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지가 않어》 장기하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23. 3. 22에 작성한 글
떠나겠다고 다짐한 지 고작 3일 만에
그새를 못 참고 손이 근질근질해서 돌아왔다.
사실 우리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이 글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뇌출혈 극복기 이제 왜 안 써요?”
(현재는 안 읽음)
그동안 내 글을 딸, 아들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 공감 안 누르냐, 얘들아.
먹튀는 안 좋은 거야. 혼난다? ㅋ)
벌써 완결 난 거냐고 물어보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아픈데도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맞지?)
포스팅 한 개를 쓰는 데
4시간은 족히 걸리다 보니
솔직히 힘들기도 하고,
재활에 집중하려고 그만 쓰려고 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이 글들을 쓰면서 건망증이 생긴
내 뇌도 활성화되고
손가락 재활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아이들이 이정도로 재밌게 읽고 있는지 몰랐다.
얘들아~~ 보고 있지? 아빠 다시 쓴다!
요즘 슬럼프가 와서 되게 힘들었었다.
아이들한테 올해 안으로 꼭 돌아가겠다고
약속해 놓은 터라 그게 은근한 부담이었나 보다.
어떻게든 올해 안으로 걸어야 된다는 생각에
힘들어 죽겠는데도 억지로 한두 번은 더 했다.
며칠 전에 딸래미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빠, 올해까지 꼭 안 나아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걷겠죠?”
“그때까지만 나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천천히 가야 완주를 할 텐데
나 혼자 마라톤을 1등으로 통과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스 조절이 잘 안 됐나 보다.
나영석 PD가 강호동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단다.
예전에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하다고 느꼈었지만
요즘엔 꾸준한 사람이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듯이,
고등학생 때 날마다 푸시업 400개씩 했듯이,
이번에는 예전처럼 꾸준히 열심히 해 보련다.
물론 마라톤도 열심히, 꾸준히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딸 얘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고마워 딸~~♡ 물론 아들도~~♡
피지컬 10,000은 이미 1등을 했으니
이제 피지컬 100,000 중에
1등에 도전하려고 한다.
여러 명의 환자들 중에서 제일 먼저
재활에 성공하려고 한다.
정말 힘들 것이다.
어쩌면 뇌출혈을 극복하는 큰 그림을 그리려고
내가 이걸 전공으로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이
운동하는 데 은근히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남은 인생을 휠체어에서 보낼 수 없다.
아니, 보내기 싫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진짜 싫다.
이러다 진짜
피지컬 100,000에서 1등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어제, 나를 치료해 주는 선생님께
요즘 슬럼프인가 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대나무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말하듯이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아픈 뒤로 선생님께 이런 얘기까지 한 건
1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루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와이프한테는 여러 번 얘기했었지만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와이프한테
그런 말을 더 이상 못 하겠더라.
그리고 그동안 충분히 질릴 만큼 많이 했다.
그동안 충분히 들어줬다.
치료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그 선생님은 좋은 달란트를 갖고 있었다.
그건 아무에게나 없는 거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것 같다.
우울하고 슬퍼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내가 INFJ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하나같이 E 아니냐고 되묻는다.
나는 친한 친구 빼고는
사람들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정통 I다.
누군가 그랬다. 돌+I 아니냐고.
돌+I가 아닌 그냥 I다.
솔직히 헷갈린다.
나는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펑펑 울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그동안 익숙해져 버린 가면을 벗고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싶다.
맨얼굴을 드러내고 싶다.
솔직히 살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감정에 솔직한 건 창피한 게 아니다.
감추지 말자.
직장 형님하고 2019년도에
하노이 맥주거리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여자 사람 20대 후반 2명.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둘 다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있으니
그냥 간단히 맥주나 마시면서
서로 고민 상담이나 하고 쿨하게 헤어집시다!”
지금은 얼굴도, 전화번호도,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른다.
2시간 정도를 그분들의 남친에 대해서
상담해 주고 나서야 쿨하게 헤어졌다.
“혹시나 어디서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맙시다!”
근데 그게 뭐라고 그분들이 엄청 속 시원해하셨다.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끔씩은 친한 지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렇게 털어놓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물론 남자 한정)
어제 치료 가는 복도에서
어떤 휠체어 타신 낯익은 환자분이 내게 하는 말.
“환자가 돼 보니까 얼마나 힘든지 알겠죠? 쌤?”
맞는 말이라 대답을 대충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병원에서 명함이 2개다.
선생님, 환자.
이야~~ 겸직은 처음 해 보네.
오늘 작업치료를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컵 쌓기를 힘들게 하고 계신 걸 보고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쉬워 보이는데, 엄청 힘들어하시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순간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한 내가
무심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게 된 순간 나한테 놀랐고,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안 아픈 사람이 나를 볼 때의 시선이 이렇구나.’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동안은 사람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근데 저 생각이 든 순간부터 많이 내려놓게 됐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보기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나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진 않는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해가 잘 안 간다.
본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기에
이해가 잘 안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남의 고민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엄청난 재능이고 장점이다.
물론 가끔은 공감보다
냉철하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멀리 있는 유명 음식점에 찾아갔을 때,
“주인장이 아파서 오늘은 쉽니다”
라고 적힌 안내문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장을 걱정하기보다,
‘왜 하필 오늘 아픈 거야, 나 멀리서 왔는데’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럼 부성애나 모성애는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아이들이 조금만 다쳐도
가슴이 찢어지는 건 뭘까.
부모님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도대체 무슨 원리일까?
본인이 아픈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아파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여러모로 편한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
주변은 볼 필요 없다.
앞만 보고 가자.
꼭 머리에 새기자.
여보, 얘들아. 열심히 할게.
지켜 봐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