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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엄버 Sep 07. 2022

34화. 연인.

34화. 연인.

34화. 연인.


 전역일은 12월 3일이었다. 복학을 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복학까지는 시간이 3 개월 정도 남아 있었다.

 전에 일했던 학원에 내가 다시 일할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철이가 꽉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실력이 출중한 녀석들로 강사들이 포진되어 있었고 철이는 홍대 앞 제일 큰 학원에 출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학원가에 진출한 후배들도 많아졌고 철이는 홍대 앞 학원가에 가장 유명한 강사가 되어있었다. 

 복학하기 전에 철이 작업실로 출, 퇴근을 하면서 그동안 굳었던 손을 풀기로 했다. 충재도 먼저 전역을 해서 학원 일을 찾고 있었는데 손을 같이 풀기로 했다. 손을 푼다는 의미는 그간 연필을 많이 쓰지 못했으니까 강사를 했던 그 시절  정도까지 종이, 연필과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구 작도 어느 정도 해놔야 학원 강사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철이와 노량진 학원을 알아봤을 때처럼 시간을 내어 작품들을 만들어야 한다. 

 철이는 작업실을 쓰는 것에 대해 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부담 없이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와의 데이트도 늘 하루하루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우리가 사귀는 사이야?”

 “ 그럼.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주현이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줬잖아.” 

 “ 아니야. 아직.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안 했잖아.”

 “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러네.” 

 “ 정식으로 프러포즈하지 않은 이상 아직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야.”

 생각해보니 여자들 자신들만의 나름의 프러포즈를 받는 로망이 있었을 텐데 내가 그 부분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로맨틱한 고백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신 이나기 시작했다. 

 “ 알았어. 내가 준비해서 해 줄게.”

 이런 것 들을 과감하게 요구하는 것도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연예의 경험이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다.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 일단 멋진 정장과 코트가 필요해. 정장이야 큰 누나 결혼할 때 한 벌 생겼으니까 그것을 입으면 되고 코트는 하나 사야겠다.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연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꽃다발과 양초, 와인도 필요하겠다. 와인을 따라 마시려면 와인 잔 하고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려면 케이크도 하나 필요하겠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동원되었다. 그 이상을 해주면 더 좋겠지만 갓 군대를 전역하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던 지라 할 수 있는 것들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 미술관 일 끝나면 철이 작업실로 와.”

  전화로 주현이와 통화 중에 말했다.

 “ 알았어. 철이 작업실로 갈게.”

 그녀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분주해졌다. 여러 개 사둔 양초를 이곳저곳이 켜놓고 작은 탁자 위에  케이크와 와인 그리고 와인 잔 을 준비해 뒀다. 그리고 미리 사둔 꽃다발을 들고 골목길에서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5시 반이 퇴근 시간인데 여기 작업실까지 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시간을 맞춰서 그녀를 기다리는데 저기 멀리에 그녀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모직 코트가 잘 어울리는 그녀. 긴 머리와 잘록한 허리가 누구라도 지나가는 남자들 중에 그녀를 쳐다보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전봇대 뒤에 숨어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그녀가 가까이 왔을 때 그녀 앞에 다가선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며 그녀에게 고백했다. 

 “ 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살아갈 건데 당신 역시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살아줄래? 운보 김기창과 그의 부인 우향 박래현 같은 부부 화가로 살아가 보자. 진심을 다해 말하는 건데 사랑해.”

 그녀는 살짝 감동을 받았는지 입을 막고 서 있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 당신의 프러포즈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입 밖으로 낸 말들은 예전부터 주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녀는 내가 내민 꽃다발을 받으며 내게 미소를 건넨다. 

 “ 이제 내려가 보자.”

 그녀의 손을 이끌며 작업실로 내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별거는 아니지만 소박하게 로맨틱한 풍경에 그녀는 나에게 입을 맞춰 주었다. 

 “ 우리 주민이 귀엽네.”

 “ 하하. 일단 좋게 봐줘서 고맙네.” 

 “ 우리 사랑의 시작을 기념하자고. 그래서 초는 하나야. 우리가 하나라는 의미에서.”  

 촛불들이 일렁일 때마다 그림자의 모양과 크기가 춤을 추듯이 일렁거린다. 때마침 서산 어귀로 사라진 해가 고맙다. 공간 안을 적당한 밝기로 밝혀주는 초들의 도움으로 작업실 공간은 로맨틱한 공간이 되었다. 

 “ 자. 초에 불을 끄고 와인도 한 잔 하자고.”

  와인에 대해 지식이 전무했던 지라 주류 백화점에 가서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준 것을 사다가 놓았는데 가장 유명한 레드 와인이었다. 가난한 연인의 소박한 프로 포즈에 감동받아주며 사랑해라며 나에게 안기어주는 그녀. 그녀가 내 품에 안기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 주민이가 이렇게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지 몰랐네.”

 “ 드라마에서 본 것 좀 따라 해 봤는데 괜찮았어?”

 “ 응. 소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져서 감동받았어.” 

