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결혼.

79화. 결혼.

by 번트엄버

79화. 결혼.


우리는 약속한 날 포털아트를 다녀왔다. 그림도 가지고 가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작가 노트에 대한 설명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무라는 사람이 계속 거슬렸다. 오랜 시간 경매로 작품을 팔아 오면서 수 백 명의 작가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지금까지 만난 미술계 인사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젊다는 이유로 하대를 하는 것도 너무 기분이 나빴다. 오늘 내가 느낀 모욕감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미음 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분에 잠깐 예민해졌지만 이내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포털에 작품이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제 주현이와 결혼식을 하는 날이다. 집에 가서 축가를 연습해야 한다. 특이하지만 나는 내 결혼식 축가를 내가 부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주현이와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며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을 올리기 전날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 결혼식 날 컨디션을 의식해서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결혼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았다.


시작부터 정신이 없었던 결혼식은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식순대로 급하게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끝이 나 버렸다. 모든 상황을 내가 책임지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많이 불려 다니다 보니 하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도 하나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축가를 불러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축가의 제목은 [다행이다]였다. 내 진심을 담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지만 가지고 시작한 작가 생활을 언제나 지지해주고 내편이 되어준 그녀에게 바치기에 딱 맞는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청중들을 바라봤는데 여성분들이 하나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내 노래가 감동적이었나? 아니면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눈물인가?'

그녀들의 마음까지 알 수는 없었다.

나의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의 노래를 경청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과 인생을 위태롭게 보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도 같이 가보 자라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해보았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친구들이 너무 많아 피로연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신혼여행 일정도 내일 당장 없으니 편하게 안양시내에서 술을 한 잔해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피로연은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과 조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술은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다. 내일모레 1박 2일이라도 어디로든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신기하고 어수선했던 결혼식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마무리가 되어갔다.


얼마 전부터 영길이와 같이 일을 다니고 있다. 영길이의 합류는 갑자기 이루어졌다. 욱이 형 막내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써드 역시 부상을 핑계로 일을 그만두는 일이 생긴 것이었다. 운수업을 하시고 있던 욱이 형 막내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전부 산다고 했는데 주식도 모르는 녀석이 터무니없는 선택을 한다고 모두가 만류했지만 녀석은 단호했다.

팀원들의 갑작스러운 이탈이 영길이의 팀 합류를 종용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우리 팀도 상희가 다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상희 친구였던 쎄컨 녀석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 갑자기 생겼다. 동시에 두 팀 다 팀원이 이탈을 하면서 공백이 커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영길이가 팀에 들어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악재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탈은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악재였다. 일을 시작한 지 사 개월이 조금 넘은 막내가 막내 페이를 받으며 일도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마당에 감당 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황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벅찬 상황들은 막무가내로 연출됐다.

우리 팀을 책임지는 퍼스트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것은 무모할 정도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며칠 그렇게 외부에서 불러온 퍼스트가 팀을 꾸려 촬영을 해야 했는데 참으로 어려웠다. 우리 팀 장비를 아는 사람은 나와 발전차 기사 형 밖에 없다 보니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장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모든 것들을 내가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은 나를 급 속도로 성장시켰다.

다행히 퍼스트의 공백은 금방 매워졌다. 하지만 사람을 영입하긴 했지만 세종이와 잘 맞지 않아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일단, 큰 불은 끈 거 같긴 했지만 앞길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들은 줄어드는 듯 보였다.

야속하게도 또 다른 악재가 생겼으니 그것은 사무실 근처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찜질방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된 것이었다. 일이 늦게 끝나면 찜질방에서 자는 것이 그나마 시간을 버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꾸역꾸역 퇴근을 해야 되는 상황으로 내 몰린 것이었다.

그렇게 피로를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큰 교통사고까지 발생했다. 영길이와 나 둘 다 다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동안 나의 발이 되어준 차를 폐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나의 두 번째 차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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