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홍대 앞 미술관.
65화. 홍대 앞 미술관.
벽화 일을 하는 선생님들은 우리보다 적게는 스무 살 가깝게 많은 분들부터 부모님 연배 정도 되는 분들까지 계셨다. 평생을 상업 그림을 그려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풍경화를 잘하시는 분들은 풍경을 위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인물화를 잘하는 분들은 인물화 위주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시다 페이를 받는 만큼 그림을 잡고 완성을 하기보다 형태를 잡고 초벌 작업을 하는 일들을 많이 시키셨다. 총대를 메고 팀장이라며 일을 배분해주며 사무실과의 일정도 조율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처음부터 우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벽화 작업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벽에 프라즈마를 발라 물감을 입혀나가야 했는데 나에게는 화면의 느낌이 너무나 생소했다. 화면이 미끄러워서 내가 그림을 그리던 기법과 잘 맞지 않았다. 이런대서 경험의 일천함이 들어 날줄은 생각지도 못한 국면이었다. 반면, 평생 그림을 그려 오신 분들은 역시 달랐다. 본인의 할당량을 무리 없이 소화해 주고 계셨다. 미대를 나오신 분들부터 극장 간판을 그렸던 분들. 삼각지 화가까지 본 직업들은 너무도 다양했다. 이분들 중에도 요즘 유행하는 트릭아트를 그리시느라고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분들도 계셨다. 이런 작화를 배워서 나더러 팀장을 해보라는데 정작 진짜 팀을 짜서 들어오신 팀장님은 나와 주현이를 눈엣 가시같이 여겼다. 우리를 대할 때 마치 사무실에서 보낸 세작을 대하는 듯했고 우리는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벽화 작업을 하는 동안 제일 좋았던 일은 비싼 재료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언감생심 홀베인이라는 유화물감은 그렇게 맘껏 쓴 적도 사본적도 없는 나였다. 무엇보다 물감은 발색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한 가지 좋은 것을 배웠는데 건조제를 화이트에 섞어 쓰는 요령이었다. 작화를 빨리 해야 하기 때문에 쓸 수밖에 없는 보조제였는데 여기 오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물감을 섞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이트가 많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시카 티브라는 건조제를 미리 징크 화이트에 섞어놓으면 물감도 부드럽게 녹아 있으면서 빨리 건조되는 물감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페트롤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테레핀을 주로 썼었는데 테레핀은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이었는데 페트롤은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오래 냄새를 맡아도 후각이 피곤해지지도 않았다.
팀장님의 횡포는 계속되었던 반면에 다른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팀장님이야 본격적으로 우리를 배격하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다른 분들은 본인들 작업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는 있었다.
팀장님은 본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팀원들의 독려하고 재료 준비를 도와주는 일을 주로 하셨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본인이 그려야 하는 그림들을 잘 그려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대표님은 팀장님의 자질을 의심하게 됐고 그럴수록 팀장님은 우리를 더 배격했다. 본인이 시켜서 그린 그림을 다음 날 와보면 싹 지워 놓는 일은 다반사였다. 화가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다. 지난하고 어려운 그림들을 시켜놓고 이제 좀 그려볼 만하면 다른 선생님들을 시켜서 그림을 마무리하게 했다.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던 어느 시점 정확하게 석 달 정도 지났을 시점이었는데 참다 참지 못한 주현이가 대표님에게 찾아가 우리가 할 일은 더 이상 없으니 그만 나오겠다고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팀장님의 심한 처사가 부른 일이었다.
밥그릇을 빼앗기기 싫어서 무리한 일을 저지른 팀장님도 그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삼 개월 동안 지켜본 결과 가장 그림을 잘 그리시면서 많이 그리신 분이 팀을 다시 꾸려서 제주도 작업이 시작할 거라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팀이 되지 못한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혹독했던 따돌림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다음 일을 찾아야만 했다. 대표님이 처음에 제안을 하셨던 꿈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일은 우리가 예측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대표님과는 성격이 다른 부채의식을 서로 나누어 짊어진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해를 넘겨 겨울이 한창이었다. 삼 개월 동안 열심히 일만 했던지라 돈을 쓸 시간이 없어 통장의 잔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을 잘 버텨내고 봄을 기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