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추락.

80화. 추락.

by 번트엄버

80화. 추락.


한 번 발생한 악재는 또 다른 악재로 이어졌다.

영길이가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됐을 때 욱이 형 일을 같이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강력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서울 야경을 배경으로 사무실을 찍는 광고였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한 고층 건물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제법 고층 건물이었는데 촬영은 밤 씬을 찍는 것이어서 저녁때쯤 집결지로 이동하여 짐을 옮기고 있었다. 촬영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장비를 계속 옮기고 있었다. 승강기로 옮기는 일이어서 짐을 옮기는 일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몇 씬 정도 찍었을까? 장비를 많이 옮겨야 하는 상황이어서 팀원 전부가 짐을 옮기려고 차로 내려가서 승강기에 짐을 잔뜩 실었다. 어느 스텝인지 모를 여자 스텝 두 사람도 우리와 같이 승강기에 탑승을 했고 승강기는 이내 올라가기 시작했다.

촬영을 하고 있던 층은 23층이었는데 늦은 시간이라 우리 외에는 승강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던 중 승강기가 이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8층부터 올라가지 못하고 주춤 되더니 한층 두층 갑자기 떨어지듯이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주춤거리던 승강기는 갑자기 자유낙하 속도로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다리는 맥없이 접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린 후 승강기는 떨어지는 것을 멈췄다. 해당 층을 보니 지하 4층이었다. 한 개 층만 더 떨어졌으면 우리는 맨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것이었는데 다행히 한 층을 남겨두고 승강기는 낙하를 멈췄다. 불행 중에 천운이 따라 주었다.

영길이가 승강기 비상 통화로 담당자와 짧게 통화를 했다. 백화점에서 일할 때 종종 승강기에 갇히는 일을 많이 겪어본 영길이는 대처가 누구보다 빨랐다. 10 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구조될 수 있었고 옆 승강기로 장비를 해당 층에 옮길 수 있었다.

촬영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승강기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연출팀과 감독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감독들과 제작자들은 사건을 시 덥지 않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촬영 일정에 맞춰서 타이트하게 촬영을 하다 보니 우리의 일은 뒷전이었다. 승강기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서 누구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아서였을까? 사태의 심각성을 감독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같이 타고 있던 여자 스텝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호소하며 정신 병원행을 요구했고 그제 서야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연출도 그제 서야 승강기에 탑승을 했던 스텝들을 수소문해 이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공감과 대처가 너무 늦었다. 우리는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더욱이 팀을 대표하는 욱이 형의 행동에 대한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죽어 나가야만 그 위태로운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가를 알까 싶었다.

어떻게 촬영이 되어 가는지 관심조차 가지 않았던 나머지 촬영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는 일을 나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영길이 녀석도 많이 놀랐는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집에 돌아갔다.


그동안 영길이는 포털에서 그림이 잘 팔려 기본적인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나는 들어오는 일을 모두 거절하며 그림을 그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잡혀있던 전시 준비에도 매진했다. 작가 공모도 도전하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을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뜻하는 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포털에서는 그림을 하나도 팔지 못했고 작업과 병행이 가능한 직업인 줄 알았던 조명일은 갈수록 나와의 인연과 거리가 멀어져 갔으며 그동안 벌어놨던 돈도 이제는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전시와 공모를 하며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작품을 해야 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다. 방황이라는 것을 하고 있던 것일까? 내가 서있는 곳에서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며 해를 넘기면서 봄이 올 때까지 낮춰진 몸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작은 누나가 애기 엄마들끼리 하는 커뮤니티에서 봤다며 알바 자리가 하나 있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 주었다. 그림과 관련된 일이라고 하며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모한 건에도 통과가 됐다는 연락도 받았다. 기획자를 만나 계획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산후 조리원에 입원한 신생아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일이었다. 기획자에게 10:1의 경쟁률이 있었다는 후문을 들을 수 있었다. 기획을 한 사람의 고모가 서울 강남에서 가장 유명한 산후 조리원을 한다고 했다. 일주일 입소하는데 800 만원이라는 거금을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 입소하는 신생아들의 초상화를 옵션 사항으로 앞으로 일을 추진하겠다는 사업이었다.

작은 누나가 준 전화번호도 통화를 해 보았다. 갑자기 불어난 일감 때문에 알바가 많이 필요한데 화가라고 하니까 엄청 반기는 눈치였다. 나무로 간판을 만드는 업체라고 소개를 하며 주소를 일러주었는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바로 와서 일을 해줄 수 있겠냐는 말에 바로 가서 사람을 만났다.

작년에 설악산을 등산하던 사람이 철재 간판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국립공원의 간판을 모두 나무로 바꾸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갑자기 불어난 일감에 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큰 국립공원부터 동네에 위치한 작은 공원 까지라니 그 물량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 회사도 그러한 경쟁에 뛰어든 신생 회사였다. 자신을 군포시 전 예총 회장이라고 소개한 대표님은 인자한 표정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은 나무 간판에 색을 입히는 일이었다. 글씨부터 로고, 그림에 이르기까지 페인트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기계가 아니라 일일이 사람이 작업을 해야 하는 공정이라는 사실에 나는 내심 놀랐다. 주로 거래를 하는 대상이 지자체여서 선정만 되면 일감은 굉장히 많아 보이는 일이었다. 이번 일도 용인시에서 의뢰한 것이었는데 금연 간판을 공원 곳곳에 설치를 해야 하는 것이어서 설치를 하는 직원들과 공장에서 제작과 페인팅을 하는 직원들로 나뉘어 일을 하고 있었다. 신생 업체다 보니 아직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두서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며 열흘 정도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갑자기 성수형에게 전화가 왔다. 알바 일을 마칠 무렵이었는데 전화를 받아보니 당뇨로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형은 아버지의 병원비로 거의 번 돈의 대부분을 소진했는데 형은 그것보다도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괴로워했었다. 안 가 볼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영길이와 주현이와 함께 문상을 하러 길을 떠났다. 가는 길에 목동을 지나가는데 영길이가 말을 했다.

“ 어? 우리 누나 병원이네요. 이 길을 지나가게 될 줄이야.”

영길이는 조명 일을 그만두면서 누나의 간병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 했었다. 유방암에 걸린 누나가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누나의 간병을 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고 했다.

“ 여기 다니시는구나. 이대병원이네.”

나는 목동에 이대병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가까운 가족이 중병에 걸리는 기분이란 어떤 기분일까? 영길이도 성수형도 나름 많이 맘고생을 했고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졌다.

안산에서 출발을 하여 한 시간 반을 이동하고 나서야 빈소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성수형뿐이었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 손님이 아닐까 싶었다. 형은 이제 몇 시간 있으면 발인이라고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 왔다. 그렇게 진지한 표정의 형은 처음이었다. 맨날 농담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영화판에서 만나 사귀게 된 형의 여자 친구와도 인사를 나눴다. 조명 일을 그만두고 형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는 아닌 것 같았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밤을 새운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저런 상념들로 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떤 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살 것이며 내가 하고자 하는 꿈을 지킬 것인가?

발전기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도 돌아가신 형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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