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설비.
35화. 설비.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팀장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팀장님은 다부진 채구에 선한 인상을 가지고 계셨다.
“ 네가 주민이구나. 반갑다. 나는 조종갑이라고 해. 그냥 팀장님이라고 불러줘.”
“ 네.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 미술 전공하는 친구라고 해서 홀쭉한 사람이 나올 줄 알았는데 체격이 좋네. 힘 좀 쓰겠어. 허허.”
내가 보기에는 나보다 체격이 더 좋으셨던 것으로 보였던 팀장님이 나보다 힘도 훨씬 센 사람으로 보였다.
“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광진이와 같이 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광진이는 어떤 일이던지 간에 굉장히 요령 좋게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 점에서 신뢰가 갔다.
한 40분 남짓 달렸을까? 우리는 현장에 도착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일을 할 때 입어야 할 작업복을 챙겨 오지 못했다.
“ 팀장님 작업복은 따로 챙겨 와야 하나요?”
“ 그렇지. 조끼 하고 안전화 그리고 각반은 내가 줄 거야.”
“ 각반은 뭐예요?”
“ 군대에서 쓰던 고무링이라고 생각하면 돼. 바짓단이 어디 걸리지 않게 정리해 주는 안전구야.”
그리고 바지하고 남방은 현장 주변에 차로 와서 파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현장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멀지 않은 곳에 화물차를 대놓고 옷을 파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주로 남방과 청바지만 팔았는데 이 구성이 작업복으로 괜찮은가 보다. 사이즈에 맞게 바지를 고르는데 잠뱅이에 리바이스까지 메이커가 많아서 깜짝 놀랐다. 어디서 덤핑으로 들어온 것을 세탁해서 파는 것 같았다. 싼 맛에 바지 두 개, 남방 두 개를 샀다. 그래 봐야 12000원이었다. 남방과 바지 구분 없이 한 장에 3000원이었다.
현장 근처에서 산 작업복으로 환복을 했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니 광진이와 그의 형. 그리고 그들을 태우고 온 이 기사님이라는 분이 와 계셨다. 나는 인사부터 했다.
“ 안녕하세요. 광진이 친구 유주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어. 네가 오늘부터 우리랑 일하게 된 애구나.”
이 기사님이 인사를 건넨다. 이분이 광진이 아버지와 친분이 있다는 분이었다. 그때 마침 팀장님이 안전모와 각반 그리고 안전화를 가지고 오셨다. 다른 설비 사무실에서 받아온 것인데 때마침 내 발에 맞는 안전화가 한 켤레 있었다.
“ 이제야 팀이 완성이 되어가는구나. 거국적으로 커피 한 잔 하고 일하러 갈까?”
“ 커피는 제가 타겠습니다.”
광진이가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다른 막일에 비해 인건비도 싸고 설비는 참도 없다고 했다. 그나마 장갑 제공해 주고 믹스커피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팀장님 사비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새벽이라 차가운 공기 탓에 담배 한 대와 함께 하는 커피는 꿀맛이었다. 아마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고 먹는 것이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첫날이라고 봐주는 일은 없었다. 지금 현장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탓에 아직도 주문한 파이프들은 매일 같이 들어오고 있었고 각층에서 쓸 파이프들을 각 층으로 올리는 일도 일일이 사람이 해야 했다.
건물이 차차 지어지며 한 층씩 올라가는데 그때 발을 맞춰서 전기와 설비는 따라 올라가야 한다.
우리가 하는 공사는 소방 설비라고 했다. 스프링클러라고도 하는 이 소방 설비는 화재 진압용 설비를 의미한다.
아연으로 도금이 되어 있는 강관을 재료로 쓰는데 큰 구경의 파이프는 아크 용접으로 관을 연결하고 구경이 50미리 이하로 작아지면 파이프에 직접 야마를 내어 부품을 써서 연결을 한다. 건물은 10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이었는데 이 큰 건물 곳곳에 파이프를 설치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공정 자체가 아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기계실 밸브에서 연결된 가장 굵은 파이프는 건물을 수직으로 올라가는데 중간중간 층에서 관이 지나가는 길을 내어 건물 중앙으로 큰 파이프를 지르고 거기서 곁가지 같이 또 갈래를 내어 관의 크기를 줄여가며 스프링클러가 있어야 할 위치에 하나씩 자리하게 하는 일이 주된 일이었다.
