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고기 파티.
78화. 고기 파티.
포털아트에서는 먼저 우리들 만나 보지 않았는데 방문할 때 그림을 바로 들고 오라고 해서 일의 진전 속도가 빨랐다. 뭔가 모르게 너무 서두르는 모습으로 보였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미술작품을 사는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줄어드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보니 포털아트 입장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싶었었는지 우리들을 무조건 수용하려는 모습으로 읽혔다.
주현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영길이와 저녁 약속을 하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간 쌓인 피로 물질을 풀어내야 저녁때 고기 파티를 하며 술도 한 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내 몸은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시간이나 잔 걸까? 허리가 아픈 것 같은 느낌에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오랜 시간 잠을 자서인지 갈증이 몸을 깨웠는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거의 넘어갔는지 온 집안은 어두웠다.
“ 일어났네? 몸 상태는 어때?”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던 주현이가 내가 방에서 나오자 읽던 책을 덮고 나에게 다가왔다.
“ 찌뿌둥하지. 그래도 집에서 잠자니까 좋다. 역시 집에 최고야.”
얼마나 집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찜질방에서 청해야 하는 잠은 언제나 선잠이었다. 잦은 소음과 인기척 때문에 깊은 잠을 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영길이랑은 약속했어? 나는 지금 배 많이 고픈데.”
아까 나랑 밥을 먹고 나서 주현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 내가 전화하면 바로 오기로 했어. 올 때 술까지 사 오라고 해야겠다.”
바로 전화를 건다. 녀석도 때를 기다렸는지 전화를 빨리 받았다. 우리 집에서 약 100 미터 거리에 살고 있는 녀석이다. 집에서 나와 마트에 들러서 술과 음료수를 사 온다고 해도 10 분이면 족하는 거리다.
“ 그래. 오면서 술 하고 음료수 사 와.”
우리 집에 올 때 막걸리를 사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던 지라 얼마큼 사 오라고 말을 잊진 않았다. 안양에서 지낼 때부터 영길이와 축구 오락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축구 오락은 유일한 우리의 놀이였다. 물론, 막걸리도 한 잔 하면서 말이다.
“ 네. 형. 금방 넘어 갈게요.”
녀석이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실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세팅을 한다. 작업실이 생기면서 거실은 거실의 기능을 되찾았다. 티브이도 생겨 이제는 집에서 티브이도 볼 수 있다.
“ 그래. 오랜만에 위장에 기름칠 좀 하자.”
싱거운 농담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어보니 주현이가 이미 거의 다 세팅을 해놓고 있었다. 신문지를 깔고 다리를 펴지 않은 상을 중간에 놓는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상다리를 펴지 않고 놓으면 가스버너를 상에 올려놓고 바닥에 앉아서 고기를 굽기에 적당한 높이가 된다.
“ 거의 다 해놨네. 밥은 좀 있나?”
비닐에 들어 있던 고기를 꺼내어 본다. 우삼겹으로 보이는 고기하고 삼겹살이 대부분이었다. 내심 구이용 소고기를 기대했었는데 약간 아쉬웠다.
밥을 적당히 퍼서 상에 놓고 고기를 구우려는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영길이 녀석이 그 사이 도착한 모양이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어준다.
“ 얼마만 이에요. 형. 잘 지내셨어요?”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녀석이 나를 반긴다.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어렵게 시간을 내야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 그러게. 눈 코 뜰 세 없이 바빴지. 어서 들어와.”
'오일 간에 죽음의 일정에서 살아 돌아왔다. 녀석아.'
“ 근데. 손에 들고 온 것은 뭐야?”
마트 봉지에 들어있는 것은 막걸리에 음료수로 보였는데 반대 손에 들려있는 까만 봉투는 뭐가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 지난번에 촌에 갔다가 챙겨 온 건데 좀 드셔 보세요.”
쑥스럽게 내미는 손에 들려있던 것은 옥수수였다. 예전에는 소작을 주던 땅을 더 이상 일굴 사람이 없어지자 영길이 어머니는 늙은 몸을 일으켜 세워 농사를 지으시겠다고 선언을 하셨는데 필요할 때마다 영길이 녀석을 호출해서 농사일을 시키고 있었다. 거기서 얻은 것으로 보였다.
“ 뭐 이런 걸 다. 아무튼 잘 먹을게.”
어색하게 녀석의 두 손에 있던 봉지들을 받아 들었다.
“ 형 집도 참 오랜만이네요. 형 집은 와보면 언제나 앞이 탁 트여있어서 너무 좋아요.”
우리 집 앞에 골프장이 있어서 많이는 아니지만 골프장 뷰를 볼 수 있는 집이었다.
“ 이쪽으로 앉아. 고기 거의 다 익어간다.”
녀석은 소파 앞에 앉았다. 삼겹살인지 우삼겹 인지 알 수 없는 고기들은 익어가고 있었다.
“ 영길이 왔구나. 오랜만이다.”
주방에서 반찬을 챙겨 오던 주현이가 영길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 누나 오랜만이에요. 나중에 입 심심하실 때 옥수수 삶아서 드세요. 헤헤.”
주방에 놓인 검은색 봉투를 손으로 가리키며 주현이에게 옥수수를 인식시키는 녀석이다.
“ 그나저나 포털아트 가기로 했는데 언제 가야 할까?”
거의 다 익어가는 고기를 가위로 자르며 영길이에게 일정을 물었다.
“ 저야 언제든 괜찮아요. 갈 때 선생님도 같이 가야 하지 않을까요?”
주현이가 가지고 온 기름장을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나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 내일은 좀 그렇고 선생님하고 통화하고 모레 즈음에나 한 번 가볼까?”
“ 그래요. 모레에 같이 가 봐요.”
그렇게 포털아트에 가는 약속을 잡았다. 몇 달 전부터 우리의 방문을 희망했지만 바빠서 도통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대화를 계속해보니 영길이가 다시 물류로 돌아오고 나서 페이는 십만 원 정도 올라 백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정도를 벌고 있었다. 결혼도 해야 하고 녀석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분배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동생들에게 물류를 나누어 주고 나온 나의 뜻은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았다. 은식이는 일원이 되지 못하고 다른 물류를 혼자 하고 있었다.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 영길아. 너 그냥 형이랑 같이 다니면서 조명 일 안 해볼래? 물류보다 돈을 확실하게 많이 벌 거 같은데.”
한 달에 열흘만 해도 백만 원 이상은 벌 수 있었으니까 차라리 작업을 하면서 일도 같이 다니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리 팀도 나까지 세 명 밖에 없으니까 원래 한 두 명 더 필요한 거거든. 막내 페이가 12 만원이니까 오버 차지까지 하면 물류보다 나아.”
일을 한지 석 달이 넘어가면서 순차적으로 페이가 들어오고 있었는데 꽤 짭짤했다.
“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생판 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데...”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나도 세종이가 있어서 시작할 수 있었다.
“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일도 나한테 배울 텐데. 그리고 같이 다니면 좋을 거 같아 운전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이번에 졸음운전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정말 혼자 운전하고 일을 다니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 그럴까요? 고민 좀 해 볼게요.”
내 말이 먹혔는지 처음보다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같은 스케줄로 일을 다니면 운전만 번갈아 가면서 해도 그게 어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레 같이 포털아트를 가기로 하고 적당히 술을 나누어 마신 영길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뭔지 모를 이상기류에 휩싸인 기분에 상기된 채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