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매일 우유.
81화. 매일 우유.
그림도 그림이지만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봄에 공모한 전속작가 공모에 선정이 된 나는 안양 예술 공원에 있는 갤러리 대표와 면담을 했었다. 갤러리 대표는 전속 계약을 맺고 갤러리에 위치한 작업실에 1년간 상주하면서 작품을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인터넷으로 그림도 팔고 있고 대표가 광고 쪽 일을 오래 한 사람이라 방송국에 아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드라마 협찬 같은 일은 쉬운 일이라고 했다.
광고 대행사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대표는 그야말로 장사꾼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중하게 전속 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 당시 기가 막힌 장사꾼과 일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나와 내 작품에 반한 사람이었지 장사꾼은 아니었다. 이미 청담동 화랑과 포털아트를 경함 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돈만 너무 밝히는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하는 일은 역시 나에게는 돈만 버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며 나의 성안으로 아무나 들이는 일은 이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검열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주현이와 건전하게 작품 활동을 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돈 또한 병행하며 벌어야 했다. 갤러리에 서식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를 던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새롭게 찾아온 기회를 나는 타인에게 넘겨주었다.
산후 조리원에서 의뢰해서 신생아를 그리기로 한 일도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산후 조리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잘못 쓰는 바람에 신생아와 산모가 죽는 사건이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이 일이 벌어진 곳이 바로 나와 같이 일을 하려 했던 산후 조리원이었다.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산후 조리원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모든 상황은 그렇게 예측하지 못하는 국면으로 접어 들어갔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작업만 한다는 사실을 본가에도 알려지게 되고 가족들 대부분 내 걱정을 하고 있을 무렵, 작은 매형에게 연락이 왔다. 오뚜기 영업 사원으로 일을 하고 있던 작은 매형이 자주 만나는 업자 중에 매일유업 영업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급하게 직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면접이라도 보겠냐는 것이었다. 수중에 모아둔 돈이 거의 소진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나는 찬 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갑자기 면접을 보게 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하는 주된 업무는 경기도 시흥을 중심으로 우유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주로 도매업자들에게 대량의 물건을 값싸게 나온 제품들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며 배달하는 일을 하였고 나는 그전에 일을 하던 직원의 거래처를 돌며 영업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일단, 태어나서 영업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먼저 앞선 거는 사실이다.
일을 시작하고 삼일 정도는 사장님과 같이 거래처를 돌며 길을 익히고 무슨 물건들을 넣어야 하는지를 눈에 익혔다. 싣고 다니는 물건이 너무 다양해서 며칠 사이에 전부를 익히는 것은 무리였다. 다니는 길도 초행길이어서 핸드폰 내비게이션 어플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입력을 해야 했다. 그나마 스마트 폰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 하면 서울 우유가 단연 동종 업종에서 으뜸이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었던 우유도 대부분 서울 우유였고 군대에서 지급하던 우유 역시 서울 우유였다. 그렇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서울 우유를 기본으로 여긴다. 콜라의 기준이 코카 콜라고 사이다의 기준이 칠성 사이다인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그 맛에 각인이 되어 길들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서울 우유가 아닌 다른 우유업체들은 종합이라는 묘책으로 영업을 해 왔다. 작은 슈퍼 나 큰 마트 상관없이 유 제품은 서울 우유제품과 타사 제품으로 나뉜다. 마트에 유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서울 우유와 경쟁을 하려면 다른 제품 사들을 종합으로 취급해야지만 그나마 경쟁을 할 수 있다. 서울 우유는 시유 제품이 가장 큰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시유는 흰 우유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남양이 뒤를 따르는데 남양은 불가리스라는 제품이 주력 제품이고 시유 제품도 서울 우유를 뒤 따르고 있는 2위 업체이다. 프렌치 카페라는 커피 제품도 인기다. 그리고 빙그레는 업계 3위인데 바나나맛 우유와 요플레가 주로 잘 팔리는 간판 제품이다. 그리고 만년 4위 업체인 매일은 브랜드도 잘 나가는 제품도 별로 없는 회사이다. 그런 매일에 내가 입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조명 일을 할 때 추가 촬영 이라며 제품만 촬영을 했던 적이 한번 있었는데 무슨 화장품 같은 것을 찍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촬영이 끝나고서야 알게 됐는데 매일 유업에서 만든 새로 나온 요구르트 제품이라고 해서 놀란 적이 한 번 있었다. 디자인 콘셉트이나 느낌이 화장품 같아서 놀랐던 것이다. 그렇다. 잘 못 만드는 광고와 마케팅도 회사가 4위에 머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품은 잘 만들어 놓고 홍보를 잘 못한다. 그래서 좋은 제품도 많지만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