초인종을 눌러?" 

  "안에 당신이 있으니까 눌렀지."

  "아니 열쇠로 열고 들어오면 되지, 왜 안에 있는 사람 귀찮게 해!" 


  그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건 무슨 시튜에이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그때 난 사람도 버퍼링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신혼인데 문 열어주고 반갑게 맞이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귀찮으니까 열쇠 열고 들어와."

  "대궐 같은 집도 아니고 겨우 거실에서 나와서 문 열어주는 게 뭐가 그렇게 귀찮아?" 

  "열쇠가 있는데 왜 사람을 귀찮게 해?" 


  잠시 언성이 높아졌다. 


  '관두자, 그냥 내가 열쇠를 열고 들어오면 되지.' 


  그다음 문제가 된 것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직장생활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장모님 때문에 아내가 출근 시에는 늘 택시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월급으로 감당도 안 되는...


  결국 난 총각 때처럼 매일 아침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한국 집에서 어머니와 동생이 토스트를 구워 먹을 때 항상 밥을 고집했던 내가 결혼 후 빵으로 조식습관을 바꿨다. 아내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은 100% 다 조식을 밖에서 해결한다. 조식만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가정마다 대표로 노인들이나 남자들이 밥통 같은 것을 들고 줄을 서서 사다가 아내에게 바치는 것이 일상이다. 


  "아니, 당신 보고 아침을 준비하라거나 먹기 싫은 아침을 먹으라는 게 아니고, 아침 먹을 때 식탁에 앉아만 달라고. 아니 그것도 힘들어?"

  "난 아침도 안 먹는데 왜 식탁에 앉아있어? 졸려 죽겠는데.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잖아?"


  일은 결혼 후 3개월 만에 한국 본가 방문 시에 터졌다. 제주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어머니댁에서 3일을 지내는 일정이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동생이 날 조용히 복도로 불렀다. 


  "형, 아무리 중국여자라도 너무한 거 아니야? 시어머니댁에 와서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자다가 일어나서!" 

  "미안하다. 내가 이야기해 볼게. 신혼여행이니 네가 좀 이해해 주라."


  물론 아내는 그 이후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을 챙기고 먹이는 것도 내 일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처음 집들이 때 일이 터졌다. 중국에서만 결혼식을 올리다 보니 학교 후배들이 가족처럼 일을 도와줬다. 


  "형, 한 달 다돼 가는데 집들이하세요." 

  "그래, 해야지. 다음 달 첫째 주 토요일 어때?"

  "네, 제가 애들한테 이야기할게요."

  "그래"


  아내한테도 한 달 전에 이야기를 해놨다. 당일 날 아침 아내가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여보, 어디 가게?"

  "오늘 당신 친구들 오는 날 아니야? 자리 피해 주려고."

  "뭐? 아니 신혼 집들이인데 안주인이 없으면 어떻게 해?"

  "내 친구가 아니고 당신 친구야.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그건 예의가 아니지."

  "몰라. 난 친구들하고 공원에 놀러 가기로 했어. 냉장고에 과일하고 음료수 사놨으니까 알아서 해."


  동생들은 집에 혼자 덜렁 남겨져 있는 나를 보더니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형, 형수하고 싸웠어요?"

  "아니, 급한 일이 생겨서 나갔어. 우리끼리 편하게 놀자. KFC패밀리 세트 어때?" 

  

  당시 중국은 배달 문화가 없던 시절이라 친한 동생 한 명과 패밀리 세트를 사러 갔다.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 문제는 밥숟가락과 관계된 문제였는데 역시 아내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총각 때 하던 작은 선술집을 접게 되고 양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좌석 100석 규모의 큰 펍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학교 졸업 후 첫 사업이라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형 여기 옆에 루키 호프인데 올 수 있어요?" 

  

  친한 동생이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루키 호프에 가니 친한 동생들이 막 술자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살짝 섭섭한 기운이 올라왔다. 


  "아니, 가게로 오지. 왜 여기서 불러?"

  "형, 죄송한 이야기인데 애들이 형네 가게 불편해서 못 가겠데요."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가게를 열고 아내는 나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매일 가게로 출근해서 카운터를 지켰다. 오는 손님에게 인사하지 않고 가는 손님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손님이 먼저 아는 척하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후배들이 살갑게 장난도 치고 말을 걸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당시 중국을 방문해 본 사람들이라면 중국 상인들이 얼마나 불친절한지 몸소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내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보고 자란 게 그것밖에 없으니 친절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난 아내보고 친절하게 변하라는 게 아니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애걸한 것이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돌았다. 불친절한 중국 여주인이 항상 가게에 진을 치고 있다고... 결국 나도 가게에 나가지 않았고 가게는 2년 만에 빚을 떠않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마음도 굳게 닫혔다. 




  법원의 일처리가 끝났지만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캔 맥주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갔다. 15년간 끊었던 술을 이렇게 다시 입에 댈 줄 몰랐다. 


  다음회 : 알코올 중독을 끊다.


  

작가의 이전글 더 이상 호구로 살고 싶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