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안재욱
겁없이 달래도 철없이 좋았던
그 시절 그래도 함께여서 좋았어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게 변해도
그대로 있어준 친구여
세상에 꺾일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세상 그걸로 충분해
내 삶이 하나듯 친구도 하나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하루에 배정된 치료 6개를
매일매일 다 가지는 못 했다.
체력이 안 돼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쉬었다.
와이프가, 나는 휴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안 좋아 보이면
무조건 쉬게 했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
멀더라도 천천히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급성기였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후회가 된다)
사실, 그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먹는 약 갯수가
아침, 점심, 저녁 통틀어서 20개 정도나 되어서
약을 먹다가 물배가 찼다.
밥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약을 먹기 위해서 억지로 먹었다.
배고파서 밥을 먹은지가 언젠지...
와이프는 내가 먹는 약을 공부하기도 하고
논문도 봐가면서 공부를 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친한 약사 친구랑 상의도 해 가면서
하나둘씩 빼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통틀어서 5개만 먹었다.
감기가 걸려도 약을 잘 안 먹던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웠다.
언어치료를 받던 2022년 8월 어느 날.
선생님께 부탁해서 이 병원에 오자마자 녹음한
5월 달의 내 목소리 파일을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고작 3개월 전인데,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무슨 90대 할아버지 목소리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들을 정도의 쇳소리가 났다.
지금은 진짜 많이 좋아진 거구나.
그래도 빠른 속도로 얘기하면
왼쪽 혀가 저리면서 굳어져버려가지고
말이 잘 안 나오고 굉장히 피로했다.
이 느낌은 마치 사랑니를 뽑기 위해
마취했을 때의 느낌과 매우 흡사했다.
그 강도보다 훨씬 세긴 하지만 말이다.
오래된 기억은 그나마 뚜렷한데,
하루이틀 전 일은 자주 깜빡깜빡했다.
치매가 이런 거구나. 무서웠다.
심심하면 와이프가 휠체어를 밀고
병원 복도 투어를 시켜줬다.
옥상에 올라가면 너른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1층에 있는 이룸카페에 가서 꽁냥꽁냥
나름 데이트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요거트를 마셨던 것 같다.
아프기 전에는 주말마다 와이프랑
이쁜 카페를 찾아갔었던 터였다.
군산에 있는 카페 도장깨기를
한 3개월 정도 했었나?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보면
출연진들의 건강한 육체(?)가 너무 부러웠다.
나도 걷고 높이뛰고 멀리뛰기 하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초등학생 때는
육상 선수, 높이뛰기 선수, 정구 선수도 했었다.
특히, 정구는 광주에서
2등까지 했었을 만큼 꽤나 잘했었다.
퇴근할 때나 아무리 술에 취했을 때도
주변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1시간 거리의
집까지 천천히 걸어 다녔었다.
술에 취했을 때, 편의점에 들러서
숙취해소제인 빠삐코를 1+1으로
두 개를 사서 한 개는 빨면서,
나머지 한 개는 주머니에 넣고
연타로 두 개를 먹으면서 걸었었다.
나는 걷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지금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게
너무나 답답하다.
걸어 다니며 보이는
사람들이나 풍경들과, 상점들에
그렇게 관심이 갔고,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보고
‘저 사람은 어디가 아프겠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까지 걸어갔었다.
왼손은 오른손보다 훨씬 더 잘 움직이긴 했지만
트리머가 있어서 덜덜 떨렸다.
어느 날, 스마트폰에 깔린
인스타 업데이트 소식을 끄려고
왼손으로 하고 있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그 당시에는 오른손을
거의 움직이지 못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리는 왼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인스타를 끄려면
화면을 옆으로 밀어야 되는데
갑자기 왼손 손가락이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별로 안 친한 사람 사진에
두 번 더블클릭이 되더니
하트를 갑자기 누르고 말았다.
“아악!!” 하고 순간 악 질렀다.
나는 연속으로 두 번 빠르게 누르면
하트가 눌러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엑스세대이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취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와, 순간 등골에 땀이ㅠㅠ
졸지에 나는 그분 거 인스타 사진을 몰래 보다가
맘에 들어서 사진에 공감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가ㅠㅠ
먼 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 준
20년지기 대학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마다
웃고 떠드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친구들만 보면 신나게 떠들었다.
내가 환자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렇게 2~3시간 신나게 떠들고 나서
헤어질 때는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이 친구들은 4년이 지난 지금도
1년에 두 번꼴로 꼬박꼬박
내가 있는 병원까지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나와 같은 추억을 쌓아가는 중이다.
아프기 전에는 그렇게 만나기 힘들더니...
이렇게 만나네.
이 녀석들, 좋은 놈들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최고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와 준
직장 동료 형님도 큰 위안이 되었다.
여러 명의 지인들도 한두 번씩 찾아와 줘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때는 섬망이 있었던 시기였지만,
그때 느꼈었던 몽롱한 따뜻함은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따뜻한 온기로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