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지》 권진아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나는 운이 좋았지
나는 운이 좋았지
나는 운이 좋았지
넌 내게 전부였지
나는 운이 좋았지
내 삶에서 나보다도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2023년 2월 23일에 작성한 글.
내가 만약 뇌출혈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본도 가보고
예전처럼 그대로 일하고 있겠지?
다음 주 환자 예약 잡느라 정신없겠지?
친해지고 싶은 선생님들이랑
지금도 여전히 인사만 하고 있겠지?
도수치료실에 한 번씩 놀러 가면
나 빼고 다 예전 그대로다.
내 이름이 적힌 예약 현황판도
2022년 2월 19일에 멈춘 채 그대로 적혀 있다.
들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어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안 지우는 건지.
재활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복도 중간에 있는
도수치료실을 쳐다본다.
볼 때마다 예전 생각이 참 많이 난다.
내 척순이(여자 척추 모형),
경락이(몸에 경락이 표시된 사람)
다 그대로다.
척순이는 얼마 전
나를 치료해 주는 여 선생님의 동생이 되었다.
잘 가라~ 척순이. 10년 넘게 고생 많았다.
척순이가 건강하던 시절에.
척추뼈를 하도 돌려대서 경추 1번 쪽 추골동맥이 터지는 바람에
척순이도 뇌출혈이 왔다. 짠한 것ㅠㅠ
얘는 나보다 더 세게 왔다. 겨우 숨만 붙어 있다.
그동안 참 오래도 썼다.
나를 치료해 주는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걸을 때 종아리가 저린 환자분을 치료하는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치료해야 되냐고 묻길래
나의 유일한 기술인 오랄 테라피로 알려드렸다.
복잡한 기술이 섞여 있어서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근데 치료 후에
두 분이나 좋아지게 했다는 얘길 듣고
속으로 많이 놀랐다.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역시 선생님은 척순이를 가질 자격이 있어!
안과를 다녀온 이후로
양쪽 눈에 번갈아 가면서 안대를 차고 다닌다.
첫날은 싼 걸 찼더니 왼쪽 눈이 감각이 없어서
각막에 상처가 나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차고 다녔다.
지금은 빨갛다ㅠㅠ
확실히 비싼 게 더 좋다.
안대를 쓰니 사람들이
눈이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해 주었다.
안 찼을 때는 아무도 몰랐는데.
겉모습도 중요하단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도 이렇게 불편한데,
대상포진, CRPS, 통풍 같은 건 얼마나 아플까.
아픈 뒤로 얼굴이 많이 변했다.
6개월 넘게 오른쪽으로만 씹었더니
왼쪽 턱은 현빈이고,
오른쪽 턱은 파이터 같이 커져버렸다.
하관이 크면 말년이 좋다는데,
나는 뭐임? 좋다 마는 거임?
사진 찍을 때 왼쪽 얼굴만 나오게 찍어야겠다.
원래 무쌍인데 왼쪽 눈만 쌍꺼풀이 진해졌다.
요즘에 무쌍인 날이 많아져서 기부니가 좋다.
왼쪽 관자놀이는 푹 꺼져서 그런지
왼쪽 광대뼈가 엄청 돌출돼 보인다.
턱과 관자놀이가 푹 꺼져버려서
그 사이에 있는 광대뼈가 돌출돼 보였다.
원래는 뒤통수가 눌려 보이는 게 싫어서
고속버스를 타면 앉아서 잠도 안 잤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눕는다.
뒤통수에 맨날 까치집이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뒤통수에 까치 몇 마리쯤은 키워야지.
이제 이런 건 별로 신경 안 쓴다.
아픈 것도 힘들지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가끔씩 치료실에서
갑자기 서럽게 우는 환자분이 보인다.
나는 그분이 왜 우는지 알겠더라.
나도 혼자 코끼리 자전거를 타거나
멍하니 앉아서 전기치료를 하다가 보면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을 때가 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
현실이 꿈만 같다.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안 된다.
놓치면 끝없이 추락한다.
멘탈 잘 잡아야 한다.
만약,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한 번에 안 일어나지고
걷지를 못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거다.
근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많은 환자분들이 매일매일 겪고 있는 거다.
내가 2022년 4월 어느 날에 그랬다.
진짜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웠다.
아프기 전에는 몰랐다.
이 정도로 무서울지.
작년 초에는 인지가 멀쩡하지 않아서
힘든 줄은 몰랐다.
지금 그때보다 상태는 좋아졌지만,
인지가 너무 좋아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때보다 몇 배로 더 무섭다.
이제서야 현실을 마주하는 거다.
내 몸이 이런다는 게 믿기지 않고
예전처럼 내가 다시 살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한다.
작년 2월달 쓰러지기 전에
혀가 얼얼했을 때 병원에 바로 갈걸ㅠㅠ
운동할 때나 서서 왼발로 서 있거나
걷는 운동을 하는 중에는
나의 무한 긍정 마인드가 소용이 없어진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무섭다.
번지점프 뺨 친다.
소리 지르면서 이 악물고 덜덜 떨면서 한다.
푸시업 한 지 1주일.
이제 10개 가능.
무릎 펴고도 1개 성공했다.
앗싸!
요즘엔 꿈에서도 내가 휠체어를 탄 채로 나온다.
깨고 나서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라도 뛰어다니는 게 좋았는데...
아쉽다.
내가 사는 이유는
와이프랑 우리 아이들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나한테 요즘 미안하단 말을
부쩍이나 많이 한다.
안 그래도 된다.
나는 우리 아이들 덕분에 버틸 수 있는 거니까.
우리 아이들은 엄청 밝다.
아이들이 내 걱정하면서
우울해하는 건 원치 않는다.
아이들이 요즘 나한테 사랑한다고 많이 해 준다.
고맙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누군가를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
와이프랑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렇겠지.
진짜 내 자랑이다.
세계에는 제5대 미스터리가 있다.
피라미드
마추픽추
나스카의 문양
만리장성
내가 와이프한테 고백받은 것
5번은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스터리다.
저건 내 유일한 훈장 같은 거다.
첨 봤을 때 진짜 여신인 줄 알았다.
20대 중반의 와이프는 지금보다 더 예뻤었다.
벌써 13년이나 지났네.
연애할 때 웃긴 일도 진짜 많았다.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서로 손 잡기도 창피해했었고
(지금은 핸드크림 발라야 함ㅋ)
서로 눈을 빤히 3초만 쳐다봐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만 같았다.
지금은 눈싸움에 안 지려고
서로 눈에다 핏발 세울 거다ㅋㅋ
그래도 지금이 더 좋다.
와이프도 그러려나.
나만 그러면 낭팬데...;;
우리 딸도 크면 와이프처럼 크겠지?
처음 만났을 때도 좋았는데,
13년을 같이 산 지금이 더 좋다.
나는 비록 지금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진짜 행운아인 게 분명하다.
이런 와이프와 이런 딸, 아들과 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