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스케줄.
68화. 스케줄.
세트장이 아닌 경우에는 전기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발전기가 꼭 필요하다. 세종이 일과 정욱이 형이라고 회사를 차린 형의 일을 도맡아 하는 발전차를 모는 형이 있었는데 나보다 세 살이 많은 형이었다. 발전차를 하는 사람들은 조명을 했던 사람들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운명 공동체다 보니 발전차를 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조명 장비를 다룰 줄 안다. 그래서 일이 바쁠 때는 일을 많이 도와주기도 하고 나 같은 막내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나도 주로 발전차를 타고 다녀서 형이랑 많이 친해졌는데 그 형이 바로 발전차 성수형이다. 김성수. 조명 일을 내가 늦게 시작을 했기에 스텝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는데 성수 형이 있어서 그나마 내가 적응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주로 발전기에 라이트와 라이트에 들어가는 램프 그리고 렌즈 같은 것들을 싣는다. 그리고 조명 탑 차에 대형 조명장치를 꼽는 스탠드가 있는데 18킬로라고 불리는 가장 큰 조명을 꼽는 스탠드를 그들은 마징가라고 불렸다. 이름만큼이나 거대하고 무거운 녀석이었는데 18킬로 조명 장비의 크기도 대박이 었지만 마징가의 무게 역시도 대박이었다.
그렇게 조명 일에 조금씩 적응해 나갈 무렵, 정욱이 형이라고 세종이를 입봉 시킨 형의 팀과의 스케줄 날이 도래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일이 조금이라도 익숙해진 다음에 정욱이 형 팀일을 나갈까 생각했었지만 목구멍도 포도청 이거니와 극복을 할 거면 빨리 극복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빠르게 수긍을 했었다.
‘그래. 배울 때 확실하게 배워보자.’
세종이 말로는 욱이 형 밑에서 일하는 녀석들이 성실하게 일을 잘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의 세 번째 촬영은 욱이 형 팀의 일로 일정이 잡혔다.
성수기로 접어드는 것인지 갑자기 촬영 일정들이 하나씩 잡히기 시작하더니 일주일에 삼사 일씩 스케줄이 잡혀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일정이 잡혔는데 다음날도 일정이 있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욱이 형 팀 일들이 스케줄로 잡히면서 그렇게 됐는데 같은 촬영이라면 잠을 조금이라도 잘 여유를 주는데 다른 촬영인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번 세 번째 촬영이 그랬다. 이틀을 꼬박 새우고 다음 일정으로 가야 했는데 잠을 자기는커녕 찜질방에서 샤워 한 번 하고 나와 다음 스케줄로 향해야 했다. 가방에 오일 치 속옷, 티셔츠 그리고 양말까지 챙기고 다녀야 불안하지 않았다.
의례 스케줄이 잡힌 당일 날 일을 나오면 새벽 4시 정도까지 사무실로 집합을 해야 한다. 우리 집이 안산이기에 사무실이 있는 덕소까지 한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전날 같은 경우 잠을 일찍 자기 위해 일부러라도 술을 마셔할 때도 많다. 맨 정신으로는 이른 시간에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벽 3시에 집에서 차를 타고 출발한다. 워낙 이른 시간이다 보니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차가 밀리는 일 또한 없기 때문에 도착 시간이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촬영 팀들이 새벽같이 움직이는 이유는 장소로 이동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일산, 용인, 파주 등지에 촬영지가 많다고 들 하는데 촬영지가 먼 거리에 위치한 경우에는 서둘러 미리 도착해서 먼저 촬영 준비를 해야 되기 때문에 차가 없는 시간대에 움직이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시간대에 도착을 한 팀원들은 커피를 한 잔씩 마사고 장비를 준비해서 차에 싣는다. 발전차에 실을 장비들은 대체로 발전기 사형과 퍼스트가 장비를 챙겨 싣고 조명 장비 차는 세컨드과 써드가 필요한 장비들이 다 실려 있는지 확인을 한다.
