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17ㅡ안과와 피자

《눈물이 주룩주룩》 박정현

by 캐롯킴

가슴 먹먹 답답해 이제 와 뭘 어떡해

왠지 너무 쉽게 견딘다 했어

너무 보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멍하니 하늘과 말하기


벗어나려 몸부림치지 않을게요

그리움이란 파도에 몸을 맡긴 채로

내가 아는 그대도 힘겨웠을 텐데

미안해 때늦은 보고 싶음


눈물이 주룩주룩 나의 뺨을 지나서

추억 사이사이 스며드는 밤

한꺼번에 밀려든 그대라는 해일에

난 이리저리 떠내려가

난 깊이깊이 가라앉죠


2023. 2. 17에 작성한 글.



요즘따라 왼쪽 눈이 너무 아프고 불편하다.


통증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이제는 참기 힘든 정도가 됐다.


눈알은 화끈거리면서 쑤시고,
눈꺼풀 밑은 벌레에 물린 것 마냥

부은 느낌이 나고,
눈꺼풀 위는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겁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설명 못 할 생소한 나만의 느낌.
참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겉으로는 티가 하나도 안 나니까 아무도 몰랐다.


만약 내가 치료했을 때 이런 환자를 만나서
이런 얘기를 들었더라면,
나도 이 느낌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근골격계 통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 느낌.


살면서 이런 느낌을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
그만큼 독특한 느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님을 여의다’라는 문장을 쓴다.


근데 자식이 죽으면 그 상실감이 너무 커서
표현할 문장이 없을 정도로 슬프다던데,
이것도 너무 참기 힘들어서
표현할 말이 없는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드네.



통증을 너무 견디기 힘들어져서
어제 군산 삼성안과로 오후 1시 반에 찾아갔다.


역시 명성다운 인기. 대기 인원이 진짜 많았다.
한 20명?


시력 1.5인 내가 안과를 다 와보다니.


참, 살다 보니까 이런 일도 다 있네.


드디어 30분 만에 내 차례가 되고,
안압 검사 및 시력 검사를 진행했다.


뇌출혈에도 여전한 내 양쪽 눈 시력.
1.5.


눈 안쪽을 보려면 동공을 풀어야 한다고 하셔서
산동제라는 안약 비슷한 걸 양쪽 눈에 넣은 다음에
30분 정도 있으니까
양쪽 동공이 다 풀리더니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


평생 동안 세상을 잘 봐 오다가
갑자기 앞이 안 보이니까 엄청 답답하고 무서웠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와이프가 그동안 잘 안 보여서
엄청 불편했겠구나.
이런 느낌이었구나. 그랬구나.


간단한 시력 검사 후에 원장님 진료를 봤다.


시신경이나 안압에는 문제가 별로 없다는 원장님.


나는 너무 불편하길래 시신경이 어떻게 됐나 했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생로병사 같은 걸 보고 나면
마치 나도 저 얘기에 해당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듯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조금 배웠다고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역시 어설프게 알면 좋을 게 없다.


그래도 검사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낫네.
무척 친절하셨다.


내가 생각하는 병원이 갖춰야 할 세 가지를
다 갖춘 듯했다.
친절, 실력, 청결.

광주에서도 유명한 안과에 갔었는데
거기보다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뭔가 체계적인 느낌?


잘되셨으면 좋겠다.
군산 삼성안과.
역시 삼성은 진리다.
아주 한 번 갔다고 호들갑은.
너무 신기했다. 내가 안과를 와보다니.


오른쪽 눈이랑 왼쪽 눈으로 보는 게
동시에 보여서 너무 불편했는데(복시),
한 3시간 정도씩 좌우 번갈아 가면서
안대를 차도 된다네.


오늘 처음으로 안대를 차고서 운동해 봤는데,
서 있을 때는 VAS 10에서 VAS 6 정도로
어지러움 증세가 약간 줄어서
운동하는 데 조금 수월했다.


아닌가? 기분 탓인가?


근데 아쉽게도 걸을 때는
안대를 차나 안 차나 똑같았다.


안대를 찼더니 원근감이 없어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한쪽 눈으로 보니까
두 개로 안 보여서 살맛이 났다.



안과에 들렀다가 바로 나오자마자
피자스쿨에서 오랜만에
맛있는 기본 콤비네이션 피자를 사 먹었다.


대학교 시절에 들었던 교양 수업인
‘안구의 이론과 실제’ 때 들었던 내용이
갑자기 생각났다.


안과 방문 후 1시간 이내로
콤비네이션 피자 섭취 시
안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냥 먹고 싶었다.


나는 도미노나 피자헛 같은

대기업 피자도 좋아하지만,
피자스쿨 같은 좀 더 저렴한 피자가 더 좋다.


물론 피자스쿨도 대기업이겠지만.
꼬다리를 갈릭 소스에 찍어 먹는 그 맛이란...


먹으면서 오열하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진짜 예술이다.


단지 아쉬운 것 한 가지는,
몇 년 전까진 5,900원이었는데
물가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10,900원이 되었다는 것이다.ㅠㅠ


이제는 피자스쿨이 아닌
피자로스쿨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환자로 피자스쿨 사장님이 오셨을 때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피자스쿨 교장선생님.
몸에서 나는 피자 향기가 아주 예술이었다.
어디 이런 피자 향 향수 없나?
성심성의껏 치료해 드렸던 기억이.



