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멘토의 민낯
그러다 어느 날 시킨 오십견에 관한 책.
한참을 빠져서 읽고 있었는데, 책 내용 중에
극하근으로 인해 전완까지 통증이 내려갈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유레카!!
그 부분을 읽고 난 바로 다음 날.
어제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증상인
상완과 전완에 통증을 가진
40대 여자분이 오셨다.
두둥.
이렇다 할 검사 하나 없이 감으로 치료했다.
'이건 극하근 때문에 그런 게 틀림없어..'
딸랑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얼마 전 천장인대 손상 사건 때처럼
순간 자신감이 넘쳤다.
아.. 이때 참았어야 했는데.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팔꿈치로 극하근을 세게 문질렀다.
팔꿈치로 하는 건 1년간 했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ㅡㅡ;
오히려 평소보다 더 세게 했던 것 같다.
극하근은 견갑골과 붙어 있어서
세게 누르면 골막통이 생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프다고 소리를 그렇게 지르셨는데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창피하다)
죄송합니다ㅠㅠ
그리고 그분은 그날 밤에 잠을 못 주무실 정도로
더 아파지셨다. 와~~ 민망해ㅠㅠ
그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다 소문내고 다니셨다.
절대 이 병원 가지 말라고..;;
아마 지금도 욕하고 다니실 거다.
돈 내고 더 아파졌으니 얼마나 억울하실까.
참.. 그때만 생각하면
악 지르면서 전력질주하고 난 뒤
집에 와서 이불킥, 싸커킥까지 다 하고 싶다.
나홀로 실장으로 이 의원에서
1년 정도를 근무했다.
여기서 더 있다가는
나 혼자 말라 죽을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이직할 만한 병원이 있나 수시로 찾아봤다.
그때 내 마음은 엄청 불안했던 것 같다.
한 달간 신문, 인터넷, 협회를 다 뒤졌다.
내가 새로 갈 병원은 규모가 제법 있었다.
내가 모시고 일하게 될 실장님이
엄청난 고수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내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와이프와 동네 레스토랑에 가서
내 나름대로 거금을 들여서
오랜만에 칼질 좀 했다.
앞으로 내가 잘 되려나 보다고
들뜬 마음으로 말했다.
이 병원으로 가서 열심히 배우겠노라고
와이프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고
한껏 상기된 나를 와이프는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서로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실장님은 내가 3년 차였을 때 5년 차였다.
갖고 있는 자격증 수만 50개나 됐었고
갖고 있는 책은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야.. 어떻게 5년 차가 이럴 수가 있지?'
그걸 보고 나니 더 신뢰가 갔다.
그 실장의 뇌를 현금 1억에 판다면
1억을 주고서라도 살 수 있을 만큼
나는 너무나 간절했고 목말랐다.
현금영수증을 안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신뢰는 딱 여기까지였다.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환자들이 오면
돈이 안 된다면서 쳐다보지도 않았고
보석을 두르고 온 환자가 오면 지극정성을 다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해드리고 나서
운동 처방까지 해드렸다.
"저런 환자들은 이렇게 하면 무조건 다시 온다니까."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알았다고 했다.
나에게 그 실장님은 유일한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사건들은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환자들이 가득 차서 바빠 죽겠는데
누가 나를 찾으면 깨우라고 말하고는
숙취를 깨기 위해 실장님 방에 들어가서
커튼을 치고 방에 혼자 누워 코를 골고 잤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잘못 봤나?'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 행동은 며칠이고 계속됐고
그 실장님은 출근하면 자연스럽게 잠을 잤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자
모르는 척하라며 오히려 나를 입단속시켰다.
숙취로 인한 꿀잠을 자고 나면
본인의 목을 주물러보라면서 침대에 눕곤 했다.
그래도 혹시나 얻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손가락이 너무 아픈데도 열심히 주물렀다.
주무르는 게 싫어서 도망쳤는데 또 마사지라니.
와이프랑 먹은 스테이크가 아까웠다.
통증이 있는 부위에 맨소래담을 바르고
비닐장갑을 낀 채로 또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징그러운 마사지의 늪.
그 실장은 내 힘이 너무 약하다고 말했고
그렇게 하면 속근육까지 안 풀린다며
더 세게 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벽한 가스라이팅이 아니었나 싶다.
며칠 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어떤 부티나는 아저씨가 무릎이 아파서 오셨는데
화가 많으신 분이라
내 어리바리한 행동이 못마땅하셨는지
실장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그 실장은 맛있게 자다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후다닥 뛰어왔다.
치료실에 들어와 그분이 찬
두꺼운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본 실장은
바로 돌변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ㅇㅇㅇ님, 저는 실장 ㅇㅇㅇ입니다.
저희 직원이 미숙했나 본데 죄송합니다."
웩... 이중적인 모습에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하나 조용히 지켜봤다.
"제가 직접 전기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잘봐~ 환자분이 여기가 아플 때는
이렇게 패드를 붙이는 거야~" 라고
나에게 말했다.
처음 듣는 버터 바른 연속극 말투에
속이 메스꺼웠다.
그 환자분은 그제야 만족스러우셨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셨고
그다음 날 또 오셨다.
그 환자분은 왜인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어제 그 실장이란 놈 나오라고 해!"
실장과 그 환자분은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얘기했다.
어제 전기치료를 한 뒤로
무릎이 더 아파졌다는 거다.
그 실장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
'자격증의 개수는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구나.'
'겸손하지 않으면 언젠가 호되게 당하는구나.'
오...라임 쩔어.
언젠가 내 경추를 맞춰준다며 누워보라길래
'드디어 뭔가를 알려주려나 보다.'
하고누웠더니 경추 1번을 3초도 안 걸려서 교정해주었다.
속으로 '역시 고수구나..'를 외쳤다.
그날 퇴근한 뒤에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을 두 개나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날 출근해서
어제 교정 치료를 받고 나서 머리가 너무 아팠다고
그 실장에게 말했더니
내가 예민한 체질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환추는 항상 ASLP 방향으로 변위돼 있는데
ASRP로 보고 교정한 게 아닌가 싶다.
와..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또 이런 사람과 일하게 되다니...
그때까지 나는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갖고 있던 갤럭시 노트를 꺼내어
창밖에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서 이 글을 썼었다.
이게 지금도 있길래 신기해서 올려본다.
그때는 순전히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결국은 그 실장님께 감사해야 된다.
그 실장님 덕분에 이 악물고 더 열심히 했으니.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은
내가 뇌출혈이 온 것에 대한
약간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그렇게 누군가를 싫어해본 건 처음이었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데
지금 또 생각하니 재출혈이 올 것만 같아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으~~ 열받어!
내가 웬만하면 남 욕 안 하는데
그분만은 예외다.
거의 12년 전 얘긴데
지금도 다 기억나는 걸 보니
정말 충격적이었나 보다.
다른 게 실패가 아니다.
잘못된 선임과 잘못된 병원을 고르는 것은
실패 경험담보다 더 큰 실패 경험담이다.
지금은 센터를 차려서 패키지를 유도해가지고
영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나이도 40을 넘겼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한다.
잘 살았으면 좋겠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4편은, 월요일 밤 7시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