우리 사무실에는 조명장비차가 두 대 가 있다. 1호차는 HMI 조명장비가 세팅이 되어있는 차이고 2호차는 텅스텐 장비가 실려 있는 차이다. 1호차는 주로 로케이션 용이라면 2호차는 세트장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HMI 조명장비는 태양빛과 같은 색온도를 띄는 조명인데 태양빛을 묘사할 때 주로 쓰는 것이다. 빛은 색온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색온도가 높을수록 파란색을 띠고 색온도가 낮을수록 붉은색을 띤다. 완벽하게 하얀색이 구현되는 색온도가 5000에서 5500이기 때문에 그때그때에 맞춰서 광량과 색온도를 조절하는 장비들이 조명탑 차 안에 정리가 되어 있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색온도 조절 필름 지와 빛은 은은하게 만드는 디패션 필름 지를 붙여서 이용하는데 우리는 이걸 왁구라고 통칭한다.
조명장비와 왁구를 설치해서 고정하는 스탠드는 여러 종류가 있다. 실외에서 쓸 수 있는 것과 실내에서 쓸 수 있는 것들도 구분이 되어있다. 장비가 너무 많아서 아직 다 모르지만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이해하고 있는 정도는 이 정도다. 색온도라는 것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1호차와 2호차의 장비들이 섞이는 일이 종종 있어서 출발을 하기 전에 장비의 유무를 한 번씩 확인을 해야 한다. 서로 연락을 기민하게 취해서 장비 소재의 유무와 이동 상황을 대충은 파악을 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알리기를 소홀이 했다가는 막상 촬영을 나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확인은 필수 중에 필수다. 그래서 이 역할을 하는 써드가 제일 욕을 많이 먹게 된다.
촬영이 끝나고 장비의 수를 헤아리고 정리를 하는 것이 써드이기 때문이다. 퍼스트와 세컨드 드은 바라시하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그들은 바라시에 매진하고 홀로 외롭게 조명탑 차 안의 장비의 숫자를 하나하나 헤아리며 써드는 외롭게 정리를 해야 한다. 막내들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바라시를 돕기 바쁘고 제일 막내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선을 정리하는 일만 해도 된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이 모든 일을 다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꼬박 이틀을 밤을 새우고 촬영을 해야 했던 세 번째 촬영은 오렌지 주스 촬영이었다. 이때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사건이 하나 터졌다. HMI 조명 램프를 만질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한다. 조명장비가 켜졌을 때 엄청난 양의 빛과 열이 발생하는데 만약 지문 같은 것들이 램프에 묻어있는 경우가 생긴다면 램프는 그 저항 때문에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18킬로 램프는 램프 가격만 500 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장비이기 때문에 램프는 아무나 만지지도 못한다. 퍼스트와 세컨드가 매번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는데 오늘 갑자기 램프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보험을 들어놨다고 해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조명이 꺼져버린 관계로 촬영은 지연되기에 이르렀다. 두 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장비 대여 업체를 통해 램프를 받아 다시 조명을 킬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연됐는데도 관록이 있는 배우는 이점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촬영을 할 때도 감독 머리 위에 있는 사람처럼 촬영 내내 그는 그의 카리스마로 현장을 이끌었다.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촬영은 그 배우가 너무 잘해줘서 일찍 끝날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주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막걸리를 두 병 사 가지고 치킨도 한 마리 튀기고 오랜만에 티브이를 보면서 여유 좀 부려봐야겠는 생각을 하니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 결혼식 준비는 주현이의 몫이었다. 한복 대여며 예식장 선정까지 주현이는 면밀하게 살폈다. 결정을 내릴 때는 나와의 상의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예식장을 고르는 데 있어서 주차와 식사를 주안점으로 보았다. 가까운 곳에서 오시는 분들은 대중교통과 가까워야 했고 멀리서 차를 가지고 오시더라도 주차장이 쾌적한지를 보았다. 식사도 양가 부모님들은 모시고 한 번씩 시식을 하러 가서 마음에 드시는지도 따져 보았다. 일하는 틈틈이 진행을 하다 보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은 도통 나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는 와중에 공포의 촬영 일정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