요즘, 넷플릭스에서 하는
〈피지컬100〉을 재밌게 보고 있다.


추성훈 형님이 그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한테 안 밀리고
열심히 하시는 게 너무 멋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런 걸 보다 보면
과몰입해서 나도 마치 근육맨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갑자기 필 받아서 푸쉬업 20개를 목표로
아침에 눈 뜨자마자 푸쉬업을 한 지 3일이 됐다.


첫날은 네발기기로 엎드리기도 힘들었는데,
3일째인 오늘 5개 성공!
물론 무릎 꿇고 한거지만.


아프기 전에 PT를 받으면서 운동한 게
여기서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엎드릴 때도 어깨가 너무 아프고 힘들지만,
무릎 꿇은 채로 20개까지는 해야 그만둘 것 같다.


원래는 한 번에 50개도 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냐ㅠㅠ


요새는 전완근이랑 손바닥이 더 세게 저린다.
그동안 경험해 본 바로는
낫기 전에 더 세게 아팠었다.



작년 3월에 말도 못하고 의식도 없었을때
오른쪽 정강이가 너무 저려서
왼쪽 발뒤꿈치로 오른쪽 정강이를
세게 내리쳤었다.


말을 못 하니까 나 스스로 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을 못 하니까 계속 내려찍었던 것 같다.
정강이가 부러질 정도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와이프는 그때 내 오른쪽 정강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단다.
제발 그만 좀 때리라고 울면서
다리를 묶어 놨다고 한다.


이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다행히 지금은 하나도 안 저린다.

작년 7월쯤에는 오른쪽 삼각근이 엄청 저려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만 저린다.


이것 말고도 낫기 전에 세게 아팠던 경험이 많아서,
어디가 아파오면 곧 나으려나 보다 하고
은근히 기분이 좋다.



세면대 앞에 앉아서 혼자 양치한 지 1개월째인데,
몸을 등받이에서 조금만 떼서 상체를 앞으로
5도만 기울여도 오뚝이 마냥
상체가 동서남북으로 뺑뺑 돈다.


그때마다 너무 어지러워서 눈을 질끈 감는다.


언젠가는 혼자서 이를 닦다가
머리를 유리창에 박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 4달 전부터는
추울 때 몸이 자동으로 떨리는 것처럼
머리가 계속 좌우로 흔들린다.


이거 진짜 불편하다.


자려고 누워도 머리가 너무 많이 흔들리는 바람에
잠에 늦게 들 때도 있다.


저번에는 어떤 분이 나보고
그렇게 춥냐며 망토를 덮어주신 적도 있다.


치료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내가
머리를 계속 빠르게 흔들고 있어서
그러셨나 보다.


감사하지만, 나 더운데ㅠㅠ
덥다고 말씀드려도 계속 덮어 주셨다.



치료실에 가면 선생님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또, 치료실의 공기, 온도, 습도, 바람까지 좋았다.
또 왈소리 한다고
와이프한테 등짝 스매싱 맞겠네.
그래도 나는 이런 왈소리가 너무 좋다.


한 40되면 그만해야지 했는데,
50까지는 계속 해야겠다.



동물 농장에 허스키가 나오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큰 개가 몇 마리 키우고 싶어졌다.


시바견, 허스키, 진돗개 이렇게 세 마리.
1인실이라 장난으로 키우자고 했더니,
그럴 거면 고라니를 키우자는 우리 와이프.
한술 더 뜨네. 역시 우리 와이프는 보통이 아니다.


원장님이 회진을 오셨을 때
깜짝 놀라시면서 당장에 방 빼라고 하시겠지.


회진을 들어왔는데
대형견 3마리와 고라니가 있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우실까ㅋㅋ
고라니 울음소리 때문에
여기 층에 계신 환자분들 다 잠 못 이루겠지.
아, 진짜 쓸데없는 상상.



우리 아이들은 이것저것 다 해 봤으면 좋겠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이다.


오늘은
‘어제 돌아가신 분이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나는 딸과 아들이 너무너무 좋다.


만약 아이들이 물에 빠진다면
고민 1도 안 하고 구하러 들어갈 거다.


다행히 딸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너무너무 예쁘다.


주원료는 엄마고, 아빠 향만 첨가됐다.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의 바통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밝게 빛내 주길.


우리 아들은 나를 쏙 빼닮았다.
신기할 만큼.



지금은 귀엽지만,
크면 나처럼 격변할 거라고
미안하다고 아들에게 장난으로 얘기했더니
그게 더 좋다네ㅠㅠ



TV를 보는데 발로 그림 그리는 분이 나왔다.
그걸 보는데 마음이 썩 좋지가 않았다. 슬펐다.
저분도 건강했을 때는
본인이 잘하는 걸 했을 거다.


저분이라고 발로 그림 그리는 게 좋을까?
저건 필사적으로 살려고 하시는 거다.
저분도 원래 잘하는 게 있었을 거다.


TV에서는 다들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칭찬해 주는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좋질 않았다.



나는 병실에서 노래를 자주 듣는다.
너무 좋다. 나는 노래없이는 못 산다.


딸도 이제 많이 커서
좋아하는 노래도 생겼다.


내가 딸만 할 때쯤 했었던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노래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냄새까지
생각나게 하는 신기한 소리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컸을 때,
지금 듣는 노래가
아름답게 기억됐으면 좋겠다.


지금 힘들게 살아가면서 들었던 노래가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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