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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엄버 Sep 16. 2022

66화. 세종이.

66화. 세종이

66화. 세종이.


몇 달이 지나 봄이 성큼 다가왔을 무렵, 세종이와 연락이 되었다. 녀석은 얼마 전에 심근경색이 와서 죽을 뻔했다는 말을 했다. 덕분에 담배를 끊게 됐다며 말을 이어 나가는데 조명감독을 하면서 밤샘 촬영이 있는 날이면 서너 갑씩 담배를 피웠다고 말을 했다.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밤을 세서 안 그래도 지친 몸에 그렇게 담배까지 피워 댔으니 몸이 정상일리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났을 상황이었다고 했다. 

 “ 별일 없으면 한 번 안산으로 넘어와. 몸도 많이 축났을 텐데. 몸보신 한 번 하고 가라.”

 그러고 보니 작년 작은 누나 결혼식 때 보고 한 번도 세종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벽화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바쁘게 살았었구나 싶었다. 

 “ 내일 촬영이 있어서 시간 되면 연락하고 갈게.”

 세종이 녀석은 조명감독이 되면서 차를 샀다. 평생을 뚜벅이로 살아온 녀석이었는데 기동력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직업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새 차를 샀다고 자랑을 하는 녀석을 한 번 만나야겠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한다던 전시는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청담동 갤러리는 그림이 돈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에서 건축 사업을 한다며 이사도 건물을 지어 분양을 하는 사람을 새로 영입한다고 했다. 눈부시게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돈 벌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어떠한 성과도 내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키핑에 놨던 그림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집에 둘 곳이 없어 시간을 점점 미루게 되었다. 

 안양 선생님 화실을 중심으로 같이 단체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스페인에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선생님 친구분이 기획을 하는 일이었는데 안양시민신문사가 주관을 하는 전시였다. 전시가 조인되는 과정에서 신문사 임원들, 기자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어서 몇 차례 술을 마시게 되었다. 

 “ 그래서 안양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안산으로 이사를 하게 된 계기가 뭡니까?”

 술이 많이 취한 기자가 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그래? 내가 안산까지 가게 된 이유가 뭐였지? 어쩌다가 이사를 하게 됐을까?’

 술에 취한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글쎄요? 더 이상 월세에 살 수도 없었고 집같이 쾌적한 환경도 필요했고요. 정확한 이유라면 다 돈 때문이겠죠.”

 이렇게 말을 하기는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더 이상 주현이를 고생시킬 수도 없었다. 그 고생이라는 것도 달콤한 성공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림에 대한 기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제2의 한국의 미술시장의 르네상스라는 시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혼식도 올려야 하고 가장으로 주현이와의 생활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내 어깨에 짓누르고 있었다.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가? 아니면 돈을 작심하고 벌 것인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기로에 서있었다.

 “ 가슴이 아프네요. 주민 씨 같이 훌륭한 화가가 안양 사람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

 술이 취한 지역신문 기자님은 원래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니 과거의 그는 글 작가로서 삶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 인생을 뼈 아파하는 것은 아마도 자기 같아서였을 것이다. 

 “ 민망하게 계속 왜 그러세요?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벽화 일을 그만둔 지 삼 개월. 나는 무슨 일이든지 간에 시작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림보다는 돈을 벌어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 시간이 늦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술자리는 안양이 었기에 버스가 끊기기 전에 먼저 일어나야 했다. 영길이 녀석도 동행을 해서 길 동무가 있었다. 일찍 서둘러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수가 있었다. 화가들끼리 잘 지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하는 전시였기에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잦은 모임은 나를 피곤하게 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세종이가 오늘 저녁에 온다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벽화일이 끝나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질리게 그림을 그려온 것도 문제였지만 다른 관심사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요리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리 채널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보다가 저녁때 요리를 해 먹는 일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요리 채널을 보다가 보면 여러 나라의 요리법이 나오는데 다른 것들은 다 해볼 수 있었지만 해산물 요리는 피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이 싫은 것도 있지만 나나 주현이나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여러모로 한 동안 연구한 음식들을 세종이에게 맛 보여주고 싶었는데 세종이는 여자 친구도 데리고 가니 어디 대부도 같은 곳에 가서 조개구이나 먹자고 했다. 차를 두 대를 끌고 갈 필요가 없으니 그냥 세종이 차로 움직이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 그리면서 가난하기만 했던 우리는 제대로 된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어디 휴양지 같은 곳으로 여행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글퍼지는 현실을 자각히고 나니 씁쓸했다. 

