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추억》 가무진
나에게 주었던 커다란 니 사랑이
얼마나 날 행복하게 했었는지 몰라
말하지 못했어 니가 힘이 들까봐
내겐 정말 너 첫사랑인걸 이제 고백할게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가끔은 내 생각을 하긴 하겠지
다시 또 너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이말을 해주고 싶은데
23. 3. 24 에 작성한 글.
내 왼쪽 눈 통증이 무슨 느낌일까,
6개월 넘게 생각해봤다.
손바닥으로 눈알을 세게 누르면
눈알 자체가 압박을 받아서 아픈데,
그 느낌에다가 라면 국물이 눈에 튄 느낌까지
추가된 느낌이다. 거기에 눈썹이 들어간 느낌까지.
거기에 술 많이 마셨을 때처럼 아른아른 보인다.
그 상태에서 복시까지 있다.
그래, 이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다.
눈이 잘 보이는데 잘 안 보인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아무튼 말도 안 되는 느낌이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안 아프면 그걸로 된 거다.
나중에 다 낫고 나면
지금 아픈 느낌은 분명히 다 잊어먹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기록해둬야만 한다.
지금 불편한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불편한 눈 통증 느낌을 기록해놓고 싶다.
안구에 대해서는
자세히 공부를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니까
네이버 형님을 자주 찾아뵙고서 여쭤보곤 한다.
요즘은 인터넷에 고급 정보가 넘쳐나는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 내비게이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근데 그때가 더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학생 때도 시간이 빨리 지나갔었지만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학생 때는 하는 것마다 다 새로운 거라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 직장만 반복하면서 사니까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원래 나는 새로운 걸 많이 도전했었지만
(안물안궁)
지금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니까
반복적인 일을 계속 해야만 한다.
(지금은 또 생각이 달라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너무 예뻐서
더 이상 안 자랐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했었다.
근데 커도 예쁘네?
아이들이 뉴진스의 ‘하입 보이’라고
하도 말을 해대서,
도대체 그게 뭔지 찾아보기도 했다.
아이들 덕분에 뉴진스도 알게 되고,
어쩔티비 저쩔티비라는 말도 알게 되고,
‘디토’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래 디토는 ‘왜 그래’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인데,
가수가 20년 만에 노래가 돼 버리다니.
아, 옛날이여ㅠㅠ
노래 얘기를 할 때마다 6학년 때가 생각난다.
되게 소심하고 음치이던 나를 고쳐주겠다며
1년 동안 아침 조회가 끝나는 9시가 될 때마다
앞에 나와서 주병선 씨의 ‘칠갑산’을 부르라고
담임선생님께서 시키셨다.
그때는 그것만 생각하면
학교에 가기가 그렇게 싫었다.
1년 동안 앞에 나가서 ‘칠갑산’을 부르다 보니
그 노래는 지금 내 인생곡이 되었다.
그리고 칠갑산 하나만큼은
간드러지게, 기가 막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소심하던 내 성격은 많이 변했다.
이재식 선생님, 이제 환갑이 넘으셨겠네요ㅠ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뭔가를 못 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은 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재활도 꾸준히 하다 보면
지금은 못 걷지만 언젠가는 걷겠지.
그때부터 노래 부르는 게 좋아져서
노래란 노래는 모조리 다 찾아서 들었다.
지금은 노래방 책을 보다 보면
아는 노래가 정말 많다.
축가도 자주 부르러 다니고
대학가요제에 4년 연속으로 나가기도 했었다.
3학년 때는 친구들 네 명이서
노을의 ‘청혼’이라는 노래를
애드립까지 완벽하게 연습한 뒤에
멋지게 차려입은 채로 나갔는데
우리가 나가기 바로 전에
진짜 노을이 나와서 ‘청혼’을 부르는 바람에
완전히 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우들의 싸늘하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영탁의 ‘막걸리 한잔’ 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듣는 사람이 막걸리 한잔을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할 수도 있었다.
영탁만큼은 아니겠지만, 영턱 정도는 될 텐데...
영턱스클럽 요새 뭐 하나 모르겠네?
팬입니다! 노래 참 좋았는데.
혼자서는 밥도 못 먹고 영화도 못 보던 내가
무슨 깡이었는지
2017년에 혼자서 처음 3박 4일 동안
제주도로 스쿠터 일주를 갔었다.
나 혼자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의 바람을 가르는
그 기분이란 엄청나더라.
스쿠터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혼자 소리를 지르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소중한 나만의 추억이다.
지금은 연락 안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었다.
그런 꿈같은 여행을 또다시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다들 잘 살고 있을려나.
어떻게 사는지 다들 보고 싶네.
많이들 변했겠지.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서 놀 때는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가도
몸이 멀어지면 언제 친했냐는 듯이
연락이 뜸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이유가
그걸 자주 경험하다 보니
제일 가깝고 친한 친구들의
소중함을 더 깨닫는 것 같다.
나는 지금의 좁고 깊은
내 옆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좋다.
전기치료를 하다 보면
내 앞으로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분이
침대에 누운 채로 지나간다.
6개월째 그대로다.
나는 침상생활을 1개월만 했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이 분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얼마나 힘들까.
오늘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옆에서 치료받는 어린 여학생이
멈추지 않는 기침과 가래로 힘들어하는 걸 보았다.
나도 작년 4월에 저랬었는데...
너무 힘들어 보여서 마음이 안 좋았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 참 많다.
병원 밖을 나가면 너무나 평온한데...
병원 안은 너무나 치열하다.
바깥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내가 자연스럽게 걷고 뛰던 느낌이
아스라이 기억난다.
완전히 잊어먹기 전에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블로그 글이 한 개씩 늘어 갈 때마다
왜 이렇게 뿌듯한지.
오늘은 와이프랑 국밥에 소주 한잔 하고
동네 구경을 하며 와이프 손 꼭 잡고
집까지 터덜터덜 천천히
걸어오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