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이찬혁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잠에서 일어나
악몽을 꾼 것 같은데
나를 둘러싼 사람들
고장 나버린 내 몸을 두고
저 돌팔이 의사가 사망 선고를 하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2023.1.19 에 작성한 글.
나는 여행 프로그램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요즘에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챙겨보고 있다.
나는 기안84 같은 스타일이 참 좋다.
남 눈치 안 보고 즉흥적으로 사는 스타일.
여행 프로그램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저 분들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여행도 다니고 돈도 버나’ 이런 생각이 든다.
물론 말 못 할 힘듦도 있겠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대리만족이 제대로 된다.
그런 생각도 해봤다.
휠체어 타고 제주도 여행 가는 상상.
TV에 나오는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을 보면
예전에는 마냥 좋기만 했다면
이제는 우리 딸, 아들이
그 연예인을 닮았으면 한다.
이제는 온전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느낌이다.
우리 아들은 차은우,
딸은 박은빈처럼 자라길...
박은빈 너무 좋아!!!
요즘은 느리더라도 혼자서 휠체어를 밀고
치료실까지 왔다 갔다 한다.
한 달 정도 됐는데
어깨도 조금 넓어지고, 팔도 제법 두꺼워졌다.
앞으로만 밀면 전삼각근만 발달되니까
가끔씩 뒤로도 밀어준다.
아무도 안 볼 때 말이다.
휠체어는 옆으로는 밀 수가 없으니
어깨 넓이에 중요한 중삼각근은 포기할 수밖에.
발도 쓰면 좋겠지만 오른발이 잘 안 움직인다.
잘 움직이는 왼쪽 다리만 쓰면
몸 전체가 틀어질까 봐 안 한다.
근데 이렇게 다니는 분도 많더라.
휠체어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거북목이 더 심해졌다.
SKTA(대한민국 거북이 협회)
(South Korea Turtle Association)에서
10년 동안 회장을 역임한 와이프가
나에게 회장직을 넘겨주고 부회장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1,000만 거북인들을 이끄느라 고생 많았다.
약소하지만 감사패를 전달한다.
맨날 이러고 논다.
내가 와이프 거북목을 보고
바다로 가는 게
거북목을 교정하는 것보다 빠르겠다며
항상 놀렸었는데,
이렇게 역전되다니...ㅠㅠ
이제 우리 와이프도, 우리 아이들도
“목!!”이라고 외치면서
내가 목이 앞으로 나가면 경고 사인을 준다.
이럴 수가. 내가 거북이라니.
아직까지는 자는 도중에 체위 변경을
두 번 정도 해줘야 한다.
원래는 와이프가 해 줬었는데
요즘에는 나 스스로 할 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부시럭대는 소리를 듣고
와이프가 꼭 습관처럼 일어난다.
미안하게시리.
습관이 돼 버린 것 같았다.
예전에는 오다리를 교정한다고
다리 전체를 끈 3개로 묶고 잤었다.
그때 다리를 묶고 자서인지 몰라도
자다가 가위에 눌린 적도 있었다.
진짜 신기했다.
치료실을 보다보면
젊은 분들도 있고, 나이 드신 분들도 있다.
젊은 분들은 그 좋은 청춘을 못 즐겨서
너무 안타깝고,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게 자식들 다 키워 놓고
이제서야 좀 여유가 생겼는데
아프게 돼 버려서 참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중간이라 조금은 덜 아쉽다.
최대한 긍정 회로를 돌리자면 말이다.
이제 불혹을 앞둔 나이다.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다.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잠깐 쉬어 가라고 아픈 게 아닐까?
최대한 긍정 회로를 돌리자면 말이다.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일까?
억울하고 화났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 조금씩 받아들여 가는 중이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는가.
예전에 내가 도수치료를 한 번 해 드렸던 분이
소뇌에 뇌출혈이 와서
콧줄, 소변줄 다 하신 상태로
2021년 말에 갑자기 아픈 상태로 나타나셨다.
휠체어를 타시고 말이다.
그때 진짜 깜짝 놀랐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그런데 5개월 전쯤에
내가 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때 본 이후로 1년 만에 다시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고 계시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무척이나 부럽기도 했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거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셔서 참 다행이다.
요즘엔 내가 예전보다 상태가 좋아져서
밤에 가끔씩 3~4시간씩은
와이프한테 지인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혼자 소변통에다가 소변 보고
태블릿으로 넷플릭스 영화
두 편 정도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무서웠지만
와이프를 쉬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별로 무섭지 않더라.
보호자도 숨 쉴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좋았다.
와이프한테 뭔가를 해 줄 수 있어서.
나와 같이 재활하시는 분들을 보면
한 배를 탄 동료 같다.
그분들 모두 안 아팠을 때는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멋지게 살아가셨을 거다.
옛날 속담에
호랑이한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환자분들, 보호자들 모두
예전이 너무너무 그립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서
다들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완벽하게는 아니겠지만
예전처럼 모두 멀쩡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나는 적어도 1년 본다.
적어도다.(현재 4년을 앞두고 있음ㅠㅠ)
이 현실이 무섭지만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겨낼 자신 있다.
내가 걸어서 집에 갈 때까지만
우리 가족, 장인·장모님이
잘 버텨 줬으면 좋겠다.
내가 열심히 해서
짐이 안 되게 노력해야겠다.
사연 없이 마냥 즐거운 사람은 없다.
모두들 감추고 살아간다.
아무 일 없는 듯이.
그러니까
왜 나만 그럴까 하는 생각은 버리자.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다.
나도 이제 곧 벌써 불혹이다.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
20대와 30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여생은 힘들게 얻은 만큼
최대한 의미 있게 살고 싶다.
훌륭한
남편, 아빠, 친구, 오빠, 동생, 형이 되고 싶다.
밑에 사람들에게는 존경받고
위에 사람들에게는 인정받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며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딸, 아들에게 인생의 지혜도 많이 알려 주고 싶다.
엄청 안 좋은 상황에서도
내가 악착같이 살아남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해 왔다.
내가 좋아하는 김창옥 교수님의 명강의가 생각난다.
“여기까지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