 세종이 녀석은 온다는 시간에 맞추어서 우리 동네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 야. 차 좋다. 새 거로 뽑은 거라고 했지?”

 오던 길에 세차를 했는지 차는 금방 공장에서 나온 차처럼 광택이 흘렀다. 

 “ 무슨.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연비 좋아서 산거야. 어서 타.”

 차에서 내리면서 꺼낸 말이었다. 

 “ 제수씨 소개 좀 시켜줘야지.”

 세종이 여자 친구는 차에서 내리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 안녕하세요. 세종이 오빠 여자 친구 김효정이라고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들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키가 170 정도 되어 보이는 세종이 여자 친구는 날씬한 몸이었는데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가 않았다. 

 “ 그래요. 반가워요. 유주민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여자 친구 강주현. 언니겠네요.”

 전에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보다 세 살 어린 친구라고 설명을 했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다. 

 “ 안녕하세요. 강주현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어색한 인사의 시간은 흘러갔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세종이가 운전을 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녀석의 운전이 생각보다 거칠어서 더욱 놀랐다. 평소에 행동이 느리고 느긋한 성격이었기에 더욱 놀라운 지점이었다.   

 “ 세종아. 브레이크 밟을 때 조금만 천천히 밟아줘. 주현이 놀란다.”

 평소에 내가 운전을 하는 차만 주로 타봤던 주현이는 운전 중에 조금이라도 속도를 내거나 급 브레이크를 밟으면 많이 놀라 하기 때문에 지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그래? 나 정도면 스마트한 거 아닌가?”

 본인의 운전이 난폭하다는 것을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듣는 눈치였다. 세종이의 난폭운전 때문에 우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 가까운 조개구이 집으로 가자.”

 나는 원래 조개구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조개구이와 술을 마시면 속이 좋지 않아 구토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조개구이는 굽기 전에는 양이 많아 보이지만 먹다 보면 그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밥 같은 탄수화물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술과 함께 먹고 나서 속이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나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조개구이 먹고 싶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먹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 저기 좋겠다. 모퉁이에 있는 집.”

 세종이가 가자고 한 집은 유난히 간판의 빛이 밝은 곳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 오늘은 여가가 낙점이다. 가게에 들어서 보니 가게 주인은 오픈을 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장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 대부도에 왔으니 조개구이랑 바지락 칼국수 정도는 먹고 가야 되지 않겠어? 사장님 조개구이 中자하고 바지락 칼국수 2 인분 주세요.”

 대부도에 자주 와 봤는지 주문을 하는 모습이 좀 다녀본 것 같은 세종이었다. 

 “ 여기 자주 다녀본 주문 솜씬데.”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세종인데 의아했다. 

 “ 이 근처 촬영하러 자주 오는데 이동하느라고 매번 칼국수만 먹어봤지. 조개구이 한 번 정말 먹어 보고 싶었다.”

 촬영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다 보니 칼국수만 먹어봤다는 녀석은 원래 예전부터 조개구이를 좋아했다. 녀석의 취향이어서 예전부터 의견을 존중을 해줘서 종종 같이 먹었었는데 이상하게도 조개랑 소주를 먹고 나면 나는 속이 좋지 않아 가게를 나오자마자 구토를 한 경험까지 있었다.  

 세종이가 그렇게 기다리던 조개 구이가 나왔다. 저마다의 시간이 맞춰 잘 익었다고 입을 척 척 열어 보인다. 가만히 안에 들어 있을 때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녀석들은 입을 열어 보이며 잘 익은 살을 보이며 내어준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손질을 하며 주현이 앞 접시에 놓아준다.  

 “ 조개가 익어가니까 이제 술 한 잔 해야지?”

 잘 익은 조개들을 먹기 좋게 손질을 해놓은 세종이 녀석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신다. 술이 먹고 싶은 건지 조개가 먹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신이 나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연애를 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나 보이는 녀석이다. 

 익어가는 조개와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가 많이 익어가고 있었다.

