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무새
그 안 좋은 실장이 나가고
(왜 나갔는지는 기억 안 남)
새로운 실장님께서 들어오셨다.
그때 그 실장님은 30대 후반이셨을 거다.
이 분은 그만둔 실장과 정반대 스타일이셨다.
행색이 어떻든 간에 똑같이 대하셨고
모든 환자분을 진심으로 대하셨다.
그때 연차가 10년 차가 넘으셨었는데
생각해보면 딱 지금의 나네.
어찌나 반갑고 기분이 좋던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그 실장님은 내가 물어보는 것마다
성심성의껏 알려주셨다.
이 병원에 출근하기가 너무 싫었었는데
그 실장님이 오고 나서는 퇴근하기가 너무 싫었다.
역시 안 좋은 일이 지나가고 나면
좋은 일이 오는 거다.
급락이 있으면 급등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나오는 법이다.
그 실장님은 항상 ‘긍휼’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제대로 된 선배 티가 팍팍 났다.
그 실장님은 한방을 이용한 치료를
주무기로 쓰셨다.
그때 경락과 한방에 관한 치료법을 처음 접했고
1년 정도를
혈자리와 경락, 음양오행에 대해 공부했다.
손끝의 경혈점을 치료하고 나자마자
안 올라가던 팔이 거짓말처럼 올라간다거나
부종과 염증이 경혈점 하나 만졌다고
그다음 날 없어지기도 했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효과가 어마무시했다.
한방도 무시 못 하겠더라.
그때 배운 걸 지금도 기억할 만큼
그때의 내 집중력은 대단했었다.
퇴근 후에 두 아이와
실컷 놀아주고 나서 재운 뒤에
아무리 피곤해도 최소한 책 한쪽이라도 읽고 잤다.
공부다운 공부를 하게 되니 너무 행복했었다.
몇 달 동안 그 습관이 계속되다 보니
지식이 조금씩 쌓여가는 게 느껴졌고
환자에게 배운 걸 적용해서 낫게 했을 때는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치료가 연달아서 성공하니
진짜 내 자존감이 올라갔다.
그래도 자만심은 절대 갖지 않았다.
통증 부위를 마사지하는 게 아닌
원인을 치료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신기했었다.
매일매일 실장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때 나는 거의 감사무새였다.
그 실장님은
후배를 양성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고맙다고 하는 거냐고 머쓱해하셨다.
나중에 후배가 생겼을 때 김 선생도
똑같이 그냥 알려주면
그걸로 된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한마디는 내게 너무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 실장님은 그동안 만났던 어떤 선배님보다
훌륭한 실력과 인성을 갖고 계셨다.
그 분은 지금도 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고 계시고
깜짝 놀랄 만한 보수를 받고
도수치료를 하고 계신다.
이렇게 훌륭한 선배님을 모시게 된 것은
나의 크나큰 축복이자 행운이다.
실장님이랑 나, 이렇게 남자 둘이
양식집에 가서 스파게티 하나씩 시켜놓고
술도 한잔 안 한 채로
3시간씩 얘기했었다.
커피숍에 수다 떨러 가끔씩 가기도 했었고
매 명절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실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작은 선물도 드렸었다.
내가 아프기 몇 년 전부터는 못 찾아뵀다.
되려 우리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주시며
항상 덕담을 빼놓지 않고 해주시던 고마운 실장님.
내가 예전에 실장님께 공짜로 배웠었기 때문에
그 실장님의 당부대로
나도 내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주려고 한다.
이젠 내 차례다.
내가 베풀 때다.
내가 건강했다면
더 자세히 알려줬을 텐데.
아쉽다.
마지막 6편은, 화요일 밤 7시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