 “ 그래. 다행이다. 케이크 조금만 먹고 나가서 저녁같이 먹자.”

 소파에 앉아 있는데 그녀가 내 다리 위에 앉으며 입 맞춰준다. 달콤한 입맞춤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 가만. 초 이렇게 오래 켜 두면 공간 안에 산소가 다 없어지거든. 이제 그만 끄자.”

 초도 끄고 작업실도 어느 정도 정리해해 놓고 그녀와 저녁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주현이는 얌전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가리는 음식 같은 것은 없었다. 뼈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오케이. 순대 국을 먹자고 해도 오케이. 다만 패스트푸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 다른 여성들과 다른 점이 라면 그 점이었다. 피자나 햄버거를 먹자고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중앙시장에 지난번에 선생님이 알려준 허름한 삼겹살집에 갈 참이다. 얼지 않은 고기를 주는데 맛이 일품이다. 요즘은 대패 삼겹살이라고 유행인데 많이 먹었더니 질리는 맛이었다. 고기도 하급을 쓰는지 갈수록 별로였다.

 “ 내가 삼겹살 집 하나 알아 놨는데 맛이 끝내 줘.”

 “ 그래? 삼겹살 안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역시 입맛은 토종이다.  

 “ 여기 대충 정리하고 나가자.”

 “ 그래. 그러자.”

 긴장을 한 탓인지 배가 많이 고팠다. 그녀와 나는 먹는 취향이 비슷해서 그 점도 좋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까지 우리는 잘 통했다. 좋아하는 커피 성향도 같았고 영화를 보는 성향도 비슷했으며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도 비슷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거슬릴 것이 없었다. 오늘은 프로 포즈도 성공적이었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고 그녀를 바래다주어야겠다. 


 학원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연필 색감도 손가락의 감각도 쉽게 전성기 시절 때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소묘를 하면서도 작품을 해서 공모전에도 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려니 철이 작업실보다는 선생님 화실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공모전의 일정을 꾀고 있는 선생님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간을 쓰는 것도 선생님 화실이 편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화실로 다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시절이 좋아져 복학 신청도 인터넷으로 하는 시대가 되어 있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피시방을 이용해야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는 것보다는 편했다. 군대를 가기 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있었다. 

 복학을 하 기 한 달 전 아버지가 일하시는 현장에서 열흘 정도 잡부로 일하게 되었는데 처음 이틀간은 아버지가 시키는 일만 했다. 일은 굉장히 단순하고 지루했다. 목수들이 쓰는 핀을 주워오는 일이었는데 뭔가 특혜를 받는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그냥 잡부로 일하게 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일하면 아버지가 내 일당을 챙겨 주는 거였고 잡부로 일하면 현장 소장이 일당을 챙겨주는 구조였다. 아버지가 오야지로 일을 따서 하는 일이었고 그 현장 소장은 바로 정화누나 남편이었다. 

 제법 친한 사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매형은 현장에서 나를 본척만척했다. 뭐 나름 공사 구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같이 잡부로 일하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나를 유 씨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는데 그것도 어느새 시간이 지나니 적응이 되었다. 

 “ 어이, 유 씨. 일루와 좀 쉬었다가 합시다.”

 “ 네. 담배 한 대 피우고 할까요?”

 할아버지는 검은 비닐을 하나 꺼내시고 물병도 하나 꺼내셨다. 

 “ 자. 이거 한 잔 혀.”

 “ 네. 시원한 물 한잔 하고 싶었는데.” 

 종이컵을 받아 들고 한목 음 들이키는데 이런! 내가 받아 든 종이컵에 든 것이 물이 아니라 소주였다.

 “ 켁. 술이면 술이라고 말씀을 해주셔야죠. 켁. 캑.”

 술집에서 물인 줄 알고 소주를 들이켜봤는가?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는 그만한 고역이 없었다.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이 났다. 

 “ 아직 젊어서 간이 쎄 거구만 ㄱ래. 하하하.”

 할아버지는 너스레를 떠신다. 주섬주섬 꺼낸 검은 비닐 속에는 삶은 닭고기들이 있었는데 살은 다 발라져 있었다. 

 “ 이걸 집에서 싸오신 거 에요?” 

 “ 그럼 강소주를 마실 수는 없잖아.” 

 “ 아이고 아침에 시간도 많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가 참으로 먹으라며 싸준 것 이라는데 할아버지는 원래 농사를 지으시는 농부셨다. 일감이 없는 겨울이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시며 생활하신다고 했다. 늙은 몸을 이끌고 하시기에는 고된 일이었지만 톡톡히 한 사람의 역할을 하고 계셨다. 

 노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신기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천천히 일을 하시는데 저렇게 하다가 어느 세월에 하나?라고 생각이 드는데 지나고 나면 그 일을 시간 내에 다 하신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면서 그 점이 가장 놀라웠다. 이렇게 중간중간에 참을 같이 먹으면서 열흘 가까이 일을 하고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복학이 며칠 안 남아서다.

