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영업.

85화. 영업.

by 번트엄버

85화. 영업.


어떠한 성적표를 받아 올지 당장 오늘의 영업 수입만 보고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내일은 더 꼼꼼하게 내가 하나하나 더 확인하고 이해를 하며 거래처들을 돌아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주 두 주가 지났고 반품이 나오는 양은 애초의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주말을 앞두고 7 박스나 되는 반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꼈다.

“ 생각보다 쉽지 않지? 처음이 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어떻게 다시 대학교 매점에 다가 말이라도 잘해봐.”

 진짜 작전을 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반품이 많이 늘어난 것이 내 잘못만은 아니었던 것이 신제품이 나와서 본사에서 물건을 계속 밀어대는 통에 더 많은 반품이 나오게 되는 상황을 불렀다.

광고 한 번 안 하는 제품은 사람들이 알리도 없고 더군다나 먹을 리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고 해도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우리 같이 밀려 들어오는 제품을 감당해야만 하는 중간 상인 상황은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광고를 비판하던 작가가 절실하게 광고를 잘 좀 해달라고 본사에 말하고 싶어지고 있었다. 영업이 내 일이 되다 보니 광고주의 입장도 이제는 내심 이해가 갔다.

소화가 잘되는 우유라고 신제품이 나왔는데 회사는 이 제품을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제품이 팔리지도 않고 넣는 족족 반품이 되어 나왔다. 커피에 넣을 수도 없는 제품이어서 딱히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광고 일을 할 때 찍었던 제품도 아직 인지도가 있지 않아 다른 요구르트 제품에 밀려 나오는 반품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정말 답답했다. 소화가 잘되는 우유는 한국 사람들에게 정말 잘 맞는 제품이었기에 답답한 마음은 더했다. 락토 성분을 제거해 빈 속에 먹어도 설사를 하지 않는 제품으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그래서 사장님과 작전을 세워야 했다. 학교 매점에 납품하는 상품을 다양하게 늘려 주면서 날짜가 쳐진 제품들을 넣는 작전이 그것이었다. 나중에 안 팔리고 나온 반품들을 교회 권사님이신 실장님에게 넘겨주는 것이 일종의 조건이었다. 교회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날짜가 지난 것이 나와도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작전을 세우고 사장님과 따로 물건을 싣고 가는 일을 해야 했다. 뭔가 대대적으로 두 사람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말을 잘해 매대도 넓게 받게 됐다.

다행히도 상황은 우리가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을 이렇게 바꾸고 나서 동선까지 다 바꾸어야 했다. 매점을 가장 나중에 들어가는 식으로 바꾸고 양상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데 걸린 시간은 두 달 정도였다.


7 박스의 반품을 경험한 나는 예전의 우유 일을 처음 접했던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두 달을 훌쩍 넘긴 나의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사장님이 두 달에 한 번씩 10 만원 씩 월급을 올려 준다고 약속을 해줬다. 그리고 매출이 많이 늘어날수록 시켜주는 회식은 한 달에 두 번 정도였다. 내가 업무를 이해하고 잘하는 만큼 반품이 줄면서 매출의 신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본인이 아마도 제일 잘 알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달 만에 170 만원으로 시작한 나의 월급은 180 만원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요령이 생기니 거래처를 도는 시간은 점점 빨라졌다. 내가 주어진 업무를 빨리 끝내는 만큼 거래처의 양도 빠르게 늘어갔다.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점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없던 상권이 생겨나는데도 장사는 잘 되었고 스물두 개 정도였던 내 거래처는 어느덧 서른 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커피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거래처는 더욱 빠르게 늘어났다. 없던 매출들이 생겨나니 벌어 들이는 수입도 많이 증가해 갔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오는 만큼 나의 월급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월급이 200 만 원 정도가 되는데 6 개월이 걸렸다. 전보다 수입이 많아지니 저축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포털아트는 둘로 쪼개졌다. 경영에 불만을 품은 장 실장님과 상무의 감정의 골이 커지면서 장 실장님이 회사를 나오면서 새로운 회사를 세운 것이었다. 나로서는 상무보다 장 실장님이 작가 편에서 자신의 입장을 세웠던 분이셔서 더 믿음이 갔다. 안양에서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장 실장님을 신뢰했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장 실장님을 따라 포털아트를 이탈했다.


화실 선생님은 예술인 복지법의 도움을 받아 친구 분과 함께 지원 기금을 받게 됐다는 소문이 전해져 왔다. 나더러도 신청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와 주현이는 근래 들어 활동을 한 이력이 없어서 자격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활동을 해 왔는데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하여도 그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잘 증명해서 지원금을 받는다고 한들 내손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면 한 없이 내 신세가 한심하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까지 무력해지고 싶지 않았다. 정책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 실장님이 우리 작업실 근처에 사무실을 냈다며 찾아왔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해 달라고 주문해 왔다. 월세를 안내는 작업실도 생겼고 그림 스타일을 바꾸면 자기가 잘 팔아 보겠다는 사람도 생겼는데 좀처럼 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주현이는 이렇게 저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작품을 잘 팔고 있었다. 영길이도 옮긴 곳에서도 작품을 잘 팔고 있었다. 나만 그림을 그리지도 팔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어디 가고 나의 현실은 어느덧 일에 치이며 사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불타올랐던 나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어느덧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저 일하고 집에 와서 맛있는 안주나 만들어서 술이나 한 잔 하고 보고 싶은 거나 챙겨 보면서 그전보다는 가벼운 영혼에 만족하며 현재를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왔다. 결혼을 한지 벌써 일 년 반을 넘겨 이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계속 불안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이를 만들고 낳을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불안한 환경에서 나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책임한 부모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장과 동료들도 생겼고 주현이도 그림을 그려 잘 팔며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상황만 보면 전보다 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림을 참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마치 직장에 출, 퇴근을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지금 잘하지 못하고 있는 그림을 그녀는 너무 잘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열정과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 그래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나의 꿈과 마찬가지로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일상을 보내는 것이 그녀의 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꾸는 일상을 즐기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이 나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노력이 많은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어느덧 나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서 다시 작업을 하고 있는 일상들이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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