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24

《봄이여 오라》 MC Sniper

by 캐롯킴

나의 눈물로 얼룩이 진 얼굴을 소매로 닦고

부서져버린 모든 것이 하루의 경계선을 잃고

나 새로운 아침을 열 수 없어

울먹이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내다 버려요


알 수 없이 울어대는 내방 시계의 초침과

슬픔 속에 피어난 이 알 수 없는 혼란

이윽고 또 쏟아지는 눈물의 꽃을 달래 보아도

막연한 긴 기다림들이 날 기다리고 있죠


23. 3. 26 에 작성한 글.



코로나 레드나 블랙보다 더 지독한
외출을 할 수 없어서 우울한 내 평일들.


더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없다기보다
휠체어를 타고 밖에 나가는 게 귀찮은 거겠지.


매주 토요일이면 차를 타고
간단한 드라이브 후에 집에 간다.
내가 유일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어제는 드라이브를 하다가 차 창문을 여니,
봄이 앞으로 성큼 다가온 듯했다.
차 안에서 노래까지 들으니까 금상첨화였다.


수많은 상춘객들이 꽃들과 서서 사진을 찍고
꽃 향기를 맡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수없이 왔었던 은파유원지.


와이프가 내 폰으로

밖에 있는 개나리 꽃 사진을 찍어다 주었다.
이런 Sweet 행동을 하다니...


이렇게라도 꽃 구경을 하니까 너무 좋았다.


차에서 내려서 직접 향기를 맡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도 감사하다.
병원에만 계셔야 되는 분들도 있는데 뭐.



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1년 동안 쉬어버린 내 머리를 쥐어짜내서
도수치료에 대한 모든 비법들과

건강에 대한 정보들과

뇌출혈 극복기를 쓰고 있다.
(내 블로그에 전부 써놓았고,

그때 써놓았던 게 지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보통은 본인이 아프기 전까지는 그 병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 전직 물리치료사인 나도
뇌출혈은 내 일과 상관없다는 생각에
대충 흘겨봤었다.
뇌출혈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었다.
아니,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눈앞에 닥치고 나서야
가까이 온 것에 대해 알아보기 바쁘다.


어떤 물건이나 취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관심이 가는 순간부터 알아보기 시작한다.


모든 분들에게 내 글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네이버 블로그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들어가 보면 건강에 도움 되는 글들이

제법 많습니다.)

(아프신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보고
저 사람은 어디가 아프겠구나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아픈데 누가 누굴 평가해? ㅋ


임상 1년차 때의 내 꿈은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그 경지에 다다랐다.)


거의 이루려고 하던 찰나에

이렇게 돼버려서 너무 아쉽다.


나는 지금도 매일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한때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을 만드는 것도 꿈이었다.
슬픈 노래의 작사도 해보고 싶다.

눈물 콧물 쏙 빼놓는 발라드의 가사 말이다.


나는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무척이나 예민하다.
하고 싶은 거 참 많네 ㅋ
의욕 없이 사는 것보단 낫지 뭐.



치료를 가다 보면
다리를 꼬고 TV를 보고 있는 분들과
걸어가면서 폰을 보는 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행동들인데...


특히, 걸으면서 폰을 보는

스몸비족은 너무 멋지다.
그건 진짜 복잡하고도 멋진 동작의 결정체다.


군대에서는 그 끔찍한 화생방과 유격도 즐길 만큼
초긍정적인 나였지만, 이 뇌출혈은
나로 하여금 두 손 두 발 다 들게 했다.
징글징글하다.

대단하다, 나를 이기다니.


엄청난 숙취가 와도 좋으니
전설의 양주인 캡틴큐를 몇 잔 하고 잠이 든 뒤에
짜잔, 꿈이었지롱~ 하고 깨워줬으면 좋겠다.
더 정확히는 캡틴큐가 아니라 캪틴큐다.


아, 요즘 분들은 캡틴큐를 모르겠구나.
그... 있다, 이상한 양주.

감성으로 마신다는 술.


리뷰가 영화 클레멘타인 리뷰급으로 재밌다고
불리우는 그 전설의 양주.
이걸 안다면 최소 30대 후반 이상 확정!


나는 겨우겨우 MZ세대에 편승해 가는 X세대다.
우리 아이들과 젊은 선생님들에게

요즘 트렌드를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보통은 20~30대를 묶어서 젊은이라고 지칭한다.
나는 젊은이의 끝자락에 서 있는, 아니...
앉아 있는 39살이다. (이게 벌써 3년 전이네)


젊은이의 마무리를 멋지게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마무리를 휠체어를 탄 채로 할 줄이야. 참.


휠체어 운전, 이거 은근히 어렵다.
병실에서 치료실까지 내려가고 나면
팔에 힘이 쭉 빠지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건강할 때 미리
휠체어 1종 보통 면허증이라도 따 놓는 건데.



급성기인 발병 후 6개월까지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변화가 뚜렷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적어도 한 달 단위로 보이는 것 같다.


변화하기 위해서 날마다 필사적으로 운동 중이다.



남들보다 이르고 치열했던 육아 기간이 지나간 뒤
와이프와 숨통이 트인지 얼마 안 됐었다.
주말 아침마다 카페와 산 도장 깨기를
한 3개월 정도 했었나?


짧았지만 정말 행복하고 달콤한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좋았지만
와이프와 둘이 오손도손 손을 잡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유난히 고됐던

육아 기간에 대해 달콤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근데 그 달콤한 보상은 금방 끝나고 말았다.
와이프는 나를 다시 키워야만 했다.


뇌출혈 환자에게 사랑은 사치일까?
아니다. 나는 와이프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도 너무 사랑한다.


작년, 아빠와 엄마의 부재를 이겨 낸
지난 1년을 억겁의 시간이라고 느꼈을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지금와서 읽어보니 씁쓸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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