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조명 막내.
“ 안녕하세요. 주민이 형 되시죠? 저는 세종이 형 퍼스트 안상희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일정이 잡혀서요.”
라며 말을 이어가는데 일정이 잡혔는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첫날이라 세종이 차를 타고 오면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나의 조명 시대는 갑자기 시작되었다.
세종이는 첫날이니까 일이 어떤지 보라며 일은 애들한테 천천히 배우라고 했다. 세종이는 이미 감독이기 때문에 세종이와 나 사이에 단계가 서너 단계 정도 더 있다고 보면 된다. 다른 조수들에게 기본적이면서 기초적인 것들부터 배워야 했다.
감독 바로 밑 단계를 퍼스트라고 부른다. 우리말 그대로 첫째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퍼스트는 감독 바로 밑에서 일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조명 장비를 만지는 것도 퍼스트가 제일 많이 한다. 퍼스트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날그날 필요한 인원들을 감독과 상의한 후 팀을 짜는 일이다. 말 그대로 퍼스트는 촬영이 잡히면 그날그날 인원을 구성하는 일을 하는데 대체로 퍼스트 한 명과 세컨드 한 명 그리고 써드 한 명, 막내 두 명이 기본적인 인원 구성이다. 여기에서 광고의 규모가 크고 작은 것에 따라 제작비가 산정이 되기 때문에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퍼스트 다음은 세컨드이다. 말 그대로 둘째다. 세컨드 드은 언뜻 보면 퍼스트와 하는 일이 비슷해 보이는데 조명 장비도 만지지만 조명이 켜지면 주변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세팅하는 일들을 맡는다. 퍼스트는 인원을 맡는다면 세컨드 드은 장비를 맡는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써드와 막내는 그때그때 필요한 장비를 이동시키고 준비하는 일을 한다.
카메라 세팅이 끝나고 나면 조명 팀이 분주해지는데 조명 준비가 끝나야 슛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이네 팀은 세컨드까지만 고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촬영이 잡히면 그때그때 써드와 막내들을 섭외해야 했다. 장비를 사리는 일은 원래 써드가 맡아서 해야 하는데 나더러 빨리 일을 배워서 써드가 되라고 다들 일러 주었다.
내 위로 있는 퍼스트와 세컨드 드은 나보다 세 살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 사이였다.
대망의 나의 광고 첫날 촬영은 대부업체 광고였다. 원래는 촬영 일정이 잡히면 장비가 있는 사무실 창고로 가서 필요한 장비를 심고 탑차나 발전차를 타고 와야 하는데 첫날이라 편의를 봐주어 나는 세종이네 집으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주인공 모델이 실재하는 모델이 아니고 그래픽을 활용하는 촬영이 어서 주인공이 따로 있는 촬영은 아니었다. 촬영지는 일산에 있는 공원이었는데 공원 여기저기를 돌며 촬영을 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시키는 일들만 하며 쫓아다니기에 바빴다. 일단, 장비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조명 장비가 세팅을 마치고 나면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 나기까지 촬영은 계속 이어지는데 야외 촬영인 경우에는 바람도 불고 변수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이 조명 장비를 잡고 있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인데 이때 시간이 제일 지루했다.
필요한 장비만 내린다고 해서 다 내렸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떤 것이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갑자기 필요한 장비를 가져오기 위해 차로 뛰어가는 일이 생각보다 잦았다. 공원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필요한 장비를 가지러 장비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야 했다. 나는 아직 일을 잘 모르는 단계이기 때문에 같이 뛰어가서 무엇을 챙겨 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공부였다.
날씨가 좋아서 조명 장비를 많이 켜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이 수월했다고 다들 자평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점이 연출을 하는 감독이 미안했는지 연신 다른 스텝들에게 미안하다고 빨리 끝내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자며 독려해줬다.
자신의 능력이 자신의 인건비로 바로 이어지는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첫 촬영은 해가 지고 나서 끝이 났다. 다들 첫 촬영을 너무 쉬운 일을 했다고 말을 했는데 첫날이라 긴장을 해서 그런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의 결혼 일정도 시작되었다.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생계와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신감이 붙었다.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부모님 상견례를 해서 결혼식 날짜와 함께 식장을 구하는 일이었다. 결혼식장을 구하고 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8 년 여의 연예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사랑을 확신하며 결혼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아가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 날짜를 잡아 일을 진행하기를 바라셨다. 우리는 고민 끝에 8월 말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 비수기였기 때문에 혜택이 많아서였기도 했고 빡빡하게 잡혀 가는 촬영 일정도 날짜를 정하는 것에 일조했다.
일을 한다고 하고 나니까 세종이 입봉 시킨 형네 팀에서도 나에게 스케줄을 물어왔다.
아무래도 막내들은 차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어려 자가용이 없는 막내들은 덕소에 위치한 세종이네 사무실로 혼자 새벽까지 출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퍼스트나 세컨드과 미리 약속을 정해 태우고 오거나 그것도 안 되면 촬영장으로 출근을 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처럼 자가용을 가지고 출, 퇴근하는 막내는 많지 않았다.
두 번째 촬영도 세종이 일이었는데 사람을 구하지 못한 세종이는 예전에 같이 일을 했었던 홍선이를 불러서 인원을 채웠다. 홍선이도 군대를 제대하고 세종이를 따라서 조명 일을 몇 년 했었다. 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지 잘은 몰랐지만 그러고 나서 두 녀석의 사이는 냉각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을 하다가 감정이 상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갔다.
