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에 설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늘 크던 작던 여행지에 대한 모종의 호기심, 설렘 같은 것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 행선지가 해외인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까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을 내어 더러 해외여행을 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모두가 패키지여행이었다. 자유여행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그건 언제나 꿈일 뿐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용기가 없는 탓일 것이다.
그래도 자유여행은 내 여행의 로망임에는 틀림없다. 점점 더 나이가 들어 실현불가능 확률이 점차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기대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차에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네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아들 부부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 된 입장에서 유학생활에 뭐하나 보탬이 된 것이 없어 아들 집을 방문한다는 것이 사실 조금 염치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미국을 한번 여행해 볼까 싶은 마음이 그런 염치를 그야말로 염치없이 짓눌러 버렸다.
아들에게서 비행기 표가 왔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행기였는데 그곳까지 아들 부부가 마중을 나오겠단다. 아들의 집은 미국 중부 지역의 볼더 시이다. 그 거리가 비행기로 두 시간은 충분한 거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을 가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를 아들 내외가 우리를 위해 마중을 오겠단다.
그러니 여행 준비는 따로 할 것이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행은 패키지여행이었으므로 표를 구입하고 검색대를 지나는 모든 과정에 인솔자가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었다면 그걸 우리 부부가 둘이서 해결하는 정도만 다소 신경이 쓰일 뿐이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 아들은 미국 입국 심사 모범답안까지 메일로 보내주었다. 미국 입국심사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자료인데 미국에 오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아들 부부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한 주일 정도를 관광을 하고 볼더 시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갔다. 그곳은 은퇴자들의 휴양도시였는데 모든 것이 넉넉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천국이 뭐 별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곳에서 한 주일을 지냈다. 그 동안 볼더 시내 곳곳을 누비기도 했고, 로키 산을 오르기도 하고, 인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주 남짓한 기간은 소비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 서클을 돌아보았다.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3주 동안 나는 참 많은 것에 놀랐다. 아마도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으로 와 닿았던 것은 엄청난 규모의 자연경관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곳 사람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늘 표현하며 함께 어울려 사는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세계 일등 국가 국민이라는 자부심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겸손했다. 양보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잔잔하게 웃으며 볼더 계곡을 애완견과 함께 느릿하게 산책했다.
관광지라 해서 특별히 요란을 떨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관광지 입구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말 그대로 자연을 즐기는 것밖에는 달리 무엇이 없었다. 개인에게 부여된 무한의 자유는 그에 따르는 책임 역시 엄격하게 자기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듯했다. 그것이 이민의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 구조인 듯 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희한한 룰이 아니라 공정성을 근거로 한 법만이 기준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은 온통 머릿속에 그곳에서 본 충격들로 혼란스럽다. 그나마 이런 정도의 것이라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차곡차곡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기록은 여행에 대한 내 습관이기도 하다. 긴 시간에 대한 기억의 반추이므로 더러 엉뚱한 이야기가 끼어들까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교정을 겸한 윤문을 아들 부부에게 부탁을 해두기로 했다.
글은 우리와 미국의 문화적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보기로 했는데 워낙 그 방면의 지식이 일천한 탓에 그저 수박 겉핥기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에 대한 짧은 식견은 이야기의 폭을 매우 협소하게 할 것이나 그래도 내 눈에 비친 것들을 중심으로 우리와 비교해가며 거친 내 의견을 버무려 볼 작정이다. 글을 써가는 동안 내 스스로가 선진국의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다
기다림은 늘 즐겁다. 기다림은 늘 모종의 의미를 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 즐거움을 위해 한 해를 고스란히 기다렸다. 큰 아이가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지 한 해가 되었다. 그 동안 녀석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도 타국생활을 무난히 잘 해내었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잘 해낸 것이 기특하기보다 부모로서 그 잘 해냄에 대해 뭔가를 기여한 것이 없다는 미안함이 컸다, 그래도 부모임을 내세워 학기가 끝나면 미국을 방문하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다 정말 이번에 미국을 한 달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아들 내외의 뻔한 생활비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무작정 떼를 쓴 것이다. 아들 내외는 그런 못난 부모를 위해 묵묵히 여행 일정을 마련해주었다. 며느리가 관광코스를 마련하고 아들은 그 전 과정을 돌아주기로 했다.
