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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발톱 8

8. 발톱과 장모님.

by 번트엄버

8. 발톱과 장모님.


거실로 나와 새로 장만한 더 디테일하게 절단이 가능한 니퍼를 집어 들었다. 생살을 뚫고 나온 내성발톱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환부에서는 다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양손에 니퍼를 들고 나는 오른손으로 내성발톱을 잡아 들어내고 왼손으로는 최대한 아래쪽을 과감하게 잘라 냈다. 그리고 홍해처럼 갈라진 내 왼쪽 엄지발가락을 의료용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숨 가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내성발톱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기 시작했다. 아주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나는 슬기로운 해결책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내성발톱이 올라오는 방향에 가까운 엄지발톱의 넓은 면을 세로로 갈아내서 내성발톱이 발톱 쪽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론대로 잘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성실하게 대응을 해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다시 내성발톱이 살을 뚫고 나온 곳으로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일념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다시는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안 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집 안에 있는 모든 도구를 활용해서 발톱을 갈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도구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귀금속을 제작하는데 쓰이는 줄을 사서 정교하게 발톱을 갈아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두 달, 석 달을 넘기면서 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론처럼 내성발톱은 발톱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라는 것이었다.


내 몸에서 알리는 신호에 정확하게 반응을 하니 놀라운 결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내는 소리에도 집중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함을 느끼는지 이제부터는 그 소리에 집중을 해야겠다 싶었다.

실은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붓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신나게 작품을 해왔던 나에게 미국 발 금융위기는 내가 붓을 들어야 하는 모든 이유를 모두 없애 버렸다. 그림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 화가들은 모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며 붓을 들 시간에 다른 것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작품을 멀리하는 동안 예술적인 사고와 감각은 무뎌질 대로 무뎌져가고 있었다. 그린데 내 속의 소리에 집중을 하다 보니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다시 말을 하 기 시작했다. 어서 붓을 들어 다시 그림을 그리라고 말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리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욱 커지면 화가는 다시 붓을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장모님이 무릎에 맞은 주사는 그 효능이 6개월 정도밖에 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주사액의 성분은 스테로이드 성분에 마약 진통제였다. 기적이 아니라 사기에 가까운 위험한 진료였던 것이다. 그 용하다는 의원의 원장님은 벌금형에 처해지며 병원 문을 닫았다고 했다.

참 허망한 일이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장모님이 본인의 몸에서 보내는 소리에 집중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수술도 두렵고 수술 후에 재활 역시 엄두가 안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더 이상 몸에서 보내는 아우성에 장모님도 대답을 하셔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었다. 정확하게 듣기만 할 수 있어도 도망가지 말고 마주하기만 할 수 있다면 장모님도 분명히 본인 스스로 자신을 보다 더 잘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같이 처참한 결과가 나올 수 도 있지만 말이다.

나와 아내는 그 사건 이후 장모님을 더욱 강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모님도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슨 말을 걸어오는지 잘 들여다볼 수 만 있다면 자기 스스로 불행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적어도 없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원래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정답을 말이다. 그 소리가 무엇 인지 잘 알고 있지만 미진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됐다고 믿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고도 스스로를 위안하고 기만하며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경우고 많았다.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우리는 실수를 반복해 왔다. 이러한 실수는 자신을 정확하게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장모님도 수소문 끝에 무릎 수술에 용하다는 병원을 방문하고 검사를 받으셨다. 무릎뿐만이 아니라 허리도 디스크가 있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다리가 성치 않다 보니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많이 누워있게 되고 허리마저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병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장모님은 본인의 민낯을 확인하시고 일주일 정도의 숙고 끝에 수술 날을 잡게 되었다. 장모님의 고통도 이제는 끝이 보이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 이제 또 다른 시작이구나.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몸과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찾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아마도 우리가 찾고자 하는 행복이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나도 장모님도 그리고 아내까지 모든 가족들이 원하는 아주 평범한 행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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