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16ㅡ적극과 긍정

《지나간다》 김범수

by 캐롯킴

얼마나 아프고 아파야 끝이 날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울어야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이별의 끝을.



2023.2.8 에 작성한 글.



빠니보틀 여행 동영상을 예전부터 봐 왔었다.
구독자가 50만 명 정도 됐을 때부터 봤나 보다.


요즘에는 노홍철, 곽튜브랑

해외여행을 같이 다니는 편을 재밌게 보고 있다.


아까 그 영상을 보는데

노홍철이 오토바이를 타다가 쓰러져서
피가 많이 나는 바람에 수술까지 한

위험천만한 장면이 나왔다.


우선 사고가 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넘어져서 몸에서 피가 철철 나는데도
“이게 다 추억이다”라고 말하면서
빠니보틀에게 영상 찍었냐고 물어보는

노홍철을 보고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약 나도 저 상황에 처했더라도
노홍철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유치원 체육대회를 할 때도
그 많은 학부모들 앞에 나가서

춤추고 노래도 했었다.


이어달리기 주자로도 나갔었다.


창피하긴 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도 기억 못 할 게 뻔했기 때문에

눈 딱 감고 나간 거였다.


창피함은 잠깐이지만, 추억은 오래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다.


아이들이 커서 이렇게 생각해 주길 바랐다.


‘우리 아빠는 남들 앞에서도

기 죽지 않고 당당하시구나.’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요즘,
지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려나?


창피한 건 순간이고,
시간이 지나면 추억만 남는다.



직장 동료 형님과 푸꾸옥 현지 펍에 갔을 때도
외국인들 앞에서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도 부르고
(영어도 잘 못 하면서 ㅋㅋ)
기타를 든 채로 춤도 췄었다.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말이다.


그때는 정말 많이 창피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창피함은

하나도 생각 안 나고
추억만 가득하다.


거짓말이다.

솔직히 많이 창피했었다.
그래도 그냥 눈 딱 감고 나갔었다.


아이들도 남들 앞에서 기죽지 말고
나처럼 이것저것 다 해 봤으면 좋겠다.


한 번뿐인 인생,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군대 시절 2년도
그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고 길게 느껴졌었는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그냥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지금 이 힘든 생활도
몇 년 있으면 다 추억이겠지?


아닌가?

그냥 기억이 되려나?


이것도 지나고 나면 한낱 점에 불과할 거다.
빨리 지나갔으면ㅠㅠ


김범수의 ‘지나간다’를 듣다가
이 가사에 울컥했다.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그동안 나는 정말 재밌게 살아왔다.
초·중·고·대 모두.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그동안 충분히 재미있게 살았으니,
이제 내가 가족 대표로 벌(?)을 받을 차례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프고 나서 얻은 것도 많다.
선생님들과 말도 섞어 보고,
넷플릭스·유튜브·TV·영화도 실컷 보고,
푹 쉬니까 피부도 좋아지고,
목욕이나 머리도 내가 안 감아도 된다.


뇌출혈 환자 체험도 실컷 하고,
잠도 신생아급으로 많이 잔다.
그러고 보니까 출혈의 장점(?)도 많네.


오늘 아침에 간병인 이모님께 여쭤봤다.
“이모, 70살이 넘으면 무슨 느낌이에요?”


이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제일 중요해.”


나는 70살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전쟁통에도 꽃은 핀다.
지금 혼자 전쟁 중이지만 긍정적으로 살자.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다.
하루빨리 나아서 다 갚아야 한다.


다 낫고 나면 프리허그도 해 보고 싶다.
남들 시선이 너무 무섭다.
아픈 뒤로 자신감을 잃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적장애 1급인 동생 때문에 많이 양보해야 했다.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원래 ‘남을 먼저 사랑하자’가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틀렸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내가 정한 가훈 세 가지.


나를 먼저 사랑하자.
모든 건 잘 될 거야.
아는 것이 힘이다.


내가 인지가 멀쩡해서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아빠 노릇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몸이 아프고 인지가 멀쩡한 게
그 반대보다 훨씬 낫다.
나만 힘든 게 낫다. 그래, 이게 더 낫다.


아이들이 살기 너무 힘들 때
나에게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안에 걸어서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요즘은 강한 보조를 받고 걷는다.

왠지 집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었다.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병원에 있다)


속도는 달팽이 같다.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면 덜 무섭다.



요즘 내가 내린 결론:

영어 공부와 주식 공부 꾸준히 하기.


하루에 영어 단어 두 개씩만 외워도

1년이면 얼마나 이 외우게 될까?

나는 아직 쓸모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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