아들 내외가 비행기 편을 예약하고 여행코스를 짜고 하는 극성 탓에 우리의 미국 방문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작은 아들은 또 그 나름대로 비행기표 값을 지불하기도 하며 힘을 보탰다. 아들들 잘 둔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기는 공짜 여행을 한 달씩이나 한다는데 즐거워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나름대로 아이들의 부담이 부담스러워 얼마간의 돈을 송금하고 또 그만한 돈을 미국화폐로 바꾸어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 돈이면 소소한 여행 중의 경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내 6월 1일. 아들을 찾아가는 날이다. 아들은 미국 중부 지역 덴버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까지 마중을 나오겠단다. 그 동안 나는 아들에게 너희 집까지 내가 영어를 배워서 찾아갈 것이라고 수도 없는 장담을 했었으나 책상머리 영어공부가 어디 소용이 있는가? 아들 녀석이 그게 좋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막상 날짜가 되니 자기들 부부가 마중을 나오겠단다. 그냥 오면 혹여 내가 말릴까 싶어 샌프란시스코 관광을 같이 하잔다. 고마운 아들 내외다.
아들을 찾아 미국 여행이라니. 그동안 늘 패키지여행만 하다가 우리 두 식구가 처음으로 시작부터 공항에서 티켓을 바꾸고 짐을 붙이고 보안 검색과 미국 입국 인터뷰를 하는 과정을 감당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아들 녀석이 걱정이 되었는지 인터뷰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었다, 그 첫 문장은 “우리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십니다.”였다. 아들 집 방문을 위해 한 해 동안 나름대로 틈틈이 영어회화 공부를 했는데 영어를 못 하십니다 라니. 내 실력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하는 다소 얄팍한 오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 나중에 경험한 일이지만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다 나올 때까지 그들의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들 집을 찾아간다니 오래전 영화팔도강산이 떠올랐다.
팔도에 흩어져 사는 아들을 찾아 팔도를 유람하는ㅡ사실을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를 소개하는ㅡ 일종의 홍보영화였다. 이제 한 세월 지나니 내가 꼭 그 꼴이 되었다. 그럼 나는 뭘 홍보하지?
그저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어낼 수 있다면 그것일 수 있겠다 싶다
아들은 우리 부부가 자랑스러워하는 공군대위인데 문득 공부에 대한 열정이 발동하여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학업에 정진 중이다. 사실 학부 시절에는 그리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우리 식구는 나를 비롯해서 여러 과목에서는 두각을 잘 나타내지 못하지만 전공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역시 아들 녀석도 그랬다. 이번 학기에는 수강과목 모두 A를 받았으니 제몫은 다 한 듯하다. 함께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인도, 중국 등지에서 온 우수한 인재가 가득한 가운데 그런 성적을 냈다니 부모로서 고마운 일임이 분명하다.
아들 내외가 우리를 위해 모든 출입국 절차에 대해 세세하게 자료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몸만 움직이면 되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 부부는 집을 나섰다
미리 예약해 둔 공항 행 차량은 아둔한 기사로 인해 우리 집을 찾지 못했다. 전화로 아무리 위치를 알려주어도 기사는 다른 곳을 헤매었다.
더 이상 집안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기사와 다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 집밖으로 나서 콜을 무시하고 길을 오가는 택시를 잡기로 했다
마침 아파트 앞 큰길을 나서자 빈 택시가 한대 보였고 그 택시 기사와 흥정 끝에 3만원에 가기로 했다. 길도 찾지 못하는 콜택시 기사에게 주기로 한 요금은 4만 원이었다.
결국 만원을 절약한 셈이니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여겼다. 그 덕분에 화를 잘 절제하지 못하는 마누라의 얼굴이 다소 누그러졌다.
처음 가보는 공항 제2터미널은 그리 크지 않았으며, 한적한 느낌마저 들어 마치 동남아 국가에서 보던 여느 국가의 공항 같았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은 모두가 패키지여행이었던 탓에 우리가 할일은 약속된 시간 안에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은 아들 내외가 미리 예약을 해두기는 했어도 출국 수속을 모두 혼자 해야 했으므로 이리저리 살피며 절차를 밞느라 다소 긴장이 되기도 했고 분주함도 있었다. 그러니 모든 게 긴장되고 조심스러울 밖에ㅡ
마누라는 내가 조금만 실수를 하면 눈꼬리를 치켜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조심스럽다는 말도 다소간의 겸손이 개입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모두 즐거운 일로 느껴졌다. 출국 수속 중에 집사람은 보안검사를 받아야한단다. 혹시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까 염려한 탓인지 보안검사는 무작위로 하는 거란다. 결국 출국장으로 향하는 동안 집사람은 세밀한 보안검색으로 그야말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태평양을 지나면서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서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영종도 앞바다를 가까이 한 바퀴 돌더니 이내 방향을 바꿔 동해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까지는 10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단다. 비행기는 반도의 허리를 가르며 지났다. 금새 동해의 푸른 바다가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비친 비행경로는 독도 바로 아래를 지나 일본의 허리를 가로 질러 태평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독도ㅡ
참으로 억세고 질긴 땅 독도.
