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캐리커쳐.

99화. 캐리커쳐.

by 번트엄버

99화. 캐리커쳐.


“ 주민 씨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두 분 잘 지내시죠?”

그러고 보니 우리와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르게 그 사이 우리는 부부가 되어 있었다.

“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작품을 계속 사주시니 덕분이라는 말은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 다름이 아니라 주민 씨에게 부탁을 드릴 일이 있어요.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하시죠.”

미술관과 같은 건물 2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내어주는 커피를 마시며 말씀을 이어가시는데 상황은 이랬다. 5월 말이면 지금 계약한 캐리커쳐 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된다. 그간 불 성실한 모습을 일관했던 업체라 더 이상 계약을 이어나가기 싫었는데 이 업체는 2년 동안 미술관에 있는 동안에 돈은 잘 벌어 갔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불 성실한 모습이어서 눈엣가시였었는데 나와 주현이가 연습을 해서 그 자리에 나와 줬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우리의 그림 실력을 너무 맹신하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리커쳐는 한 번도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 자신이 없네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서요.”

“ 여기서 캐리커쳐 하는 사람들 다 주민 씨 보다 그림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연습만 조금 하시면 분명 잘하실 겁니다. 주민 씨 인물화 잘하시잖아요.”

위로와 같은 칭찬을 해주시며 계속 설득하는 통에 못 이기는 척하며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머릿속은 멍했다. 갑자기 받은 제안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캐리커쳐를 그려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관심조차도 갖지 않았던 분야였던 것도 문제지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등지고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원래 작품을 할 때 누가 뒤에서 잠깐 보기만 해도 부담이 돼서 잘하던 그림도 잘 안 되는 법이다. 그 정도로 타인의 시선은 화가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정신없이 오다가 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 좀 걸을까? 생각도 정리할 겸?”

주현이도 머리가 복잡한지 우리는 오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 것을 꺼려한다.

“ 그럴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네.”

5월 말이라고 한다면 두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말고의 문제보다 출, 퇴근 또한 문제였다. 예전에 벽화 일을 할 때 삼 개월 넘게 출, 퇴근한 경험상으로 비추어볼 때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렇게 고민이 되는 일들이 생기면 우리는 산책을 하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었다.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진심도 종종 확인하곤 했다.

“ 차분하게 생각을 해 보자.”

지금까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삶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 하며 희망 그리고 좌절을 느끼면서 지내왔단 말인가? 그림을 그리면서 돈도 벌고 같은 공간에서 둘이 같이 헤쳐 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분명 큰 기대를 하고 있을 텐데. 실망을 하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덮쳐왔다.

벌써 내가 우유 일을 그만 둔지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 사이 한 동안은 장인어른 간병하는데 시간을 쏟았고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림을 그려 팔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얼마 전까지 주현이의 갑상선 질환 때문에 건강을 다시 회복하려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뭔가 인생이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시 다른 문제에 봉착이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에 또 도전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일단은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는 캐리커쳐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누구에게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인물을 그리는 데는 일단, 관찰을 통해 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강조와 생략으로 그림으로서의 매력을 끌어내야 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가 본인의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성업하고 있는 캐리커쳐 작가들이 있는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사동, 파주. 홍대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지도 모르는 미술관까지 여러 군대를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적인 연구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주 예전부터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소묘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왔던 나로서는 인물을 관찰하고 그리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유화 작업을 할 때 관찰한 사물을 더욱더 사진처럼 디테일하게 그리는 방법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물을 왜곡시켜 우습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몰랐고 그리고 그렇게 그리고 싶지도 않았다. 대표님 역시 차별화된 다른 그림을 그려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리커쳐 작품 대부분은 대상을 우습게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메르스라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전염병이 창궐하며 한 동안 우리나라는 난리도 아니었던 시기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에는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던 미술관도 지금은 한산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이 날짜를 맞춰서 들어갈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손님이 없다 보니 종용할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여러 군데 업장을 다니며 분석을 해봤는데 그림을 그리는 요령들이 모두 비슷해 보였다. 인터넷 조회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캐리커쳐를 일반인에게 가르쳐 작가로 양성하는 학원 같은 곳도 있었다. 같은 선생님한테 배우다 보니 그림체가 모두 비슷비슷했다. 뭉툭한 매직으로 형태를 잡다 보니 선의 굵기가 일정해 그림이 단순해 보이는 것도 문제였다. 대체로 입과 치아를 강조해 그리는 것도 획일화된 특징이었다.

한 가지 우리가 배울 만한 것이 있었는데 채색을 할 때 굉장히 부드러우면서 빠르게 색칠이 되는 파스텔과 그 파스텔을 쓰는 방법. 그 방법과 재료가 가장 궁금했다. 저렇게 부드럽게 그려지는 걸 보면 종이가 일반 켄트지는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 철이가 소묘로 그림을 그릴 때 매번 사 오던 종이가 생각이 났다. 백상지. 일반 켄트지 보다 표면이 부드러워 연필선이 더 잘 깔렸었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니 초록색 판을 나무판에 덧대어 쓰는 것이었는데 작가가 한 눈을 팔 때 한 번 만져볼 수 있었다. 스펀지 같이 말랑말랑 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재료를 일단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파스텔을 찾아야 했다. 캐리커쳐를 마스터하는 일에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캐리커쳐 작가들이 파스텔을 감싸고 있는 종이를 다 떼어내고 쓰고 있어서 상표를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재료를 파는 곳을 다니며 탐문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세 군대를 돌아다니면서 특징을 파악한 거라고는 이 정도였다. 그것보다 그림을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식음을 전패하고 그림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그림을 연구하며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점점 그림체가 완성이 되어갔고 10분 정도에 한 사람을 그리는 속도도 나오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98화. 금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