얼마 전까지 에어컨 수리기사 일을 하고 있던 홍선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려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면서 일을 몇 달을 쉬면서 지금 현재는 무직 상태였다. 작년에 결혼을 한 홍선이. 제수씨는 아이를 낳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이래저래 홍선이도 사는 것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촬영은 커피 전문점 광고였는데 촬영을 하는 곳이 2층이어서 탑 차 위에 스탠드를 설치해서 조명을 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언뜻 봐도 차위에 조명 장비를 올리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장비의 무게도 무게지만 높은 높이에 더 높게 스탠드를 뽑아서 장비를 올렸는데 비람이 불지 않아서 망정이지 장비도 위에서 장비를 잡고 있는 홍선이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매 한 가지였다.
커피 전문점 광고라고 해서 연예인이 나오나 기대를 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인터넷에 나가는 광고이기 때문에 비싼 연예인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촬영을 해서 거의 다 끝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장소를 이동해서 제품을 다시 찍는다는 말을 들었다. 도시락으로 주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 전문점 본사라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본사에 4층에 위치한 곳에서 추가 촬영을 진행했다. 오늘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촬영을 하는 경우를 로케 촬영이라고 하는데 이런 로케이션 촬영장에는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사람이 존재한다. 장소를 계약하고 관리하는 직업인데 로케이션 매니저랑 발전기를 하는 형은 많이 친해 보였다. 직종 특성상 대기하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같이 수다를 많이 떨어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발전기를 하는 형은 조명 막내 하고도 친한데 주로 막내들이 발전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많이 친해지지 않았지만 재밌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막내들은 짐을 옮기다가 끝이 나는 것이 로케이션 촬영이다. 오늘 같은 경우도 왁구가 부족할 것 같으니 좀 올려달라기에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촬영이 끝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해서 좋기도 했지만 허무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장갑도 구비하지 못했고 허리에 차는 클러치도 사야 하고 장갑을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는 집게도 사야 했다. 그래서 내일은 과천에 있는 조명 장비 가게에 세종이와 같이 가기로 했다. 장비를 사기 위해서다. 전 제품이 미국에서 직 수입을 하는 것이라서 생각보다 고가의 가격이었다. 그 장갑이 아니면 조명 장비를 만질 수가 없다고 하니 무조건 그 장갑을 사야 했다. 그 정도로 매우 뜨겁기 때문에 꼭 그 회사의 그 장갑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갑의 가격은 비쌌는데 환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했다. 대략 5 만 원 정도라고 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정도 쓸 수 있다고 하고 필수 장비라고 하니 당연히 사야 하는 것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시간을 보니 새벽 3시였다. 장비를 다 사리고 정리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온 시간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처럼 시간이 많이 오버가 되면 오버 차지가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오전 8시에 장소에 집결을 해서 오후 8시까지 하루 일당이 적용이 되고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인건비의 10퍼센트씩 더 주는 방식인데 오버 차지를 다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다음날 세종이와 함께 과천에 있는 조명 장비를 파는 곳에 갔다. 주현이도 동행했는데 생각보다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세종이도 찾아볼 것이 있다고 했는데 장비에 대해 물어보기만 하고 구매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장갑과 파우치가 있는 벨트 그리고 장갑을 집는 집게까지 구매하려고 했던 것들을 모두 샀다.
파우치가 필요한 이유는 집게나 테이프 따위의 것들을 휴대하기 위함인데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비까지 사고 나니 진짜 스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 구나 싶었다.
세종이 일을 나가면 퍼스트나 세컨드가 같은 팀이라고 일도 가르쳐 주고 잘 대해줘서 동료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종이의 친한 친구라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을 텐데 녀석들은 잘 대해 줬다.
처음으로 배운 일은 조명을 연결하는 선을 감아 정리하는 일이었다. 선의 종류가 다양해 처음에는 입에도 손에도 잘 적응이 안 됐다. 다른 것보다 문제는 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이었다. 선들은 오른손잡이들이 감아 버릇해서 오른손잡이들이 감는 방향대로 굽어져 있었다. 왼손잡이인 내가 감기에는 방향이 정 반대였다. 오른손으로 감아 보려 했는데 힘이 달려서 쉽지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쪽으로 다시 말던가 말려있던 대로 살살 달래가면서 마는 방법이었다. 차차 익숙해질 테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다.
제한된 전기선에 장비들을 쓰다 보니 그때그때마다 잘 정리를 하지 않으면 막상 쓰려고 할 때 장비를 찾으려 다녀야 하기 때문에 조명이 꺼지면 바로 다시 쓸 수 있도록 세팅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조명장비가 꺼지고 나면 바로바로 선부터 빼서 정리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스탠드와 모래주머니 같은 것들도 다시 쓰기 편한 위치에 모아두는 것도 중요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장비 이름이며 모양까지 생소한 것들이었기에 차근차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많이 배우기 위해서는 세트장 촬영이 좋다고들 입을 모았다. 한번 세팅을 해 놓으면 촬영을 오래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는데 그때 써드나 막내들을 교육하는 시간을 갖기 좋다는 것이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촬영장이 곧 학교이며 현장이 실습을 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