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X) 정치화를 마주하는 두 부류

by Forever Young

트럼프와 머스크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업가이며 부자이고 정치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언급은 사실 맞지 않는다. 트럼프도 그렇고 머스크 역시 실제론 매우 정치적이다. 다만 기성의 정치적 담론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기에 마치 아웃사이더 처럼 보이는데 이 것은 그들이 의도족으로 탈권위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을 비롯해 여로 사회분야에서 아직도 권위주의는 무너지지 않는 성채처럼 버티고 있다. 더욱이 정치판은 권위주의를 생산하는 곳이지 않은가... 이런 곳에서 최고권력자와 그의 조력자가 탈권위주의, 탈정치화를 지향하며 합리적이고 실용적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판을 마구 휘젓고 있으니 기성정치인으로서는 죽을 맞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판 짜기다. 최소 2-3년간은 트럼프와 머스크가 만들어놓은 어장에서 놀아야 할터이니 체질을 바꾸어 같이 뛰 놀던가 아니면 그들이 만들고 놓은 '정치판'을 뒤집어 놓든가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외교와 군사 그리고 경제의 전선에서 두 사람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고 방식도 가관(?!)이다. 지나치게 실리주의 및 실용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남의 나라의 사정을 고려한다거나 자신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없다. 오죽하면 내부에서까지 국가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비판과 비아냥이 빗발치고 있지 않은가. 반세기동안 초강대국으로서 가지고 있던 지위와 역할을 과감히 내던지고 오로지 실리만을 추구하겠다는 트럼프 2기의 정책과 그 결과물을 이제 곧 보게 될 터인데 국내와 세계는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다.


탈정치화를 몸으로 실천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으니 환경보호론자와 단체,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들이다. 그들은 정치인도 아니고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지만 그 어느 사회구성원보다도 가장 정치권과 가깝고 항상 정치적 이슈를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낙태옹호론자와 그의 단체들, 안락사옹호론자의 그의 단체들이 비슷한 처지와 역할로 정치권과 밀착되어 있었다. 물론 이 두 가지 이슈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굳이 환경보호론자와 성소수자권리옹호론자를 꼭 집어서 탈정치화의 모델로 부각한 이유는 그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에 연방상원의회에서 주관하는 청문회를 자주 들여다본다. 주로 고위관료를 임명하기 전에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도 즐겨보지만 사회,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청문회가 더욱 흥미롭다. 이 경우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패널이 등장한다. 전문가는 주로 해당정책이 만들어지도록 압력행사를 하고 있는 압력단체의 연구원이나 책임자이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예의적 수준에서 벗어나 매섭고 예리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을 몰아붙이는 질문자는 정치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날 선 공방이 오고 갈 것 같은데 싱겁게 판정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략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1) 전문가라고 자처하지만 전문성이 없다. 2) 주관적 관점에만 몰입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3) 비교분석이 결여되어 상대의 질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마주한 상대가 정치인이라는 것을 간과하면서 참극은 일찍이 예견된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경력에 행여나 오점으로 남을까 우려하여 민감한 이슈에 집중한다. 보좌진을 동원하여 온갖 자료를 모으고 비교분석한다. 그러나 막상 '전문가'라 자처하는 패널은 단편적이고 얕은 지식에 의지하여 단편적인 답변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자아도취에 빠진 경우도 많다. 심층적인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청문회에 임한 정치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트럼프 2기의 특징의 하나는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했다는 것이다. 표밭이 큰 경합주의 경우도 연방의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야말로 공화당과 트럼프가 평정한 세상이다. 이전 정부인 바이든행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고 뒤집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임정부에서 추진하고 입법화한 모든 정책들이 시련을 맞고 있다. 입법을 추진하고 압력을 행사했던 단체들 역시 위축되고 있으며 심지어 존망의 기로에서 살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 바쁜 와중에 청문회장에서도 치명적인 실수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안일하고 무개념 한 대처는 화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일반인이 듣고 보아도 상식이하의 수준을 맴도는 그들의 전문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은 정치인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을 상대하면서 입법을 강요하고 사회정치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즉 준정치인에 해당되는 생존방식에 스스로를 복속시켰다. 물론 순수함을 내세운다. 개개인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한 운동에 참여하던 당시의 동기와 결심은 순수했을 것이고 신념으로 이어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정치적 이유와 목적으로 정치권을 기웃거린다면 더 이상 순수함에 자신의 이성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오로지 합리성과 이성만이 정치인의 음흉한 속내와 야욕을 이겨낼 수 있다. 학습을 게을리하지 말며 시대의 소리와 울림에 제발 민감하게 반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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