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전역.
부대로 복귀한 나는 전역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녀와의 추억을 기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과를 마치고 통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
말년 병장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되면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된다. 있어도 없는 사람. 없는 듯 있는 사람. 마치 공기 같은 느낌이 랄까? 그런 말년이 나에게는 굉장히 짧았다. 제대를 이틀 앞두고 나서야 나는 견장을 떼 줄 수 있었다.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는 일.
책임을 다한 자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8개월간의 분대장 생활과 동시에 군대에서의 마지막 종착지로 가야 한다. 바로 전역이다.
우리 내무 실은 전역하는 사람을 전날에 멍석말이하듯이 모포에 말아 발로 밟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내가 전역할 때는 부대원들이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8 개월간의 분대장의 위엄이었다. 나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 부대원들은 나를 조용히 보내 주었다. 그 점이 나도 고마웠다.
알 동기.
나를 포함한 33명은 같은 날 우리 대대로 전입했고 같은 날 전역했다. 포대장님과 대대장님한테 전역 신고를 마치고 부대를 나오는데 본부 포대 전 부대원들이 환송을 해준다며 길 양쪽으로 도열해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부풀어 오른 가슴을 애써 감추며 길을 따라 나왔다.
‘ 드디어 나도 전역을 하는구나.’
평소 휴가 때 같으면 청평을 거쳐 안양으로 향했을 테지만 오늘은 동기들과 청량리역에서 소주 한 잔 하고 헤어지기로 미리 약속을 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동기들과의 술자리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길을 떠나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가는 속도가 영 더디다. 그런데 갑자기 급똥이 마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상봉이지?”
이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던 나는 동기 녀석한테 물었다.
“ 원래 빨리 달리면 여기서부터 30분이면 가는데.”
“ 나 갑자기 급똥이 너무 마려운데 어쩌지?”
30분 정도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차가 앞으로 안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십 분 정도 더 참았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 야. 나 도저히 안 되겠다.”
“ 나.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서 똥 좀 싸고 갈 테니까. 청량리에서 만나자.”
“ 그래. 상봉 터미널에서 내려서 나오면 사거리에 롯데리아 있거든. 거기서 보자.”
“ 그래. 금방 뒤쫓아 갈게.”
“ 그래. 일 잘 보고 이따가 보자.”
동기 녀석들 한 녀석, 한 녀석 하고 눈인사를 하고 벨을 눌러 내렸다. 화장실이 열린 곳을 찾아 천천히 걷는데 멀쩡히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똥구멍에 힘을 바짝 주고 슈퍼에 들어가서 휴대용 휴지를 사고 나오는데 1차 위기가 왔다. 길거리에 가만히 서서 관략 근의 힘을 주어 최대한 방어를 했다.
더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로 길을 따라 걸었다. 한 20미터 정도의 거리에 주민 센터가 보였다.
‘저기 라면 화장실이 있겠지?’
걸음에 속도를 더 냈다. 그 순간 2차 위기가 왔다. 내 경험상 3차 위기가 오고 나면 아무리 힘을 줘도 똥은 새어 나온다. 20 미터 거리가 20 킬로로 느껴졌다. 그래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주민 센터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빈칸을 찾아 이내 들어가 벨트를 푸는데 3차 위기가 왔다.
‘ 잠깐. 잠깐. 이제 바지만 내리면 된다.’
바지를 내리자마자 폭포수 같이 쏟아진다. 뭘 잘못 먹은 건지. 어제 잘 때 모포를 잘 안 덮고 잔 건지.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나는 장이 완전히 비어 졌다는 느낌이 날 때까지 변기 위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장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빨리 차를 타고 가서 동기들을 만날 생각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금세 차가 왔다.
‘ 그나마 다행이다. 어서 가서 동기들과 조우해야지.’
차 문이 열리고 천천히 차에 오르는데 버스 기사님이 문을 너무 일찍 닫아 버리는 바람에 문에 얼굴을 맞게 되었다. 문에 얼굴을 맞으면서 안경도 맞아 쓰고 있던 안경테가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군대에 있는 내내 무테를 줄곳 쓰고 있었는데 그 힘든 att훈련과 유격훈련 등 군 생활 내내 치열하게 했던 농구를 하면서도 부러지지 않았던 안경이 전역하는 날. 그것도 버스 문에 맞아 부러지다니.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부동시가 심해서 안경을 안 쓰면 사물이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집중해서 뭔가를 보려면 어지러움을 느낀다.
“ 아니. 내가 문을 너무 일찍 닫아서 미안하게 됐네. 청년.”
“ 아니에요. 오늘 전역하는 날인데 액땜했다고 생각할게요.”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을 잘 보내고 안경도 보내고 이 모든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테니까. 한 가지 아쉬움점이 있다면 동기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자리로 향하는데 흐릿하게 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교통사고가 수습이 됐는지 길은 잘 뚫려 있었다. 차는 30분을 내 달려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약속했던 롯데리아 앞에 동기 녀석 중 한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술집 자리를 잡아 놓고 지금 막 나왔다는 말을 전했다.
“ 주민이. 생각보다 빨리 왔네.”
“ 어. 그새 사고가 다 수습이 됐는지 길이 안 막히더라고.”
“ 그랬구나. 우리는 계속 막히는 길로 왔는데.”
“ 그래서. 시간차가 많이 나지 않았나 보네.”
녀석을 따라 술집으로 들어서는데 술집 안에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나중에 동기들이 설명을 듣고 알았다. 휴가 나온 군인들끼리 한 잔 하고 헤어지는 술집이란다. 이렇게라도 이 녀석들과의 추억을 한 장 더 남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또는 멋지게 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구나. 반가웠고 고마웠다. 동기들아.
동기들과 나는 진하게 술을 한 잔 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기란 쉽지 않겠지?’
2년 2개월이라는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내 즐거웠다. 다시 만날 때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