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다시 복귀하려면 거쳐야할 필수 과정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촌은 일극화 환경에 익숙했었다. 냉전시기 자유진영과 사회주의진영으로 나뉘어 양극화체제 속에서 익숙해있던 세계는 레이건행정부 시기에 사회주의진영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소련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매세운 주먹을 퍼부었고, 실신 지경에 이르자 고르바쵸프는 백기를 들었다. 양극화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일극화시대로 접어드는 사건이었다.
이미 삼십여 년 전에 세계사적 격변의 시대를 예견했던 정치학자가 있었으니 프란시스 후쿠야마 Francis Fukuyama였다. 그의 역작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이 1992년에 출간되어 학계는 물론 정치와 외교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책에서 그는 근대유럽과 미국의 탄생을 이끌었던 혁명의 시대가 저물고 그 파생상품인 사회주의체제는 종말에 고할 것임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체제(자유진영의 정치체제)와 시장자본주의는 인류진화의 자연적 결과이고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진행방향이라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즉 공산주의의 출현은 일시적인 돌출현상으로 결국에 소멸될 것이며 인류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그가 제시한 가장 바람직한 정치제도와 모델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였다. 이 정도면 체제선전에 특화된 '어용학자' 임을 만천하에 밝힌 셈이다. 그의 책이 출판되어 파장을 일으킬 무렵에 거대하던 소련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려앉았으니 그의 예언은 적중한 듯했다. 그러나 그의 유명세는 스멀스멀 사라지더니 이제는 잊힌 인물이 되었다. '권불십년'이라 그런 것인지 그가 신줏단지 처럼 모셨던 '아메리칸시스템'은 일극화시대로 접어들자마자 망가지기 시작했다. 과거 로마제국이 Paxromana로 유럽과 지중해를 지배했듯이 미국 역시 Paxamericana의 기치를 들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거라 예상했지만, 세계화(Globalization)는 지지부진했고 각종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정치군사적으로 거듭된 실패로 제국의 위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거악이(Soviet Empire) 사라지자 소악들이(Rougue Nations) 준동을 일으켰고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전선을 방어하기에도 힘이 부쳤다. 마치 힘 빠진 사자가 하이에나 무리에 둘러싸여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경제도 발목을 잡았다. 달러화로 패권을 잡는듯하였으나 경제대공황에 버금가는 몇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반세기동안의 양극화시대와 30년간의 일극화시대를 살아왔던 탓인지 지금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는 다극화시대는 생소하다. 더욱이 다극화를 부추기는 장본인은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탈일극화정책은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착시현상이다. 탈일극화 현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세계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보후퇴의 전략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거대제국이 지배야욕을 스스로 포기한 적은 없었다. 제국의 멸망은 무리한 영토확장, 내부분열, 잦은 내란 등등의 이유로 멸망하는 것이지 스스로 평화주의를 선택하고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니다. 트럼프 2기의 특징인 신고립주의노선은 한 세기동안 방만하게 펼쳐놓았던 정치, 군사, 외교정책들을 정리할 필요성으로 등장한 것이다. 트럼프 2기는 스스로 자평하듯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해 오던 정책적 기조와 성격을 전변 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성격을 가진다. 신고립주의노선의 성격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면 상징적으로 부각하는 몇 가지 현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Nato정책
트럼프 2기의 외교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는 탈나토정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나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함께 치렀고 이후 지구촌의 각종 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세계를 함께 경영했다. 혈맹처럼 얽히고설킨 유럽과의 관계가 러-우전쟁이 마무리 될 무렵에 급 잡스럽게 식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특히 한국의 언론에서), 나토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굴곡져 있었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나토가 개입했을 때부터 삐끗거리더니 러-우 전쟁에 미국을 끌어들인 나토의 행태에 적지 않게 불만이 쌓였던 것 같다. 트럼프의 관점에서는 러-우전쟁의 발단이 러시아의 도발이 아닌 나토의 이간질로 야기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
러-우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오렌지혁명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상실된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크림반도와 돈바스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군사적 옵션을 지속적으로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런 와중에 영국과 프랑스등이 우크라이나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러시아를 침공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개입하자 러시아는 발끈했다. 그 결과는 '침공'이었다. 이후 러-우전쟁은 러시아와 나토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바뀌어버렸고 미국의 개입으로 지루한 공방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찌 되었건 이 전쟁에서 최대 피해자는 우크라이나다. 자국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니 인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도 국가의 존망을 우려할 만큼 정치군사적으로도 당분간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젤레스키정부는 전쟁에서도 패배했고 명분과 실리 또한 잃어버렸다. 나치즘은 여전히 젤렌스키 정권의 실체이고, 정경 및 군은 서로 유착되어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젤레스키정권은 트럼프행정부에서 용도페기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과 나토의 주요국들은 트럼프정책에 반기를 들고 젤렌스키정권에게 동아줄을 제공해주고 있으니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를 보좌하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는 것은 '탈나토정책'이다. 상징적 정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으로 '탈나토'를 거론하고 있다. 나토에서 탈퇴하거나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된다.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한다는 것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토의 붕괴까지를 의미한다. 나토라는 군사협의체는 미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까 하는 우려와 미국의 선택이 시기적절하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트럼프 2기의 특성과 미국 앞에 놓인 당면한 과제를 염두에 두고 바라본다면 이례적 결단이 곧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In 2024, the US is projected to contribute about 16% of NATO's budget, or around $572 million
In 2024, the United States had about 1.33 million active military personnel in NATO, the most of any NATO country.
