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겁을 쓴 초짜
1년 차 4명이서
서로 내가 잘났네 네가 잘났네 하며
우물 안의 개구리마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현실에 안주한 채, 6개월을 어찌저찌 버텼다.
고숙의 소개로
광주에서 치료 잘 하기로 소문난
의원으로 옮겼다.
그곳도 4명이서 근무하는 체제였는데
1년 차 형님, 40대 형님, 50대 형님이랑
같이 일하게 되었다.
연차 많은 선생님들이랑 같이 일하려니
괜시리 마음이 떨렸었다.
사무장님이 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서 계셔서
더 떨렸었다.
무슨 CCTV 앞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연차 많은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치료를 하실지가 너무 궁금했었다.
그곳은 15분에 한 명씩 치료하는
소위 마사지 공장 같은 곳이었다.
팔꿈치에 하얀색 아대를 찬 채로 1시간에 4명씩
그렇게 하루 종일 치료해야만 했다.
나주보다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주무르는 곳이었다.
통증의 원인을 찾는 과정은 1도 없었지만
물리치료 비용만 내면
공짜로 15분이나 주물러 주니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환자가 줄을 섰다.
4명이서 하루에 120명을 치료했다.
나는 그때까지
물리치료는 다 이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치료가 끝나면, 몸살이 날 수도 있으니
목욕탕에 가서 몸을 풀어주라는 말도
꼭 곁들였다.
너무 힘들어서, 일이 끝나고 나면
목욕탕에 가서 몸을 지지는 건
환자가 아닌 나였다.
(돈이 아까워서, 집에서 샤워기로 지졌다)
참.. 대학교에서 4년이나 배우고 나와서
이러고 있다.
(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께 정말 죄송했고
정말 창피하네..)
대충 루틴대로 해줘도 환자가 넘치니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모든 분들을, 어디가 아프시던 간에
기계적으로 15분 동안
온몸을 팔꿈치로 주물러드렸다.
운이 좋게 얻어걸린 어떤 젊은 여자 환자분
(30대 초반으로 기억함)은
나에게 감사하다며,
장문의 손편지와 함께 핸드크림을 주셨다.
한동안 내 가방에 넣고 다니던
환자한테 처음 받아본 편지.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로 날아갔다.
그때, 1년 차 형님이 자주 하시던
카이로 교정치료를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 했다.
그게 너무 멋있어 보여서였다.
(그 형님은 1년 차 때 어떻게 그렇게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지금도 이 형님은
자주 연락하는 사이다)
뼈가 어디어디로 변위됐을 때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형님이 알려주셨지만
내가 알아먹을 턱이 있나. 아무것도 모르는데.
목과 허리는 람보 테크닉이라고 불리는
밀리언 달러 테크닉으로 했다.
(한 번에 전체를 다 교정하는)
(외국의 어떤 치료사가 이 테크닉으로 유명해져서
밀리언 달러를 벌었다는 그 마구잡이 교정법)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가 아픈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셨다.
아직도 기억한다.
왼쪽 허리 맨 밑부분이 아팠었다.
양쪽 허리를 무작정 세게 돌려 제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서
더 세게 했던 것 같다 ㅠ
우두둑 하고 관절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
마냥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왼쪽 허리를 돌리는 순간
관절이 열리는 소리가 아닌, 둔탁한 소리가
적막한 치료실 내에 퍼졌다.
“빡!” 하고 말이다.
그 순간 치료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일제히 쳐다봤다.
예사롭지 않은 소리인 “빡!” 소리에
나는 이렇다 할 핑계도 못 댄 채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멀뚱히 서 있었다.
분위기상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천장인대에서 소리 난 게 아닐까 싶다.
질기다고 소문 난 그 천장인대 말이다.
그냥 추측일뿐이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멀쩡히 걸어 들어오셔서
휠체어를 탄 채로 나가셨다.
와.. 어찌나 민망하던지.
다행히 다음 날에는 걸어 오셨다.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1년 차 형님께서 위로해 주셨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가 났다.
‘아.. 대충 하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한 분의 늑골을 골절시키고 나니
그때부터 나는 한없이 겸손해졌다.
그제서야, 병원 벽에 붙은
상체 트리거 포인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들께 도대체 저게 뭐냐고 물어 봤었다.
인터넷에 이렇다 할 정보가 많이 없던 2012년.
나에게 그 포스터 한 장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이런 게 있었다니..’
알고 보니 그동안 다른 선생님들은
이 트리거 포인트를 알고
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그 선생님들을
찾는 환자분들이 많더라니..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치료했던 게
너무 창피했다.
지금은 없지만
그 선생님들께서 해 주신 말씀을
폰에 다 적어서
출퇴근 때 지하철 안에서
달달달 외웠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몇 년 뒤에
그 글을 다시 봤을 때는 형편 없었지만.
이 사건들을 모두 1년 차 때 겪어서 참 다행이었다.
헛짓거리를 조금만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빨리 깨달아서 천만 다행이다.
3편은, 내일 일요일 밤 7시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