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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엄버 Sep 15. 2022

61화. 작가 공모.

61화. 작가 공모.

61화. 작가 공모.


 이듬해 봄에 공모가 있었다.

 팀 프리뷰라는 대안공간에서 기획한 작가 공모였는데 나와 주현이 그리고 영길이까지 선정이 되었다. 셋이 동시에 되다니 너무나 신기했다. 성곡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오래 한 기획자는 신인작가들의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많은 전시들을 기획했고 또 실천했다. 그 덕에 우리 셋은 내 클러치가 예민한 엑센트를 타고 압구정동이며 홍대며 신촌 등등을 누비고 다니며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수많은 기획전은 작품을 열심히 하는데 동기 부여가 됐다. 소품들은 팀 프리뷰 전시를 통해 계속 전시되고 있었고 대작들은 청담동 갤러리에 계속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단원 미술대전 공고가 떴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선정 작가전으로 기획을 했고 많이 뽑지 않는 대신에 주어지는 점수가 꽤나 컸다.

 다른 공모전과 달리 선정 방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작가 인터뷰도 있었고 작품수도 많아야 했다. 선정이 되면 부스 개인전이라는 특전이 주어지는 공모전이었다. 오랜 시간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공모였다.

 주현이와 나는 올해는 이 공모전에 주력하기로 결심했다. 작품들도 대작들 위주로 준비를 했다. 지난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트베이징에 출품할 작품들도 해야 하고 단원 미술대전도 따로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때그때마다 있는 팀 프리뷰 전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도중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방송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족사됐다고 떠들더니 나중에는 유서가 발견됐다며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언론에서 쏟아져 나온 일이었다.

 정신없이 물류 일을 하고 있던 오전에 라디오를 듣고 온 기사 형들의 말로 처음 소식을 접했는데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투표권이 처음으로 생겨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한 그것도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로 선거에 참여를 해서 당선된 나의 첫 투표로 대통령이 되셨던 분이다. 부대를 나와 줄을 서서 투표를 해서 당선된 내가 처음 투표를 한 대통령이 자살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나는 집을 나와 살며 작품을 하며 지내오는 동안 그림만 그리느라 평소에 뉴스도 따로 챙겨 보지 않았고 작업실에는 텔레비전 또한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저 인터넷 뉴스로 논두렁이니 뭐니 하며 가족들까지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기사를 접했던 게 다였고 그나마도 기사를 잘 읽지 않아서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검찰 조사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작업실 생활만 해온 나는 티브이나 뉴스도 잘 보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이나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눈물이 났다. 외로웠을 그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그날은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니 나는 그저 그전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멍해진 채로 그저 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아트 베이징에서는 별다른 성과는 없었는데 중국 내 3대 옥션이라는 폴리 옥션에 출품한 내 작품들은 모두 낙찰이 되었다. 갤러리를 통해 확인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본 결과였다. 기분도 좋았지만 뭔지 모르게 조금 꺼림칙했다.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전혀 낙찰이 되지 않아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작품은 실제도 낙찰이 된 것이 아니라 낙찰을 시도해서 다른 입찰을 유도 하 기 위해 일부러 첫 번째로 관계자가 낙찰을 한 것처럼 유인한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든 내 작품을 낙찰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내가 느껴야 하는 아쉬움과 허무함은 오롯이 내 몫이 되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중국 경매에서도 잘 나가는 작가가 되어야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류가 잦았던 화가들이 나를 처음에는 존중하는 척해주었지만 나중에는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작품은 드라마에 협찬을 하는 일도 생겼다. 드라마를 찍는 와중에 작품을 몇 번씩 옮기고 나르느라 고생 꾀나 했다는 큐레이터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알았다. 홍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돈을 받는 일은 없었다.

 경매에 나갔던 작품들이며 아트 베이징에 나갔던 작품들도 일단은 갤러리에 키핑을 해놓기로 했다. 수시로 드나드는 바이어들에게 보여 주기도 하고 내년에 있을 뭄바이 전시에도 작품이 나가야 하 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원 미술대전에 내야 하는 작품들은 기존 몇 작품 말고는 다 새로 그려야 하는 것이었다.


 잠을 많이 잘 수가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작품에 노예가 된 듯했다. 그 숫한 나날들이 보내고 난 나는 단원에서 우수상을 주현이는 입선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모든 상의 수상자가 50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이룬 쾌거였다. 상금도 100만 원이나 받게 되었다. 

 우리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 굵직한 경력들을 쌓아나가고 있었지만 미술계며 자본시장의 흐름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박수근 위작사건부터 한국미술협회 비리 사건에 이중섭 작품 위작 등등의 사건들로 미술계는 악재의 연속이었고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술품 거래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를 위기로 몰고 있었다. 제2의 한국 미술계의 르네상스니 뭐니 하던 말들도 쏙 들어갔다. 그저 힘이 없는 일개의 화가는 그저 하던 그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와 주현이의 선정 작가전 선정 소식을 작가 모임 친구들이 축하해 주었다. 작년 말에 치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같이 하면서 주현이도 우리 작가 모임에 회원이 되어 있었다.

 KYA의 모임이 그러던 중 잡혔다.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새마을 식당이라는 프랜차이즈 주점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불고기가 맛있다고 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승무는 요즘 커피숍 프랜차이즈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색약이 있어서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고 말한 승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아는 형님 중에 프랜차이즈 사업을 몇 개 하고 있던 분이 계신다고 일전에 말을 했었다. 커피 전문점도 이제 막 시작을 했다고 했다. 오늘 가는 식당도 그분이 하는 계열사라나 뭐라나. 

 올해 들어 험악한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는데 올 초에는 용산에서 경찰과 시위하는 사람들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일부 시위 참가자와 경찰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고 얼마 전에는 쌍용자동차 노조들을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을 당하면서 사상자들이 속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그런가? 흉흉한 일들로 나라를 어수선하게 했다. 작년에는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는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하기도 했었다.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는데 오늘 시청역에서 내려서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는 시위대와 경찰들 차벽을 보면서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첨예한 대립각을 난생처음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긴장감. 왜? 무슨 이유로 집회를 하는지 나는 그때도 잘 알지 못했다. 모임에서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에도 사회적 이슈는 없었다. 대학원에 진학을 한 친구들은 전시며 진로에 목을 매고 있었고 개중에는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었으며 각자의 삶과 개인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었다. 시청 앞 시위대가 그리 멀지 않은 호프집에서 2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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