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을 겨울에 살아》 브라이언
너 때문에 아픔이 가시질 않고
햇살을 입어도 시린 기억에 스며서
그리움에 일년을 겨울에 살아
비에 숨어도 눈물이 가려지지가 않아.
23. 2. 1에 작성한 글.
이틀 전부터 감기에 걸렸다.
열을 재봤더니 38.5도가 나왔다.
첫날은 코로나, 독감이 안 뜨더니
셋째 날이 되니까 독감 양성반응이 떴다.
뇌출혈을 겪은 뒤로
열 38.5도 정도는 껌이다.
죽을 정도만 아니면 된다.
열 나는 걸로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큰 걸 겪고 나니 이 정도는 장난 같다.
오히려 합법적으로(?)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원장님이 내일부터 치료를 다시 시작하잔다.
술, 담배를 안 하니까 건강해져서 그런가
엄청 빨리 낫네.
근데 너무너무 심심하다.
치료를 안 받으니까 시간이 잘 안 갔다.
예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봤는데
맞춤법이 틀린 것도 많고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이 글도 몇 년 뒤에 보면 어색하겠지?
(지금 쓰는 건 예전보다 많이 나아짐)
요즘은 어떤 내용의 글을 올릴지
고민하는 재미로 산다.
병실에서 인형 눈이라도 붙일까?
아니, 난 복시이기 때문에 잘못 붙여서
분명 반품 처리당할 게 뻔하다.
돈을 조금만 줘도 좋으니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
일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니까
몸이 좀 쑤셔서 미치겠다.
이래서 할머니들이 연세가 드셔도
밭일을 하시는 거였구나.
아프고 난 뒤로 깨달은 게 진짜 많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을
절대 질투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하고,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잘해 주고,
어지간한 건 혼자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긍정적이 되었다.
나는 말할 때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을 보면 너무 멋있다.
유재석은 어떤 돌발 상황이 와도
재치 있게 넘길 줄 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다.
어디에 끼나 다 잘 어울린다.
나도 그렇게 돼야지.
예전에 했었던 사소한 것들이 너무 그립다.
아침에 스쿠터 타고 출근했던 것.
(작업치료 할 때 잡았던 봉이
스쿠터 손잡이 두께랑 비슷해서
내 스쿠터 생각이 많이 났다)
점심 때 6층 식당까지
계단으로 달려서 한 번에 뛰어 올라간 것.
치료하면서 환자들과
이런저런 얘기했던 것.
치료 끝나고 집에 갈 때
애들 간식을 잔뜩 사서 퇴근했었던 것.
밤마다 와이프랑 같이 헬스장에 갔었던 것.
아이들과 바닥에 누워서 뒹굴뒹굴했던 것.
가족과 손잡고 마트에 걸어갔다가
밤에 산책했던 것.
아프기 몇달 전에 아이들과 눈싸움 했을 때
아들이 내 머리에
눈을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아빠가 뇌출혈 온 게 아니냐며
미안하다고 말했던 아들.
귀여워 죽겠다. 진짜.
산에 있는 수많은 무덤들을 보고
산에 왜 이렇게 혹이 많이 났냐고 묻던 아들.
생각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딸은 쭈그려 앉아서 보는 변기를 보고
누운 변기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어찌나 웃었던지.
지금 일 년 가까이 침상 생활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26년 현재 기준으로는 4년 째)
작년 5월까지만 해도
그해 12월이면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때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이다.
봄에는 따스한 공기 때문에,
여름에는 휴가철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가을에는 단풍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겨울에는 아프기 전날에 아이들과 놀았었던
기억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2023년도 그러려나.
내 인생 계획에 뇌출혈은 1도 없었다.
내가 못 걷는 건 계획에 전혀 없었다.
이러다가 내가 침상 생활과 휠체어 생활에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잘 해내리라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이 현실이 믿기지 않고,
진짜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매일매일 내 뇌를 세뇌시킨다.
무섭지 않다고.
전국에 나처럼 힘드신 분이 얼마나 많을까.
다들 얼마나 무서울까.
다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닐 텐데.
너무 불쌍하다.
나는 그래도 그동안
인생을 나름 재밌게 잘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H.O.T 따라 한다고 벙거지 장갑이랑 모자 샀던 일,
오락실에 코노
(그때는 깡통 노래방이나 오래방이라고 불렀음)가
처음 생겨서 엄청 신기해했던 일,
친구 집에서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인터넷을 처음 써봤던 일.
중학교 때는
PC방이 처음 생겨서 한 시간에
선불로 1,500원을 주고 스타크래프트 했던 일,
펌프 하려고 족보 외워서
혼자서 더블로 했던 일,
삐삐가 처음 생겨서 공중전화에 가서 살았던 일,
집에서 전화선을 빼고
모뎀 선을 연결해서 포트리스를 했던 일.
고등학교 때는
MP3로 보아 노래 듣고,
PMP 듣고, CDP 들었던 일,
2002년 월드컵 응원한다고
얼굴에 페인팅하고 광주 도청에 나갔던 일.
대학교 때는
4년 내내 축제 가요제에 나가서
4학년 때 어거지로 노래대회 대상 탔던 일,
봉사활동 동아리 회장 하면서
볼꼴 못 볼꼴 다 봤던 일,
국시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왕창 먹었던 일도 있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참 재밌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둘 다 겪었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다.
단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만 있을 뿐이다.
나는 낫고 나면 이 일은 안 할 것 같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
나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예전에 무당 환자분이
나는 정육점 할 팔자라고 했었다.
나는 생고기 절대 못 만지는데...
도수치료를 궁금해하는 선생님들이 있으면
남김없이 다 퍼주고 싶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느낌으로.
내가 몸만 멀쩡하면
직접 다 보여줄 텐데.
재밌는 거 진짜 많은데,
너무 아쉽다.
선생님들에게 도움 될 만한 글을
최대한 많이 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