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김범수
처음 내게 온 날부터
셀 수도 없는 날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서
내 얘기뿐이네요
오늘도 난
다시 읽고 있죠
온종일 웃어댔던 일
괜시리 토라졌던 일
사소한 일들 하나까지
소중히 담았네요
어느새 난
미소짓고 있죠
2023. 3. 19 에 작성한 글.
요즘 내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1년이 넘었는데도 못 걷는 나를 보며
낙심이 커서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1년 전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좋아진 건 맞지만
성에 안 찬다.
침상생활이랑 휠체어 생활을 1년 정도 하니까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만약 목숨이 두 개라면
하나는 이쯤에서 정리하고 싶다.
(-김창옥 교수님 강의 중-)
어찌나 와닿던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그렇게 나쁘게 살았나.
아닌데... 착하게 살았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많이 줬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예전 성격대로 농담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할 때는 즐겁지만 하고 나면
현타가 세게 온다.
이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즐겁지 않은데,
왜 이러고 있지?
마스크 밖 눈은 웃고 있는데
마스크 속 입은 울고 있다.
얼마 전에 TV를 보는데
30년 전쯤, 34살 젊은 나이에
뇌출혈이 와서 30년이 지난 64살이신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 분이 나왔다.
30년이 지났는데도 휠체어를 타시다니...
인생의 대부분을 휠체어 생활 하신 거다.
와, 그걸 보는데 진짜 무섭고
마음이 진정이 안 됐다.
설마 나도 그러는 거 아닐까?
주변 사람들은 너는 열심히 하니까
빨리 나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지만
그 방송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힘들던지.
나라도 내 친구가 뇌출혈 환자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아프기 전에는
어르신들이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파서 앉아 쉬는 게 이해가 안 갔었다.
지금 나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과 같지 않을까?
얼마 전 사랑하는 내 대학 친구들이 집에 왔다.
이 친구들을 처음 만난 지가 벌써 20년이네.
추억이 한 무더기다.
스무 살 때 같이 했었던 지리산 2박 3일 종주 캠프
북한 친구들과 같이 했었던 YMCA 캠핑,
장애인 복지시설 봉사활동
같이 축가하러 돌아다닌 것
4년 연속 축제 노래 경연대회 나간 것 등등.
수많은 추억을 남겨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6개월 만에 완전체로 보니까
반가워서 너무 좋았다.
6시간 정도를 얘기하는데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말도 잘 나왔고, 이명도 잘 들리지 않았다.
말하던 도중에 갑자기 열린 통증 세미나.
근데 누가 누굴 치료하는 거냐ㅋㅋ
나도 죽겄다, 이놈들아ㅋ
어떻게 해야 낫냐고 물어보네.
자~~ 금쪽 처방 나갑니다.
잘 자고, 잘 쉬고, 잘 먹고, 부모님께 효도하면
1달 내로 나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심하진 않다는 뜻.
오른손 감각이 70% 정도 떨어졌어도
이상이 있는지는 짬바로 대충 알 수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안수 기도하는 중.
무뚝뚝하던 한 친구 녀석은
책도 많이 읽고, 요리도 곧잘 한다고 했다.
인스타에 들어가서 봤다.
나는 다모임이나 싸이월드나 할 줄 알았지.
야, 이 녀석 세련됐네. 인스타도 하고.
역시 용인 유지답다.
한 친구는 술도 끊고
한 친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상담도 받고
딱 우리 나이 때가 육아를 하면서
자기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기이다.
나도 그랬었다.
수많은 상담을 받았었고
심지어는 최면도 받아봤다.
어른이 되면 변하는 게 쉽지가 않은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친구들이 너무 멋있었다.
음식을 몽땅 시켜서 같이 먹으니까
대학 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때는 날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었다.
그때도 습관처럼
우리는 청춘이야를 외치고 다녔었다.
젊을 땐 젊음을 모른다던데
그 당시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젊음의 소중함을 말이다.
그 당시 우리끼리 자주 했었던 말은 이거였다.
