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조명장비.
73. 조명장비.
“ 주민이 형. 장비 다 꺼내 놨으니까 커피 한 잔 하고 해요.”
세컨드 녀석이 말을 건넨다. 일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도 기회가 많지 않아 날을 기다려 왔는데 오늘은 조금 배울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 오늘은 시간 많이 나면 조명 좀 배울 수 있는 거야?”
한 달 동안 배운 거라고는 선 감는 것과 기본적인 장비 구성 정도였고 왁구와 필터에 표시가 된 것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 그래야죠. 오늘 시간 많으니까 필터랑 왁구 망가진 것들 정리하면서 가르쳐 드릴 게요.”
처음에 조명 일을 나왔을 때는 이렇게 치열하고 힘든 현장인지 미처 몰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졌고 연달아 일이 있는 경우에는 며칠씩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쉽지 않은 직업군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 커피 한 잔 하시고 식사 안 하셨으면 밥 차 가서 컵라면 하나 드세요.”
촬영장은 대부분 밥 차들이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오늘 같이 세트장 일 때도 그렇고 로케이션 때도 정말 이동이 많거나 주변 시설이 어려울 때 말고는 밥 차는 언제나 촬영장에 존재한다. 아침 식사 전에 배가 고픈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토스트나 컵라면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밥 차라고도 부르고 케이터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아냐. 나 밥 대충 먹고 왔어.”
물류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여 라면 하나를 먹고 나온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 것 같고 오전 내내 컨디션이 올라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라면이지만 식사를 늘 하고 나오는 편이다.
시원한 공기와 커피와 그리고 담배는 최고의 조합이다. 계절은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아직 새벽 공기는 찼다.
“ 주민이 형. 결혼하신다고요?”
퍼스트가 와서 말을 건다. 세종이 퍼스트는 키가 거의 나만한데 무거운 장비를 많이 들고 다니는 걸 봐서 그런지 내가 봤을 때 내심 나보다 기운이 좋아 보였다.
“ 어. 이제 석 달도 안 남았네. 요즘 정신없다. 이것저것 한다고.”
결혼식 준비는 주로 주현이가 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일들의 의사 결정을 내가 해야 했기에 쉬는 날이면 일을 보러 다니기 일쑤였다.
“ 예전에 세종이 형도 그림 그리셨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형님 도 참 대단하십니다. 쉬는 날 잘 쉬는 것만도 부족한데.”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일부러 라도 해야 했다.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으면 그림은 절대 그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직업인데 뭘. 지금까지 그림 그리면서 투 잡이 아닌 적이 없었다.”
투 잡이 아니라 쓰리 잡을 해서라도 주현이와 그림을 그리면서 온전하게 사는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이다.
“ 오늘은 형. 장비 세팅 들어가면 별로 할 일이 없을 거예요. 장비 정비도 같이 하자고요.”
그놈의 장비 정비 좀 했으면 나도 좋겠다. 왁구들 들고뛸 때마다 얼마나 창피한지 모르겠다. 스케줄이 거의 매일 같이 있다 보니 너덜 거리는 왁구들을 정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우리 사무실이 다른 회사보다 일이 많은 이유가 따로 있었는데 다른 조명 감독들의 고령화와도 관련이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욱이 형과 같이 동업을 하는 카메라 감독들이 회사 창업과 동시에 장비에 자금을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장비를 많이 쓰면 쓸수록 본인들이 가져가는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일을 무조건 욱이 형 회사에 몰아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서로 윈 윈 할 수 있는 접점을 잘 찾아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욱이 형은 거의 조명 감독 중에 일이 많기로는 탑을 찍어가고 있었고 광고를 찍는 수준도 거의 최고의 프로덕션의 광고만 도맡아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최고로 일을 많이 하는 회사인데 장비가 엉망이니 그것도 아이러니였다.
“ 그래. 오늘은 정말 장비 좀 정비하자.”
담배를 마저 피우고 우리는 세트장 안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때마침 세종이가 도착을 했다. 차를 주차하고 우리를 봤는지 바쁜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 야. 상희야. 판 라이트 다 되는지 확인해봐. 그리고 키노랑 10킬로, 5킬로. 대도도 세팅해.”
판 라이트 쓰는 것을 오늘 처음 보겠다.
“ 그리고 스물 넉자 짜서 16분의 일로 씌워.”
키로로 부르는 수치는 와트를 의미한다. 숫자가 클수록 광량이 큰 장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까 주민이 형은 스물 넉자 짜고 계세요.”
상희는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라이트가 있는 쪽으로 갔다. 작은 라이트들은 램프를 빼지 않고 보관하는 반면, 큰 라이트들은 램프를 따로 빼서 관리를 한다. 고가의 장비인데 아무래도 안에 넣어 놓으면 충격에 깨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램프는 탑 차 운전석 뒤쪽 공구 상자 속에 안전하게 보관이 되어있다. 상희는 세종이 말대로 판 라이트들을 다 꺼내서 문제가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얼마 전부터 학교가 방학이라며 일을 나오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 녀석은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연출을 전공하는 녀석인데 조명 알바를 왜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관심이 많아서 인지 관련 지식이 많았다. 오늘도 나와 함께 막내로 나왔는데 막내 페이를 받기에는 일을 너무 잘하고 잘 알고 잘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이종현이다.
“ 주민이 형. 내가 탑 차에서 연결 대하고 천 가져 올 테니까 형은 파이프를 옮겨줘요.”
대체로 퍼스트와 세컨드는 조명장비를 만진다면 우리 같은 막내나 써드는 천이나 왁구를 이동시키거나 하는 허드렛일을 한다. 그래서 왁구나 고보, 필터들의 유무 상태와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실장님. 판 라이트 다 잘 들어옵니다. 어떻게 세팅할까요?”
상희가 라이트를 다 켜봤는지 세종이에게 말을 건넨다.
“ 그래? 잘 됐네. 몇 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전에 안 켜진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세종이는 안심을 하고 있었다.
“ 영준이가 전에 한 번 사 왔다는 말을 들었어요. 안 되는 것들은 고치려고 사무실에 빼놓은 거 같아요.”
영준이는 욱이 형네 퍼스트이다. 아마도 촬영이 있는 날 그리고 없는 날이라고 할지라도 이 두 녀석은 뻔질나게 통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장비 때문이다.
“ 바 내려서 판 라이트 세팅해. 안 쪽에 라이트 세팅하고 천은 밖에 바에다가 설치하고.”
설명을 들어보니 라이트를 안쪽 바에 설치하고 바깥쪽 바에는 천을 걸으라는 지시였다. 다른 촬영 때에는 스탠드에 세워서 천을 설치하라고 했었는데 천정에 바들을 전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 천을 맬 수가 있었다. 세트장도 바를 이용해서 조명하는 것을 보는 것도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 안전핀 꼭 채워라. 지난번처럼 사고 치지 말고.”
판 라이트를 바에 걸고 코드를 연결하고 라이트 하나하나에다가 안전핀을 설치해서 바에 매단다. 고정 장치가 따로 있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