트럼프 2기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는 '탈나토정책' 주요 나토회원국에게는 발등의 불이다. 미국이 부담하던 군사적, 재정적 부담을 모두 떠안게 된다. 영국, 독일 그리고 프랑스가 담당하던 모든 역할을 다 합쳐도 미국을 대신할 수 없다. 최근의 보도를 모니터링하다 보면 해당국가에서 복지예산을 줄여서라도 국방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핵우산, 공중방어망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기대와 우려가 섞인 호소성 기사도 눈에 띈다. 막상 종전회담이 임박하자 미국과 러시아 모두 영, 불, 독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닭쫏던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렸다. 애써 공들이고 막대한 규모로 무기를 지원해 줬지만 보상은커녕 제 손을 찾아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지정학적으로도 격변이 예상된다. 주로 구 동구권 국가들과 북국권에 인접한 국가들의 입지와 역할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구 동구권 국가들에서 과거 서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던 몇몇 국가들이 중립을 택하거나 또는 친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나토가 붕괴되면 어설프게 끼어들었던 구 동구권 국가들의 이탈이 예상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덴마크를 상대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트럼프는 사석과 공석 가리지 않고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는 '진담'을 가볍게 던져놓았다.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희토류, 석유 및 기타 지하자원의 확보와 북극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입지로 삼겠다는 야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계산법은 단순하지만 심층적인 분석의 결과다. 그린란드의 실효적 지배권은 이미 미국이 가지고 있다. 소련이 심탐탐 노리고 있던 시절에도 덴마크령으로 남아있던 까닭은 미국의 역할 때문이다. 미국은 자비로 자국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영토, 영공, 영해를 방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사일방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본토를 비롯하여 유럽을 포함한 북반구지역을 방어한다.
탈퇴가 현실화되면 나토를 운영할 책임은 고스란히 영국, 프랑스, 독일등이 떠안게 된다.
자국의 국방예산과 맞먹는 규모의 나토예산을 책정하고 내놔야 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나머지 회원국의 사정도 엇 비슷하다. 나토의 재구성 내지는 붕괴된다는 시나리오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트럼프 2기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 나토 길들이기 정책이 과연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은 유럽 길들이기다. 유럽의 정치군사엘리트들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손보고 필요에 따라 솎아내겠다는 트럼프의 의지가 확인된 만큼 여러 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올 것이다.
2. 친러정책?
이 말은 주로 한국언론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딱히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해서 마지못해 사용하는 것 같은데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친러정책'은 과거에도 앞으로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시절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러시아는 가상적국 1 호다. 세계지배를 완수하려면 반드시 멸망시켜야만 하는 '제국'이다. 일시적으로 화해국면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착시현상이다. 트럼프행정부에서 발표되는 말과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친러정책이 아니라 강화된 적대정책임을 알 수 있다. '친러정책'이라는 비현실적인 용어 대신에 그냥 '러시아정책'이라 부르면 될 일을 굳이 '친러'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러시아포비아'를 부추기려 하는 언론의 그릇된 관점 탓이다. 러시아와 트럼프를 한 통속으로 묶어서 반트럼프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언론의 부적절한 처사로 국민은 눈뜬장님이 되고 만다.
트럼프 2기에서 주요 현안으로 다루고 있는 러시아정책의 핵심은 '공존'이고 공존을 위한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3년간의 러-우 전쟁으로 미국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았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그나마 잡아준 것은 러-우전 쟁이었다. 낡아빠진 군사장비와 무장을 무더기로 처리하고 새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어부지리로 얻은 이익이다. 실책은 적대국 러시아의 능력치를 몇 배로 올려놓은 것이다. 러시아는 약간의 군사적 손실을 감수하고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정치군사외교적으로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에너지를 무기로 삼아 전쟁기간 내내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고, 가격상승으로 전쟁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군사적으로도 러-우 전쟁은 러시아에게 둘도 없는 기회를 제공했다. 자고로 군사강국은 실전에 강해야 한다. 실력은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다. 특히 드론전술이 지배하는 현대전에서 러시아는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능력치가 가장 높은 군사강국임을 입증했다.