일단 이 많은 양의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서는 분업화가 필수였다. 그래서 팀장님과 이 기사님은 기계실에서 뽑아 올린 매인 관을 효진이 형을 데리고 같이 일을 했고 광진이는 팀장님이 재단을 하라고 시킨 파이프들을 구경과 사이즈에 맞게 자르는 일을. 나는 그 파이프들을 양쪽으로 야마를 내는 일을 했다. 양이 워낙 많아 며칠씩 걸리는 일이었다. 작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야마를 낸 파이프에 아사 실을 감고 여기에 컴파운드라는 액체를 바르고 마지막으로 테프론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감아주면 준비가 일단 끝난다. 아사 실과 컴파운드 그리고 테프론까지 감긴 파이프들은 연결되었을 때 실제로 가해지는 수압을 버텨 물이 세는 것을 방지하는 접착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며칠 일을 하며 적응할 무렵, 우리 집에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돈을 빌린 고모에게 넘어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일수놀이를 하던 고모에게 돈을 빌린 엄마는 이자를 내는데 카드깡을 이용했다. 그 방법 역시 고모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대형 카드사가 망하면서 카드깡을 할 수 없게 됐고 엄청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어쩔 수 없이 집을 고모에게 넘기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셋집 구할 돈을 마련할 때까지 그냥 쓰라고 말하던 고모는 며칠 사이 마음이 바뀌어 월세를 요구하고 나왔다.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미용실 뒷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을 내보내고 우리 집이 미용실 뒷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살림들은 거의 모두 버리게 됐으며 다 큰 녀석들끼리 같이 잘 수 없었기에 나는 미용실 소파에서 잠을 자야 했다. 그나마 계절이 여름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참에 집을 나오게 됐다. 주현이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승희형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형은 어차피 혼자 사니까 잠시만 같이 살자는 나의 제안에 고맙게도 동의해주었다. 그러면서 형도 일을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같이 설비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같이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내가 번 돈을 손에 쥘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꼬박 140만 원을 줘야 했기 때문에 내 용돈은 한 달에 20만 원 남짓이었다. 한참 재밌게 연애를 하고 있던 탓에 주현이에게 제일 미안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나는 그녀를 만나면 행복했다. 어쩌다가 월요일에 쉬는 날이면 우리는 인사동이나 청담동 등지에 그림이 있는 곳에서 데이트를 많이 했다.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보며 그림을 보는 시야를 넓혀갔다. 몸은 건설 현장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그림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목표가 생겼다. 나와 주현이가 쓸 수 있는 작더라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마련하는 꿈이 생긴 것이었다. 승희형 집에서 나와 나도 작업실에서 자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이부자리와 밥상도 없던 집인지라 그녀가 가재도구부터 이부자리까지 집에서 남는 거라며 가져다주었다. 내 형편은 보잘것 없어졌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오히려 잘 먹지 못하고 다니는 나를 언제나 염려했다.
그 시절, 나는 늘 각성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반드시 작업실을 차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림을 그리리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승희 형과의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 여 남짓한 형과의 동거는 내가 작업실을 얻으면서 끝이 났다.
7개월 남짓 지나면서 엄마의 그 문제의 계는 끝이 났다. 집도 떼이고 가정도 분해됐지만 엄마는 엄마 계원들의 돈을 다 태워 주었다.
친척에게 집이 넘어가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은 엄마를 괴롭히는 일이었다. 엄마는 엄마에게 벌어지는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 큰 불을 껐지만 아직까지 엄마가 갚아야 할 돈은 3억이 넘었다. 변재 할 능력과 의지는 있었지만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는 미용실부터 정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정든 동네에서 이사도 해야 했다.
그렇게 정든 안양에서 군포로 부모님은 이사를 했다. 옥탑 방으로 이사한 부모님은 내가 집에 들어와서 살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나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꿈꾸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미용실을 정리한 엄마는 도서관 식당에서 주방 보조를 하는 일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끊임없이 엄마를 설득한 나는 엄마의 개인파산을 진행하는 일에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친척 형 중에 노무사를 하는 형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법무사님이 다행히도 일을 봐주기로 했다. 물론, 돈은 지불하면서 하는 것이었다. 법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작업실은 주현이와 같이 얻기로 했다. 우리가 얻은 첫 작업실은 서로 100만 원씩 내어 보증금 200에 월세 수도요금을 포함한 23만 원에 기다란 계단 끝 3층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위치도 예전 학원과 가까운 위치로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다. 팀장님 집과도 멀지 않아 예전만큼 많이 걸을 필요도 없었다. 목공소도 가깝고 여러모로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광진이와 효진이 형은 여름 방학 때까지만 일을 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작업실을 차리고 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피곤함이 문제였는데 쉬는 날에나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늘 완성도가 아쉬웠다. 주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을 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간단한 소품이나 수채화 말고는 다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청춘을 같이 보내며 나머지 시간에 할 수 있는 연애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사람들이 나가면서 현장 또한 옮기게 되었는데 옮긴 현장은 오산이었다. 사람들이 나가서 옮겼다기보다 모든 공정이 끝이 났기 때문이다. 오산의 현장은 소방 설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는데 공사에 들어오는 첫 타이밍을 놓친 우리는 지하공사 일이 문제였다.
