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치료 실패 경험담 시리즈 1

패기와 객기 사이

by 캐롯킴

지금까지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녀 봤는데
치료 성공담은 많이 본 반면에
실패 경험담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서
나의 치료 실패 경험담을

용기 내어 꺼내보려고 한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내 흑역사.


이건 100% 재미로 봐주시길...


1년 차 때 첫 근무지였던, 나주 읍내에 위치한
어느 조그마한 의원.


수습 기간이라는 명목 하에
3개월 동안 20만 원을 뗀

1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부푼 마음을 안고, 2011년 5월에 첫 출근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1년 차 4명이 모여서 말이다.

완전 오합지졸.
(12년 전인데도 지금과 월급이 그렇게
차이가 안 나네.. 참..)


아무래도 실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갑자기 나온 실장직 뽑기.


나와 내 친구를 제외한
(나와 내 친구는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두 분의 형님 중에 다수결에서 이긴
둘째 형님인 유ㅇㅇ 형님께서 실장이 되었다.


트리거 포인트라는 기본도 모른 채
나는 그냥 마구잡이로 주물러 댔고

나는 내가
물리치료사인지 마사지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주 시골이라 그런지 인심이 넘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갖가지 선물을

자주 갖다 주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거였다.


잘 주물러줘서 고맙다며

어떤 할머니께서 어느 날 갖고 오신 황금 보자기.
황금 보자기에 싸인 건 다름 아닌 산 닭.
생닭이 아닌, 산 닭이었다!!!


와~~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꼬끼오~”
닭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 ㅋㅋ 저걸 제가 어떻게 갖고 가요 ㅋ”
라고 말씀드리자


닭의 머리에 달린 벼슬을

사정없이 세게 내려치시며
“조용히 있어잉!”이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테스토스테론이 넘치시던 그 모습.


“아니, 젊은 총각이

쩌것도 못 잡아서 어찐대잉~~”


ㅠㅠ 정중히 사양하고 나서

보내드렸던 기억이 난다.


한 6개월 정도를 그 병원에서 일했던 것 같은데
마사지에 중독되신 어떤 할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더숙이랑 등 좀 한번 세게 눌러봐~~”
(전라남도 사투리인 더숙이는, 어깨를 말한다)


(처음에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오신 분의 성함이
더숙이인 줄 알았다)
김더숙 씨처럼.


1년 차답게 의욕이 넘치고 젊었던 26세의 나는
그 할아버지 등 위에 올라앉은 채로
내 양쪽 팔꿈치로 세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시원하시죠?”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움)


“어~~ 근데 좀 더 쎄믄 좋겄어잉”


그 말을 듣자마자 제대로 흥분한 나는
곡괭이로 땅을 파듯
그 할아버지의 등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팔꿈치로 한참을 문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뭐에 홀렸었나 보다.


뚝!!!”


조용하던 치료실의 적막을 깨고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윽!”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고,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그렇게 큰지

그때 처음 알았다.


순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물리치료학과 4년제 졸업생다운 멘트를 날렸다.


“놀라셨죠? 걱정하지 마세요.
뼈가 맞춰지는 소리예요” ㅡㅡ;;;


그땐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창피하다.
어지간히 낯짝이 두꺼워야지 ㅠㅠ
할아버지한테 지금도 죄송하다.


그 사건 이후로 치료 시작 전에

환자분께 골다공증이 있는지 물어보는 건

한참 동안 나의 습관이었다.


매일같이 출근하시던 그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나주 본토 욕을 실컷 날리시고는
그다음 날부터 종적을 감추셨다.


이게 내 임상 첫 컴플레인 사건이다.


와.. 지금 십몇 년이 지나서 그렇지
그때는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었다.


저 자식을 죽이네 살리네 말씀하시기도 했고

소송 얘기도 나왔었고
원장님께 불려가서 이번 달 월급을
깎는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수군대던 환자들을 많이 보기도 했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1년 차 실장 형님께 불려가서
욕을 한바가지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첫 월급을 받던 날
처음으로 그렇게 큰돈을 만져봤었던 터라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받은 170만 원을 쪼개서 부모님 속옷을 샀다.


그땐 그게 국룰이었는데
그 돈이 왜 그렇게 아깝던지.(불효 자식)


그동안 나에게 주시던 용돈이
이렇게 힘들게 번 거였구나...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그냥 흑역사의 서막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2편은, 내일 토요일 밤 7시에 공개됩니다.

(총 5편까지 있음, 감동 주의)

작가의 이전글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