미국은 MAGA 즉 재건을 위해서 러시아와 공존관계를 맺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러시아는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지 상관없이 제 갈길을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잠시 숨 고르며 덕담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 전략이다.
미국과 나토에서 탄약 공급이 끊기면 러-우전쟁은 곧 끝난다. 러시아도 잠시 주춤할 터이니 그 사이에 미국은 내실을 다지기 위한 정책에 몰입할 수 있다. 중국과의 대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고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중동지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다시 확보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면 미국은 챙길 것이 무척 많다. 천문학적 규모로 쏟아부은 전쟁비용을 원금+이자로 환산하여 청구서를 이미 보냈다. 희토류 등의 채굴권을 가져가겠다는 뉴스가 주목받는다. 그러나 회토류 같은 푼돈 따위에 연연할 미국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부속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암묵적 동의가 필요하다. 러시아와 미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기에 편리한 중립적 형태로 유지시킨다는 큰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 방안은 원래 러시아의 계획이었다. 영구중립국으로 만들어 족쇄를 채워놓는다면 미국이나 유럽이 당장에 손쓸 방법은 없어지지만 문제는 중립화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것. 이 와중에 미국은 경제적 실리를 챙길 것이고,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정세를 만들어 놓기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3. 관세정책
고율관세정책을 가리켜 제살 파먹기라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관세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인 만큼 이만큼 올리면 저쪽에서도 그만큼 올린다. 수입품에 고율관세가 적용되면 당연히 물건값에 반영될 터이니 소비제품의 경우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쌓이게 된다. 평생을 사업을 했던 트럼프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테고... 그렇다면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정책일까?
신고립주의원칙에 입각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관세정책의 앞머리에는 '자국산업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취지와 목적이 있다. 통상적임에도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본질적 내용 때문이다. 고율관세를 적용하면서 수출당사국의 목덜미를 쥐고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자국기업에 던지는 경고성 의미를 포함된다. 미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각지에 진출했고 생산기지도 설치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중국은 생산기지였고 지금은 최대 소비시장이다. 그 결과 미국은 는 경제적 특혜를 누렸으나 제조업이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규모는 일반소비재로부터 중공업기계와 첨단산업에까지 확대되어 미국의 산업구조는 매우 기형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산업구조를 바로잡고 재편하기 위해서 고율관세정책이 거론된 것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였다. 해외로 빠져나간 공장을 다시 불러오려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고율관세는 채찍에 해당된다. 이전처럼 수익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관세가 없는 국내로 공장을 이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원료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것은 당근에 해당된다. 원유가격을 낮춰야 하고 인건비를 줄여서 생산단가를 낮춰야 한다. 인건비의 절감은 자동화로 해결하라고 종용한다. 당근정책이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 없어서 속단할 수 없지만 원료 및 에너지 문제는 관세정책의 연장선에서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
3. 캐나다정책
고율관세가 적용되는 일차 대상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지목했다. 관세정책의 주요 대상이 중국이었으므로
캐나다와 멕시코를 일차적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캐나다와 멕시코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2020년까지 무관세가 적용되었었고 이후 새로운 무역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USMCA)에 따라 부분적으로 관세+무관세가 적용되던 지구상 최대규모의 '자유무역지대'였다.
캐나다와의 관세분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세 이외의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고율관세가 적용되어 심각한 타격을 받는 분야가 주로 농수산물 가공산업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양국사이에 최대 교역물자인 에너지 관련 제품에는 고율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USMCA)에 따라 에너지 관련 제품에는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농수산물에 적용되는 고육관세로 미국인의 식탁에는 약간의 영향을 미치겠지만 캐나다의 농수산업에는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인구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캐나다에서 그토록 많은 양의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이유는 오로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때문이다.