그 억세고 질김이 꼭 이 땅의 민초를 닮았다. 그래서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 섬을 지금 옆으로 지난다.
야심한 시각 탓이기도 하거니와 좌석이 비행기의 한가운데여서 독도 아래 너른 바다는 보지 못했다. 깜빡 잠이 든 시간 동안 비행기는 일본 열도 허리를 가로질러 태평양 너른 바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본 열도의 허리는 마치 개미허리 같았다. 그 좁고 긴 땅의 사람들은 한 시도 우리를 편안케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보는 대륙은 늘 한반도의 너머였다. 까치발을 들고서야 한반도를 넘어서 대륙이 보이니 늘 한반도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두 나라는 가까워질래야 그럴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모양이다. 조금만 양보하고 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을 터인데 두 나라는 그런 것에는 침묵한다. 사실 그건 순전히 정치인들의 몫이다. 그들은 문제를 풀기보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정치인들이 보는 모든 상황은 득표와 연결된다. 어느 쪽으로 행동해야 표가 모이는지 그것 만이 그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독도도, 위안부도, 세월호도 모두 그들에게는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표다. 이러한 표는 개개인의 표의 합보다 늘 많았다. 우리는 군중일 뿐이다.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군중일 뿐이다. 정치인들은 진작에 그걸 간파하고 우리를 양떼 몰듯이 몰아간다. 우리는 몰림을 당하면서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걸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위대하다. 반대로 우리들은 우매하다.
비행기가 일본 열도를 지난다. 시쳇말로 제팬 패싱ㅡ
그러나 이제 겨우 세 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아직 샌프란시스코는 6시간도 더 남았으며 지금은 태평양 한가운데이다.
비행기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봤다.
남한산성ㅡ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국난에 분개하기보다 원작자의 입심(글심)에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그러다 나도 내 글을 되돌아보고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봐야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한산성이 전혀 엉뚱하게 내게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줄줄은 상상도 못했다.
남한산성은 버팀의 자리가 아니라 은폐의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바 치욕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치욕을 안긴 자는 치욕을 받은 자를 두려워할 줄 모른다. 마침내 임금은 남한산성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재판이라는 합법을 외피로 한 것을 제외하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조선은 치욕이지만 청나라는 그것이 곧 합법이었을 것이다.
메모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 어디쯤이다. 깜깜한 밤이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낮이라면 가물거리는 저 아래 푸른 바다에서 고래 한 마리 쯤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은 극에 달한다. 얼마를 더 가면 하와이 근처 어디쯤도 지나지 않을까 모르겠다 싶다.
하와이-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을 갔던 곳으로 내년 가을에 함께 가자던 곳이다. 그러고 보니 아들 내외가 참으로 고맙다. 우리 내외는 그런 멋진 아들 내외를 만나러 태평양을 건너는 중이다
날짜선을 지나자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오후 4시경ㅡ
금요일 저녁 9시에 인천을 출발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금요일이다. 지구를 거꾸로 돌고 있다. 그럼 그만큼 젊어진 것일까?
마침내 지루한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 상공에 이르렀다. 우리는 길게 목을 빼고 창 너머로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쪽은 도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비행기는 한동안 공중을 선회했다.
착륙허가를 기다리는 중-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온통 음울해보였다. 공항은 바닷가에 있었다. 비행기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은 여전히 도회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마치 낯선 사막에 당도한 느낌마저 들었다. 비행기가 천천히 승강장을 향해가는 중에 내다보이는 바깥풍경 역시 황량함을 떨치지 못했다. 한쪽으로 짓다만 것인지 짓는 중인지도 불분명한 건물 뼈대가 흉물스러워 보이기조차 했다. 이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힘센 나라의 모습이라니.
창밖으로 보이는 멀리 야트막한 산에 듬성듬성 집들이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인천공항에 익숙한 내겐 도무지 생소해보였다. 그래선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이 도시 속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지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비행기가 승강장으로 들어서고 승무원이 육중한 문을 열어젖혔다. 마침내 우리는 세상을 나갈 수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짐을 찾고 아들 내외를 만날 것이다
잘 지냈는지, 어디 상한 데는 없는지, 그 동안 힘들지는 않았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새삼스레 들었다. 서서히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공항 출국장으로 나가면 아들 내외를 만날 것이다. 한 해 동안 보지 못한 아들 내외에게 우리는 처음 무슨 말을 할까? 그저 맹숭한 인사말로는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 큰 녀석들을 부둥키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행기가 움직임을 멈추자 스마트폰이 요동을 쳤다. 아들 녀석이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