미리 들어와서 슬리브라고 하는 것을 파이프가 지나가는 공간에 콘크리트 타설을 진행하기 전에 제 위치에 넣어놔야 하는데 뒤늦게 현장에 들어온 우리는 그 과정을 하지 못했기에 해머드릴로 콘크리트를 까내고 철근을 산소용접기로 불어서 떼어 내야 하는 지난한 일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 현장에 와서 해야 할 일들이 이런 일 들이다 보니 힘이 많이 들었다. 대부분 이런 일들은 내가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같이 일하던 이 기사님이 러시아를 자주 가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 기사님은 러시아에 가서 무슨 땅을 임대해 온다고 국회의원이라는 사람과 함께 요즘 부쩍 러시아를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팀을 이루어 일을 해야 하는 설비 특성상 혼자 남은 나는 고된 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sbs 방송국 피디까지 데리고 간다고 하니 우리는 그저 그의 말을 믿어줄 뿐이었다. 하루는 캠코더를 빌려줄 수 있냐고 해서 주현이가 가지기 있던 것을 빌려준 적도 있었다.
이 기사님은 평촌 아파트 조합장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일까지 해봤던 인물이며 정치권 인사들도 다양하게 알고 지내는 조금은 신기한 분이셨다. 사업을 하시다가 임금이 체불이 되면서 사기죄로 재판도 받고 계신 분이셨다.
종합 설비를 하다 보니 팀장님은 팀을 세 팀이나 꾸려야 했다. 이때 때마침 혜성과 같은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김 반장님이었다. 김반장 님은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팀장님을 만나 면접을 보고 반장에 즉위하셨는데 가지고 있는 능력이 지금까지 내가 본 설비 기사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설비기사들은 자신이 어떤 현장에 있었는지를 가지고 자신의 위신을 드러내는데 김 반장님은 국립현대미술관 현장에서 A급 기공들에게 수학을 하며 설비를 배웠다고 했다. 하필이면 주현이 일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니 참 신기했다. 다양하고 복잡한 배관을 배웠는데 그것도 국가 기관을 짓는 일을 해본 그의 경험은 그 누구의 것보다 빛났다. 설비를 정식으로 배웠다는 그는 파이프 간 대각선 거리를 잴 때 삼각함수를 이용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엘보나 45도 엘보를 파이프에 직접 대고 자로 재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어려운 배관일수록 흥미를 느끼고 자신이 하려고 했다. 김 반장님의 등장으로 나는 반장님과 팀을 이루게 되면서 드디어 개인 활동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 시절 나는 작품에 매진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내는 공모전마다 번번이 낙선이라는 성적을 받아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림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내가 봐도 예전 그림만큼의 공력과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이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같이 내는 공모전마다 입선을 하고 있었다. 세종이도 홍선이가 전역을 하면서 같이 작업실을 차려 조명 알바를 하며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 사이 주현이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덕수궁미술관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덕수궁으로 옮기면서 메인 데스크 업무를 시작했다. 국립에서 있을 때 잠깐 미술관장실 비서 업무를 잠깐 본 적이 있었는데 누구에게 어떻게 보고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문화관광부에서 연락이 와서 문화관광부 차관 비서 자리 면접을 보고 왔다고 했었다.
“ 그래서 문화관광부로 들어가려고?”
“ 좋은 기회이긴 한데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오라고 해서 안 하려고.”
“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
“ 그것도 그렇고 비서로 일하게 되면 그림은 완전 못 그릴 거 같아서.”
“ 그래. 잘 생각했어. 그림을 그릴 수 없는데 공무원이 뭐 대수야.”
그렇다.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녀는 그 기회를 그냥 다른 사람에게 양보를 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그런 과정에서 덕수궁미술관으로 옮기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