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19ㅡ발병 1년 째

《난치병》 하림

by 캐롯킴

한잔 술이 밤을 마취할 뿐

내 온몸에 너무 퍼져버린 추억은

이젠 손 쓸 수가 없어서

그냥 떠오르게 놔두죠



2023. 3. 3에 작성한 글.



이 병원에 온 지도 벌써 6개월.

광주에 있을 때는 집에도 안 가고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광주에서의 주말은 시간이 너무 안 갔었는데
지금은 주말마다 집에 가니까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얼마 전 2023년 2월 19일은
뇌출혈이 발병한 지 딱 1년 째 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에
초는 고작 1개를 꽂았다.


그렇게 내 인생 두 번째 돌잔치를 했다.


벌써 1년이라니...
참 시간 빠르다.

감개무량하다.


기분 참 이상하더라.


작년 5월쯤에는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걷고 운전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뇌출혈을 겪으신 다른 분들을 보면
대부분 복시 때문에 힘들다거나
말이 어눌하다거나 그렇지,
못 걷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내가 심한 케이스같았다.


출혈 부위는 5군데, 출혈량은 200cc나 됐으니 뭐.


살아 있다는 게 감사한 거지 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딱 맞다.


언젠가 TV에 나온 의사가
기름범벅 대창에 소주를

엄청 맛있게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곱창에 소주 안 먹은 지도 벌써 1년이네.


평생동안 라면만 먹고 살아오신 할아버지한테
어떤 의사 선생님이

그런 습관은 안 좋다고 하셨는데,
그 할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신 걸 보고
“아… 역시 유전자가 제일 중요하구나” 싶었다.


집에서 2월 19일에 1주년 파티를 하는데,
초를 불 때 지나온 1년이 생각나 울컥해서
눈물을 겨우 참았다.


오른쪽 입술이 마비된 터라
바람이 옆으로 새서 불을 끄는 데 한참 걸렸다.


아이들은 내가 실수할 때마다 깔깔깔 웃는다.
귀여운 것들.


어릴 때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성인이 돼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지금은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갔다.
다시 남들만큼만 평범하게 살고 싶다.


뇌졸중은 꼭 예방해야 한다.
진짜 힘들다.


수술한다고 낫는 것도 아니고,
회복이 빠른 것도 아니다.
멘탈이 약하면 버티기 진짜 힘들다.


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이건 진짜 보통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 ‘피지컬100’을 보는데 너무 부러웠다.


나는 체력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걸

참 좋아하는데,
지금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금방 쓰러질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난다.

너무 너무 무섭다.


겉으로는 티가 하나도 안 난다.
소뇌의 중요성을 요즘 많이 느낀다.
몸이 가분수가 돼버린 느낌이다.
작은 발로 큰 몸을 지탱한 채로 서있는 느낌.


걷는 느낌을 설명하고 싶은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6개월째 생각 중이다.



뇌가소성, 신경가소성 관련 논문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


초반 6개월은 폭발적으로 회복했었는데
지금은 정체기다.
자고 일어나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게 멘탈을 흔든다.


이제 진짜 나와의 싸움이다.
솔직히 좀 쫄린다.
그래도 겉으로 티는 안 낸다.



나를 처음에 수술한 의사는
내가 평생 사지마비로 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주기적으로 친구들도 만나고 있고,
나 스스로 밥도 먹고 있고, 농담도 잘 한다.


나중에 걷게 되면 꼭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 사지마비 아닙니다.”

의사들은 왜 항상 최악부터 말할까.


우리 병원 원장님은

나에게 늘 넘치는 파이팅을 외치신다.



양손을 깍지 끼면 느낌이 이상하다.


왼손은 오른손의 온도를 느낄 수 있지만
오른손은 왼손의 온도를 느끼지 못 한다.


그래도 살 만하다.


눈을 감고서 예전에 걷던 느낌을

자주 상상해보곤 한다.
이런 습관이 손상된 후두엽의 회복에 좋다더라.



아픈 뒤로 허리 근육이 많이 굳어버렸다.
그래서 매일 허리 멕켄지 운동이랑 푸시업을 한다.


이제는 한 번에 푸시업을 20개도 할 줄 안다.



3시 10분부터 3시 35분까지는 걷는 운동 시간.
요즘에는 40분 가까이나 운동을 한다.


선생님께 감사하고 미안하고 싫고ㅋㅋ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


타인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게 오히려 더 편하다.

근데, 내 선생님들은 달랐다.


예전에 치료사로 일 했을 때

모든 환자한테 너무 감정이입을 했었다.
그래서 항상 힘들었었다.


지금 담당 선생님들한테 정말 고맙다.
항상 진짜 열심히 해주신다.



요즘에는 아들과 오목을 두고 논다.

직접 종이에다가 선들을 그려서 말이다.


근데 이게 뭐지?ㅎㄷㄷ

요즘 젊은 세대들의 오목 스타일인가?
멘탈 공격인가 싶다ㅋㅋ한참을 웃었다.

너무 귀여워서 말이다.

자석 오목 판을 사서 나랑 몇 판을 두더니

나를 이길 정도로 실력이 확 늘었다.


어느날 두손으로 그릇을 들고

라면 국물을 마시다가

손이 떨려서 다 엎어버렸다.
콧구멍에 다 들어갔다.

너무 매웠다ㅠㅠ



우리집 고영희는

박스만 있으면 거기에 들어간다.
얘네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ㅋㅋ


귀여우니까 봐준다.


그녀의 늠름한 자세와 당당한 눈빛을 보라.


쓰다 보니까 자서전이 돼버렸다.


이거 언제까지 쓰지.
100편는 써야겠다.

(164편까지 써놓은 상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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