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31

《운명》 여행스케치

by 캐롯킴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너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황무지 같은 이 세상에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넓은 세상 한가운데

그댈 만난 건 나 역시 기쁨이야
가시나무 같은 내 맘에

그댈 만나지 못했다면


23. 4. 25 에 작성한 글.


오늘 글은 평소 때보다 조금 늦었다.


아이들이 고민이 있다면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혼자 고민하느라 골머리 썩는 것보단 훨씬 낫지.


내가 살아난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라는 의미가 아닐까?


자녀와 지내는 건 SNS를 하는 것 같다.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안 보이려고 항상 노력해왔다.


결혼한 지 13년이 됐지만,
크게 싸워본 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나는 학생 때 항상 불안한 상태였다.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드러내고 보여줄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여러 번 깨지고 부서지면서

직접 깨달아야만 했다.


그렇게 점점 단단해질 수가 있었다.


만약 지금의 성숙한 마인드를 학생 때 갖췄더라면
내 학창 시절은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어린 시절의 내 인생은
그때보다 더 윤택했을까?


우리 아이들의 고민 상담을 위해
나는 24시간 항시 대기 중이다.



어제 낮에 공동 간병실로 간 지 하루 만에
다시 내 병실인 1인실로 돌아왔다.


군대에서는 20명이서도 같이 잤었는데
그동안 내가 많이 약해진 건지

무슨 이유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작 하루 버티고 다시 돌아왔다.


처음 갔을 때는 창문 밖이

도로 뷰라서 대만족 했었는데
어젯밤 2시부터

어르신이 통증으로 앓는 소리를 내셔서
밤귀가 어두운 나를 깨우는 데 성공하셨다.


그래도 10시부터 2시까지 4시간을 잤기 때문에
6시에 불을 켤 때까지 제법 버틸 만했다.


그래. 이건 아파서 그러신 거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족 어르신이
중국 채널을 큰 소리로 보시는 것과
80대 어르신이 한국무용 채널을
큰 소리로 보시는 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


TV 바로 밑이 내 자리라서 너무 시끄러웠고
두 분이서 너무 친해 보였던 터라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우리 가족과 장인, 장모님께도 미안했지만
잘 버텨낼 줄만 알았었는데
하루도 못 버틴 나에게 너무 화가 났고
너무 실망했다.
너무 창피했다.
조만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새로 오신 간병인 이모가

원래 계시던 이모들한테 혼나는 걸 보다 보니까
이등병시절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김 상병님에게 대차게 혼났던 것과
세 번째로 다닌 병원에서 실장에게

별것도 아닌 걸로
날마다 혼나던 게 생각나서 마음이 되게 짠했다.



어제 낮에는 예전에 점심 때 자주 갔었던
병원 앞 커피숍에

항상 같이 가던
형님과 와이프랑

아픈 지 1년 만에 방문했다.


너무 오랜만에 오셨다며
사장님께서 나에게 맛있는 프레첼 세트 하나를
서비스로 갖다 주셨다.


항상 내가 앉던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실컷 떨었다.
여기 진짜 오고 싶었는데.


여전한 말차 라떼 맛.


벽에 그려진 물소가 침 흘리고 있다는 걸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콧물도 흘리네.


너 혹시... 코로나냐?
아니면 광우병?


침 뱉는 사람보다

침 흘리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인데.



내친김에 항상 창문 밖으로 보기만 하던
아프기 전에 자주 가던 마트에 가봤다.


아빠의 도전~!


내가 좋아하는 과자들 사이에서 한 컷 찍었다.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못 왔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너무 좋았다.


앞으로 자주 와야지?
(그때 이후로 3년 동안 한 번도 안 갔음)


10명이 있으면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하고
1명만 나를 좋아한다더니
바깥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아 이 사진 핵행복.
빨주노초파남보 과자들.
모든 과자들이 자기 좀 봐달라며 아우성치는
저 소리가 안 들리는가.


난 과자가 왜 이렇게 좋지;;


저 과자를 바닥에 모두 깐 뒤에
그 위에 눕고 싶다.


사진이 머리가 돌아간 것 같네 ㅎㄷㄷ


용기 낸 나에게
딸이 대단하다면서 칭찬해주었다.
더 좋았다.
여러 개의 과자를 샀다.
더더 좋았다.


어렸을 때 받았던 최고의 선물 종합과자 세트.
30년 전에도 한 만 원 남짓 했던 것 같은데
검색해보니 지금도 판다.
지금도 그 가격이네 ㅋ



무릎 뒤에 큰 지방 낭종이 생겨서
마취를 한 뒤에 시술을 했다.
내성발톱 시술도 모자라서

이제는 지방 낭종 시술이라니;;


준비된 파워 블로거로서 사진도 찍었는데
밥맛 떨어질까 봐 이건 생략한다.



며칠 전에, 와이프가 내 눈썹을 정리해 주다가
날이 무뎌서 오른쪽 절반을 날려버렸다.


와이프가 미안했는지
조용히 내 머리를 빗질해 주네.


다행히 아무도 모른다.
별로 티가 안 나나 보다.


와이프가 웃을 수만 있다면
왼쪽도 날려버릴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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