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32

《Replay》 김동률

by 캐롯킴

난 요즘 가끔 딴 세상에 있지

널 떠나보낸 그 날 이후로 멍하니

마냥 널 생각했어. 한참 그러다보면

짧았던 우리 기억에 나의 바람들이 더해져


막 뒤엉켜지지

그 속에 나는 항상 어쩔 줄 몰랐지

눈앞에 네 모습이 겨워서 불안한

사랑을 말하면 흩어 없어질까

안달했던 내가 있지


23. 4. 27 에 작성한 글.


살면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나 혼자
사색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군인 시절

국민대학교와 남산타워가 보이던 초소에서
야간 근무를 서던 그 적막하고 고요한 2년 밤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며칠 전에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자기도 일 안 하고 푹 좀 쉬어보고 싶다고.

이 세상은 참 잔인하고 가차없다.


이건 어쩔 수 없이 쉬는 거지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다.
난 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잠깐이었지만 나는
쉬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닌
일하기 위해 쉰 적도 있었다.


그만큼 출근이 기다려진 적도 있었다.


예전에 사소한 걸로 사람들과 다퉜던 일
일이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 받았던 일
육아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 받았던 일 등등.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2021년 가을, 우리 가족과 성산일출봉 밑에 있는
식당에서 고등어회에 소주를 찐하게 마셨었다.


우리 부부끼리 시간을 가지라고
조용히 펜션에 들어가 준 아이들 덕분에
성산일출봉에 밤늦게 몰래 들어갈 수가 있었다.


경치 좋은 데까지 올라가서

통행로에 둘이 나란히 누워
하늘에 떠 있던 별을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위치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건 그때 찍었던 사진.


그때 둘이 너무 행복해서

길바닥 한가운데 누워서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그때 제주도 갔다 오길 참 잘했다.
뭐든지 생각날 때 바로 해야 한다.
그때 머뭇거렸었다면 이런 추억은 없었을 거다.


2년 전 가을에 갔었던 그 제주도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7년 전쯤 와이프랑 갔었던 이루마 콘서트.


핑크색 셔츠를 입고 일어나서

고성을 지르며 손을 흔든 덕분에
나는 이루마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이루마님과 같이 피아노를 쳤던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땐 되게 창피했었는데.
내가 젓가락 행진곡을 치니 화음을 쌓아주시던.


이루마님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중동 사람들한테서 나는 향수 냄새가 묘하게 잘 어울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잘 안 한다.


근데 이제 조금 바뀌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위치에 올라가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밑에 사람들을 잘 챙기는

훌륭한 리더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무조건 건강이 1순위다.
그냥 권장하는 거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아이들이 이 말을 아직 이해하긴 힘들겠지.
언젠가 이 말을 이해할 정도로 자란다면
이 아비의 말을 한 번쯤은 고려해 보길.


이 세상은 불합리한 걸 보고도
어쩔 수 없이 참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컸을 때
이런 일을 안 겪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얼마나 힘들어하고, 무슨 느낌인지
알려고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걸을 때 너무 무섭고 너무 힘들어서
장난으로 농담하면서 웃었더니
내가 걷는 게 너무 즐거워 보인단다.
진짜 서럽다.
확실히 통증은 주관적이다.


그건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반쯤 실성해서 웃는 거다.


억지로 웃기라도 해야 덜 힘들어서
웃는 건데 아무도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
남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요새 그걸 더 많이 느낀다.
확실히 통증은 주관적이다.


누군가 나에게 많이 힘드냐고

넌지시 물어봐 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보는 모두는 나를 환자로 본다.
나는 환자이기 전에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치료사로 일했을 때
처음 오신 어느 오십견 여자 환자분에게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라고 한마디 했더니
그분이 눈물을 펑펑 쏟았던 일이 있다.


나한테 연신 고맙다고 말씀시며

손을 꼭 잡아주시던
유ㅇㅇ님.


많이 힘드셨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다음번 치료 때 간식을 잔뜩 사 오셨다.


나를 포함한 모든 환자들은
나의 마음처럼 한없이 여린 마음일 것이다.
이건 거의 확실할 거다.
아프면 다들 이렇게 변한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아무도 자신한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어서
너무 서러웠었다고 했다.


그때 그분의 기분이 어땠을지
요즘에서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100% 우리 가족을 위해 참는다.
진짜 이 악물고 한다.


얘들아, 아빠 열심히 걷고 있어!
응원해 줘!


물론 아이들은 못 듣겠지만.


너무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 생각을 한다.

그때마다 약간 울컥한다.

아니? 많이 울컥한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속으로 저 말을 외치면
순간 조금은 힘이 난다.


저건 나만의 기도인 셈이다.


이 세상엔 신이 진짜 존재하긴 하는 걸까?


신이 진짜 있다면, 이건 나에게 너무 가혹하다.


나에게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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