야, 우리는 젊으니까 이것저것 다 해보자.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친구들을 보내줬다. 아쉬웠다.
밤새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군산의 명물인
팥빵과 타코야끼를 쥐어주고 나서야
친구들을 집으로 보내줬다.
참...누워 있던 나였는데, 친구들도 만나고
1년이 지나니까 많이 좋아지긴 했네.
그저께 테이블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때
창문을 타고 넘실넘실 넘어오는 따스한 바람이
썩 달갑지 않았다.
작년 봄이 생각나서였을까?
그 바람은 작년 봄에 느꼈었던 딱 그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잔인할 정도로 따스했다.
아프기 전에 자주 들었었던
성시경의 딩고 라이브.
학생 때부터 즐겨 듣고 즐겨 부르던
성시경 노래.
추억 돋는다.
“정말 빈틈없이 행복해” 라는 가사. 캬~~
어떻게 그런 가사가 나오지.
성시경 노래는 가사가 버릴 게 없다.
병실에 와이프가 없을 때
노래를 크게 불러 봤는데 하나도 안 됐다.
부르던 느낌은 생생한데
바이브레이션도 안 되고, 고음도 안 됐다.
예전에 소리바다에서
불법으로 다운받은 노래가 한가득 들어 있는
내 아이리버 MP3 어디 갔냐 ㅠㅠ
주옥같은 노래 천지인데.
기형 뇌 동정맥류는 천 명 중에 한 명이 갖고 있고
내가 수술하고 살아난 확률이
10분의 1이라고 했으니
나는 만 명 중에 한 명인 셈이다.
피지컬 10000 중에 1등이라니.
이럴 수가. 피지컬 100은 껌이잖아.
그동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게 없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너무 당혹스럽다.
걸을 때의 느낌이 마치, 3D 안경을 쓰고
높은 빌딩 꼭대기에 삐죽 튀어나온
나무 판자 위를 걷는 가상 체험이랑 비슷하다.
머릿속으로는 안 쓰러질 걸 알면서도
공포감에 몸이 굳어버린다.
좋았던 일은 추억이 되고
안 좋았던 일은 경험이 된다고 했는데
지금 겪는 게 나중에 나의 경험이 되어 주려나.
세상은 적당히 미쳐야 재밌다.
올바르게 살되, 적당히 미쳐 있는 게 훨씬 재밌다.
그래서 나도 적당히 미쳐 있는 중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다.
나는 지금도 날마다 일기를 쓴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써 왔다.
이건 참 좋은 습관이다.
하루를 반성할 수도 있고
앞으로를 계획할 수도 있다.
오늘이 특별한 하루였을지라도
일기를 안 쓴다면, 몇 년 지나고 나서의
그날은 어느 1년 중의 하루일 뿐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싫다.
오늘이 평범한 하루인 게 싫다.
우리 아이들도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들과 교토 기온 거리를 한번 걷고 싶다.
아 맞다. 나는 일본도 중국도 싫다.
일본과는 가위바위보도 지지 말고
중국과는 가위바위보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저기 스페인이나 스위스를 가 보고 싶다.
그래도 일본은 아이들이 좋아하니 한번은 갈 듯.
며칠 전에 오전 치료가 끝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내 앞으로 오시더니
“계단으로 갈텨?”
“할머니, 계단으로 가면 저 죽어요ㅋㅋ”
그 말씀을 남기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홀연히 먼저 사라지셨다. 이럴 수가.
젊으니까 금방 나을 거야나 힘내보다
힘들지 한마디가 더 위로가 된다.
애 한 명 더 낳아보다
애 키우느라 힘들지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된다.
나는 이제 당분간 글을 안 쓰고
재활에 몰두하려고 한다.
그동안 제 글을 사랑해주신 분들한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뭔가 눈에 띄는 변화나 이벤트가 있으면
한 번씩 올리겠습니다.
수많은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힘내시고
언젠가 혼자 걸으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되돌아보니 21개나 썼네.
무슨 이 글이 무도 마지막 회라도 되는 줄.
(이 글 이후로 142개나 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