 “ 그래서 지금 벽화 일 안 하고 쉬고 있다는 거야?”

 최근에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를 설명하는 와중에 세종이가 말했다. 

 “ 물류로는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 무슨 염치로 돌아가냐. 다른 거 알아봐야지. 원래 벽화일 잘되면 동생들하고 같이 하려고 했었는데.”

 주현이도 다시 물류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면 어떠냐고 물어 오기도 했지만 이제 그 정도 벌이로는 힘들다고 더 벌어야 한다고 말해 줬었다.  

 “ 너 하루 일당이 얼마라고 했지?”

 감독으로 입봉 한 세종이는 다른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일당을 받고 있다고 했다. 광고 조명일은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촬영 일정이 잡히면 일을 하는 것이어서 언제 어떻게 일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 나 지금은 90 정도 받고 있지. 감독치 고는 적게 받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나 입봉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난 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예전보다 얼굴은 수척해 보이는 세종이었지만 몸은 운동으로 다져져서 탄탄해 보였다.

 “ 밤새서 일하려면 체력도 좋아야 돼.”

 연신 조개를 먹는 녀석은 예전보다 음식을 더 잘 먹는 것처럼 보였다. 

 “ 그나저나 너는 어떻게 입봉 하게 된 거야? 조금 빠른 거 같기도 해 보이는데.”

 갑자기 입봉을 했다는 녀석의 퍼스트 시절을 떠올려보면 감독 입봉은 불가능해 보였다. 모시고 있는 감독이 자기를 입봉 시켜줘야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조명 감독은 세종이를 입봉 시킬 생각이 별로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 예전에 내 위로 있던 형이 있었는데 이 형이 회사를 차리면서 일이 많아지다 보니까 나를 불러서 쓰게 된 거야. 잘 나가는 카메라 감독 5명이 투자를 같이 한 화사라 일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게 된 거지. 그 형은 한 달에 몇 천씩 벌어.”

 말을 들은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벌 길래 한 달에 몇 천 만원씩 번다는 말인가? 

 “ 며칠씩 일을 하는데 그렇게 벌 수 있지?”

 세종이 말로는 한 달에 열흘 이상 일하면 굉장히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 그 형은 한 달에 20일 넘게 일할 걸. 본인이 정 못할 것 같으면 나한테 넘기는 일도 많아.” 

  하긴 같이 일하는 카메라 감독이 5명이나 되니 그것도 업계 탑 10위 안에 들어가는 감독들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하는 걸까?    

 “ 네가 하는 일하면서 그림도 그릴 수 있을까?”

 주어가 없는 질문을 해봤다. 예전에 막내 인건비가 10만 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얼마나 주는지 궁금했다. 

 “ 요즘 막내 인건비가 12 만 원 정도 한다고 하는 거 같던데? 왜? 조명일 해볼 생각 있어?”

   그 사이 막내의 일당이 2 만 원 정도 오른 거 같았다. 한 달에 열흘 정도 일을 하면 20일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닌 거 같아서. 올해 주현이랑 결혼도 해야 하는데.” 

  예전부터 세종이가 하는 일을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일을 하면 돈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고민만 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적어도 석 달은 기다려야 입금이 된다는 말에 그때그때마다 포기를 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로부터 나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석 달은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으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힘들 텐데. 하긴 막일도 한 놈인데. 생각 있으면 내가 그 형한테 말해볼게.”

 “ 일단은, 너 일만 해보면 안 될까? 일 좀 배우고 나서 그 형 일도 같이 하는 걸로 하고.”

 “ 지금은 내가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는 네가 생활이 안 될 거야. 같이 병행해야 할 거야. 우리 팀도 막내가 시급했는데. 잘 됐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었는데 세종이를 만나서 문제가 해결이 될 줄은 몰랐다. 써드, 세컨드까지만 가도 돈을 어느 정도 벌 수 있다고 하니 열심히 일을 배워서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이를 입봉 시켰다는 그 형은 한 달에 20일 정도 일을 한다고 하니 그 형은 초인 같은 힘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2차로 노래방을 가자는 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슨 초면에 노래방이냐며 다음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는 각자 여관방을 잡아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 되어 우리는 우리 동네로 자리를 옮겨 해장을 하고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고 세민이 퍼스트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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