고율관세정책으로 미국이 얻고자 하는 실질적 이득은 북미원유산업의 통제권이다. 미국은 캐나다로부터 원유를 비롯하여 정제된 석유제품을 지금보다도 더 싼값에 공급받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캐나다에서 적용되고 있는 각종 환경 관련법들이 대폭 완하 되거나 페기 되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쉐일유전을 개발하고, 기존의 송유관을 연장시켜 공급비용을 현저히 낮추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채굴되고 있는 쉐일유전의 약 40%가 미국 업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에너지 생산과 공급망을 늘리 기기 위해선 캐나다 원유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 캐나다로서는 농수산업을 보호하고 농어민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캐나다에게 고율관세를 적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방예산의 증액을 요구하기 위한 압박이다. 캐나다와 미국은 같은 대륙에서 공생하고 있기에 매우 견고하고 밀접한 군사동맹 및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 사이에는 수십 가지의 조약과 협정이 만들어져 있어서 군사적 움직임이 같은 경우가 많다. 다만 미국의 국방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으므로 캐나다는 사실상 미국이 구상하는 방위 전략의 하부전력에 해당된다. 2중대 역할을 하는 대신 핵우산으로 비롯하여 공중과 해양에서 전략적 방어수단을 제공받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캐나다의 행보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캐나다는 나토와의 관계를 밀접히 한다는 구실로 나토의 노선에 편승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나토회원국의 일원으로서 1990년대부터 발칸반도에서 활동하면서부터 비롯된 현상이다. 이후 캐나다는 부쩍 구 동구권지역의 전문가로 등장하고 있다. 러-우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는 명목하에 군사적 지원과 반러시아 정책에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바이든행정부가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형제나 다름없는 캐나다를 내세우는 것이 부담을 덜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캐나다의 입장에서는 반러시아노선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직접 맞대고 있는 북극권을 방어하려면 러시아의 팽창전략을 저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이 트럼프의 대러시아정책과 구상에는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참에 캐나다와 나토와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정치군사적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려는 듯한 캐나다의 야심을 한 번쯤 지그시 눌러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최근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캐나다와 나토를 한통속으로 간주하여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게 적용된 고율관세는 일종의 매질에 해당된다. 못된 버르장머리를 바로잡고 규율을 잡기 위해 엄한 매질로 다스릴 채비를 갖춘 것이다. 아직 방위예산을 증액하라는 압박까지는 하지 않고 있지만 주변의 반응에 따라 캐나다에게도 계산서를 보낼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핵우산을 비롯하여 각종 방어자산을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 쓰던 시대가 끝났음이 선포된 것이다. 캐나다로서는 선택적 옵션이 거의 없다. 막대한 예산을 국방비로 책정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지는 방법 외에는...
5. US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정부부서의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시로 편성된 준정부기구 DOGE에서 USAID를 축소 내지는 폐쇄할 것을 건의했을 때 Fox News를 비롯하여 보수성향의 언론에서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USAID를 폐지하겠다는 구상에는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이유가 근거로 작용했다. 하나가 그야말로 '효율성제로'에 가까운 할 일없는 부서였다는 것과, 두 번째로 거론된 것이 정격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상징성이었다. USAID는 케네니정부에서 만들었다. 냉전이 본격화하던 시기에 소련의 남진전략(소비에트의 세계화전략)에 맞서는 미국의 대외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글자 그대로 제3 세계 국가에 인도적 지원을 해주고 자유진영에 묶어두기 위한 전략을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인도적 지원은 명분이자 구실이고 실제는 해당국가의 속사정을 간파하여 대외전략을 짜는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내정에 관여하는 등의 업무를 했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지나가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USAID의 역할은 퇴색되어 갔다. 인도적 지원업무에 치중하다 보니 명분만 앞세우고 실리는 챙기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최근 DOGE의 업무보고를 통해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수백만 달러어치의 '콘돔'을 페허가 되어버린 가자지구에 구호품으로 보낼 계획이었다. 몇 년 전에는 인도양의 한 국가에서 치러진 선거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공정한 선거를 치르게 하기 위하여 개표시스템을 교체해 준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이익이 부합하는 정당, 정치인과 결탁한 내정간섭행위였다. 막대한 예산이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DOGE에 의해 속속들이 밝혀지겠지만 USAID에서 이런 종류의 예산이 사용되려면 유력정치인과 중개인, 기업 그리고 해당국가의 정치인과 모종의 거래가 있어야 한다. 소위 미국판 정경유착의 전말이 곧 드러날 전망이다. 물론 이러한 거래는 일종의 관행으로 제3세계 국가를 길들이는 방법의 하나였다. 한국도 그 혜택을 받으면서 미국의 시종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해외원조가 더 이상 미국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신고립주의 노선에는 무상원조정책은 소멸되었고 외교와 군사는 거래의 원칙에 입각하여 세워질 것임을 대내외에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유독 이 부서를 겨냥하여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이유는 정경유착과 해외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고 구태에 머물고 있는 정치, 경제 엘리트들의 설자리를 소멸해 버리겠다는 결기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