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치료 성공 경험담 시리즈 6

열정과 깨달음

by 캐롯킴

요즘 내가 블로그에 전문 지식을 쓴 글을 올리면
내 글이 너무 훌륭하다며
실장님은 지금도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분은 지금보다 더 잘 되셔야 한다.
좋은 사람은 계속 잘돼야 한다.


내가 광주에 있든, 여기 군산에 있든
나를 보러 와 주시고
손을 꼭 잡아주신 고마운 실장님.


이분을 만나려고 초반에 이상한 곳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실패를 했었나 보다.


이분을 만난 뒤로는

환자에게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역시 누구를 만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실장님, 건강하십시오.


그 실장님께 열심히 배우고 나서
자신감도 얻고, 실력도 쌓은 나는
여러 가지 공부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좋다고 생각하는 교육들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들었다.


너무 듣고 싶어서 교육비 30만 원을 겨우 마련해
2013년 겨울, 대전에서 열렸던
카이로프랙틱 교육을 4주 동안 주말마다 들었다.
그걸 듣는데 어찌나 재밌고 행복하던지.


교육을 듣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직도 그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너무 좋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다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크게 날 뻔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여러 교육을 들었고
누가 잘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위장 잠입(?)을 해서 몰래 받아본 적도 많았다.
마사지숍, 최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산에 계신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시는

치료사분을 찾아갔을 때였다.


병원을 옮겨서

또 나 홀로 실장으로 일했을 때 겪었던 일이다.


그 부산 지압원 사이트에 올라와 있던

수많은 글들은 전문적이고 디테일한 설명이었다.


다른 사이트와는 확실히 달랐고
읽는 게 너무 재밌어서
몽땅 캡처하고 필기해 가며
며칠 동안 모든 글을 다 봤다.


이 글들을 무료로 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너무 좋았다.


어느 순간 그분을 실제로 직접 찾아뵙고 싶어졌다.


찾아뵙기 전날 밤
최대한 예쁜 글씨로 가득 채운
손편지 세 장을 쓰고
오후에 반차를 내 무작정 병원을 나섰다.


4시간 남짓 걸려서

겨우 도착한 부산의 ○○ 경락 지압원.


주차를 하고 2층에 있던 지압원으로 들어가니
사모님께서 반겨주셨다.


군산에서 온 누구라고 간단히 인사를 드린 후
전날 쓴 세 장의 편지와 사 온 음료를 드렸다.


사모님께서는 그 선생님께

내가 쓴 편지를 바로 읽어주셨다.


사모님과 원장님께서는
서른 살 젊은이가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다며
같이 일하면서 이것저것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시며 씨익 웃으셨다.
그 웃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원장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하지만 와이프와 상의 없이
혼자 급하게 생각했던 일이라
사정이 이렇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와이프와 자세히 상의한 후에

다시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여쭤봤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하셨고
예약해 둔 치료 시간이 되어 치료를 받았다.
(그냥 가서 이것저것 여쭤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1시간의 치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치료를 받던 나는 너무 놀랐다.


눈이 전혀 보이지 않으시던 원장님은
만져만 보고도 척추와 골반, 목이
어떻게 틀어져 있는지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나도 내 몸이 그런 상태인지 처음 알았다.


눈도 잘 보이는 내가
이분보다 훨씬 더 못한다는 걸 느꼈을 때
어찌나 창피하던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가늠이 안 됐다.


교정 테이블 위에서
원장님은 거침없는 손길로 나를 교정해 주셨다.
그 손놀림은 확신에 차 있었다.


뼈만 맞추면 금방 다시 틀어진다며
근육까지 다 풀어주셨는데
무슨 장난치는 듯한 손놀림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시원했다.
마음속으로 ‘이분은 진짜다’를 계속 되뇌었다.


군산에서 부산까지 찾아온 청년이
편지까지 써온 건 처음 본다며
이 정도 열정이면 같이 일했을 때
엄청난 시너지가 날 수 있겠다며
나를 북돋아주셨다.


치료가 끝나고
다음에 꼭 연락드리겠다고 인사를 드린 뒤에
밤늦게 군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에 갈 때는 컨디션이 바닥이었는데
군산으로 돌아올 때는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사실 와이프와 두 어린아이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부산에 가서 산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밤늦게까지 상의한 끝에
안 가는 걸로 결정했고
다음 날 이렇게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아쉽게도 못 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해서 나중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경험은
내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호열(호랑이 열정)이었다.
(영화 D.P의 구교환처럼)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했던 걸까?
치료하는 게 좋아서 열심히 했던 걸까?
후자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치료가 너무너무 하고 싶다.
마음껏 치료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연차가 많다고 무조건 실력이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과 경험, 그리고 겸손이 겸비되어야 한다.


나이가 많고 연차가 많다고
무조건 실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젊은 선생님들은 쫄 필요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만 쌓아두면
경험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신경계 치료는 해 본 적이 없다.
근골격계만 해봐서
신경계 쪽은 깊이 알지 못한다.
그쪽은 내가 조언해 줄 게 없다.
너무 어렵다.


세상은 넓고
나보다 고수는 많다.
이걸 꼭 명심하자.


그리고 치료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고수를 따라 하다 보면
본인만의 스타일이 생긴다.


지나고나서 보니

이 모든 것들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 경험담이었다.


실패없는 성공은 없다.


캐롯킴은 행복하게 살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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