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래. 해보자.
100화. 그래. 해보자.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주위에서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작은 누나는 둘째를 출산했다. 큰 누나네 내외는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나서 군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전립선이 비대해져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좋아하시던 자전거 탓이었는데 수술 이후에는 자전거 동우회를 나가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밖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침 큰 누나도 다시 올라와서 첫째 조카를 보는 일을 아빠가 작은 누나의 둘째를 보는 일은 엄마가 하기로 합의했다. 누나들 내외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매번 부모님의 손을 빌려야 했다.
최근에 화실 선생님 아버지는 전립선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선생님이 내심 바라셨던 유산 상속은 야속하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실에 수강생은 흔적을 감춘 지 오래였다. 상황이 그렇보니 선샣님은 화실에 종종 들리던 선배님을 따라 경비 일을 시작하셨다. 그 사이 모든 점수를 채우셔서 선생님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초대 작가까지 되셨지만 선생님이 생각하신 만큼 형편이 좋아지는데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선생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아버지의 귀는 점점 더 어두워져서 보청기를 끼워도 잘 듣지 못하셨고 엄마의 무릎 관절도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엄마를 더 이상 자립으로 걷게 하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부모님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처재는 석사논문을 통과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용인에 혼자 사시는 장모님은 우리에게 불안 요소로 다가왔다. 혼자 계시다 보니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손에 잡힐 듯 안 잡히고 만약 잡힌다고 할지라도 그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지금 당장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나를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나중 같은 거는 다 필요 없는 말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나는 내가 해왔던 회화 작업이 얼마나 작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 무렵, 언론과 검찰. 그리고 정치세력들과 국정원 등이 우리 국민을 얼마나 우롱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그때부터 나는 내가 작품을 해야 하는 의미와 그 작품의 가치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쉽게 작품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거짓선동을 하며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을 목도하며 내가 작품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의도가 너무 허접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면서 또 한 번 좌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아니 그런 거창한 것들을 회화라는 장르로 표현한다고 한들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미술품은 그저 사치품 내지는 재 태크의 관점에서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고민들은 작품을 해야 하는 모든 부분에서 나의 발목을 잡았다.
얼마 안 되는 돈에 내 작품을 파네 마네하며 질질 끌려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작품보다 캐리커쳐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벌고 싶었다. 진실한 작품을 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그 무거운 무게를 던져 버리고 싶었다.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주현이와 입고 싶은 거 입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며 그저 그 소소한 일상을 즐겨보고 싶었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돈은 나를 속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재료에 대한 연구는 끝이 났다. 홍대에 있는 호미화방과 한가람 문고를 싹 다 뒤지면서 탐문을 해본 결과 생각보다 쉽게 재료를 찾을 수 있었다. 미술관이 홍대에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호재였다. 재료 공수도 쉽고 그때그때 화방이 가까워서 모든 것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