 건설현장에서 열흘 동안 번 돈으로 아버지 핸드폰을 하나 사드렸다. 당시에 유행을 했던 삼성 애니콜 제품이었는데 반으로 딱 접히는 폴더 폰이었다. 물론, 엄마의 강요에 의해서긴 했지만 처음으로 거금을 드려 아버지께 선물을 할 수 있어서 나름 뿌듯했다. 그리고 한편 생각해보면 며칠 일한 거는 아버지가 나한테 준 돈이 아니던가.


 복학을 하고 나면 같이 입학한 동기들이 아닌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후배들과 수업을 들어야 한다. 나는 두 차례에 걸친 휴학과 2년여의 군 생활을 포함하면 4년 넘게 학교에 없었다. 학교에 동기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학번도 나이도 제일 많을 것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상 복학을 해보니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나보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것도 같은 학년에 3명이나 있었고 3학년 중에도 한 명이 더 있었다. 

내가 군대 있는 동안 신 입학 한 형들인데 두 명은 나보다 두 살 많았고 한분은 아홉 살이나 많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처음에는 내가 학번으로 선배니까 선배 대접을 하려 하 길래 그냥 그 형들한테 내가 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뭐. 군대도 갔다 왔는데 같은 학년이고 선배 대접받기도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이런 문제는 쿨 한 편이다. 군대에서도 그러더니 가는데 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생겼다.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대해주니 형들은 대체로 다 좋아했다. 그중에서 아홉 살 많은 성범이 형과 학년은 한 학년 높은데 99학번 후배인 성우와 많이 친해져 같이 붙어 다니고 수업도 같이 듣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2학년 생활은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미술이론이 목말라 있던 탓에 나는 전공수업보다 미술평론 수업과 미술사, 미학 등 미술경영과 수업을 오히려 더 많이 들었다. 복수전공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미술이론 수업은 들을수록 흥미가 생겨났다. 주현이가 미술관에서 일하는 때여서 미술관과 갤러리를 같이 다니는 일도 많이 생겼다.  당시에 좋은 전시들도 많았고 한참 공부를 하다 보니 수업 때문 에라도 전시장을 가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학기를 잘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술 이론 수업을 많이 들어 학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가 보다. 교양이 아닌 전공수업이다 보니 타 학부 학생한테는 성적이 야박했다. 


 많은 흥미를 느낀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는 다시 휴학을 해야만 했다.

 엄마는 그간 집안에 빚이 많이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등록금도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자고 했었는데 나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없는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대단지 아파트는 완공이 됐다. 하지만 미용실을 찾던 손님들은 더 이상 엄마의 미용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점점 늙어가는 엄마의 미용실은 이제 젊은 사람에게 넘겨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시간은 왔지만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에 허덕이며 카드깡까지 하다가 결국 터질게 터진 것이었다.

2003년 엘지카드 대란은 엄마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tv 광고에서 신용카드를 가지면 윤택한 삶을 마치 누리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고 어디서든지 카드를 쉽게 만들 수 있어 대학생도 별도의 심사 없이 너무 쉽게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무분별한 카드 발행 남발이 낳은 참사였다.

 미용실은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 되었고 빚을 어느 정도 갚으려 시작한 계는 네 사람이 못하겠다고 이탈하면서 한 달에 엄마가 준비해야 하는 곗돈만 350만 원이나 됐다. 사채에 일수까지 달러이자가 넘는 금리에 엄마는 질식해가고 있었다. 

 집안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말라가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나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군대에서 만난 광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광진이는 석 달 선임이었는데 수원대 서양화과 다니던 놈이었고 빠른 80이라 편하게 친구가 되어준 녀석이다. 집도 의왕이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 어. 유 병장 어떻게 잘 지냈는가?”

 전화가 너머로 광진이 목소리가 참 반갑다. 

 “ 응. 나야 뭐. 그럭저럭 지내지.”  

 “ 다름이 아니라 주민아. 너 방학 동안 설비일 안 해볼래?” 

 “ 설비일? 무슨 일 하는 건데?”  

 “ 어. 건물에 들어가는 배관 작업하는 건데. 우리가 할 일은 소방 설비야.” 

 “ 근데. 갑자기 웬 뜬금없이.” 

 “ 우리 아빠 아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을 찾는데 젊고 건강한 사람들을 찾더라고. 주민이 네가 좀 건강하냐?”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팀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젊은 친구들하고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많이 배우면 나중에 돈도 많이 준다고 했다. 광진이는 이미 친형과 함께 일을 이틀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많이 고민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아버지도 강원도에 현장이 잡히셨다며 집을 떠나셨다. 나도 미력하지만 가사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해 볼까?”  

 “ 그래 생각 잘했어. 너도 분명 재밌어할 거야.”

 사람을 구한다는 팀장님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셨다. 그렇다 보니 나를 픽업해 주신다고 했다. 현장은 분당에 있는데 한 4개월 정도 일할 것이라고 했다. 일당은 6만 원이고 점심식사만 제공되는데 무엇보다 교통비가 들지 않아 좋았다. 미술학원 강사를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는데 일단, 나에게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 느닷없이 설비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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