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가보자.
83화. 가보자.
1 리터 짜리 시유 포장을 하는 양은 내가 얼마 만큼 넣을 건지를 잘 계산해서 포장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업무 이해 수준이 떨어짐으로 사장님이 결정을 해 준다. 모든 물량은 사장님의 철저한 계산대로 주문하고 차에 싣는 것도 사장님의 감으로 한다. 아직 내가 결정하고 납품할 만한 능력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길이나 잃지 않고 잘 찾으면 다행이었다.
물건을 다 실을 때쯤 되면 남양 영업소 사장님이 오신다. 행사용으로 쓰는 요구르트 두 박스와 불가리스 3 박스를 주시고 바나나 우유 2 박스와 매일 제품을 가지고 가신다. 서로 행사용이나 주력상품을 교환하는 것이다. 긴밀하게 공조하는 변방의 삼사는 서로에게 협조적이다. 서로의 거래처를 뺐으려 하지 않고 서울 우유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남양에서 물건을 받고 나면 나는 빙그레 영업소로 간다. 거기서 나도 바나나 우유와 요플레 그리고 쾌변 한 박스를 받는다. 전날에 미리 사장님이 오더를 넣은 것들이다. 그리고 우유 속의 시리즈 제품과 남양에서 받은 불가리스를 내어 준다. 우유 속 시리즈는 그나마 매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다. 이 물건이 있기에 그나마 공조에 매일도 낄 수가 있는 것이다.
빙그레 영업소에는 일하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우리가 소재한 지역은 시흥인데 당시 시흥은 확장되어 가는 도시였다.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며 입주를 계속해서 하고 있어서 거래처가 늘어날 공산이 컸는데 빙그레 사장님은 공격적으로 거래처를 늘리고 계셨다.
빙그레에서 물건을 받고 나면 본격적으로 거래처 매장을 돌아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출발을 한다. 빙그레 영업소를 떠나 5 분 정도 가면 첫 번째 거래처가 나온다.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작은 슈퍼다. 첫 번째로 가는 곳이기에 언제나 이른 시간이다. 슈퍼 문을 열자마자 방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트들은 9시 정도에 오픈을 한다. 대형 마트는 10 시 정도에 오픈을 하는데 그 시간도 잘 조절해야 한다. 첫 번째 마트의 특이점은 마트는 작은데 행사용 요구르트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렇게 작은 슈퍼에는 행사 물건을 거의 주지 않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사장님이 계속 요구르트를 납품하고 있었다. 행사 제품은 거의 마진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PDA를 부팅시킨다. 전산이 정상화되면 마트들 이름들이 다니는 순서대로 정렬이 된다.
마트에 들어가며 사장님과 목례로 인사를 나눈다. 우리 물건이 진열되어있는 냉장고를 찾아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날짜를 꼼꼼하게 확인을 한 후 얼마나 물건이 빠졌는지 날짜가 쳐지는 물건은 없는지 확인한다. 하나하나 확인을 해보니 요구르트와 바나나 우유 그리고 가공우유 몇 개만 넣으면 될 것 같았다. PDA에서 출력을 한 영수증 하나는 가지고 다니는 집게가 있는 서류 노트에 철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영수증을 들고 차에 들어가서 물건을 찾아 넓은 팔레트에 물건을 보기 좋게 담아와 사장님과 물건이 맞게 들어가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영수한 금액을 현금으로 받는다. 받은 현금은 조끼에 잘 넣어 보관하고 그 금액은 일일 정산을 할 때 서류에 기입해야 한다. 거래처를 다 돌고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금액을 맞추어 봐야 하기 때문에 영수증과 기입장을 따로 잘 관리한다.
이렇게 처음 혼자 마트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자 다음 거래처로 가 보자. 다시 큰 도로로 나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장 골목 같은 곳이 나오는데 그 골목에 거래처가 두 군대 있다. 사장님이 만들어 놓은 동선은 마트 오픈 시간 때를 맞춰 놓았다고 했다. 나는 오늘 혼자 돌아야 하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천동 일대를 다 돌고 나면 기사식당에서 사장님을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시간에 맞게 돌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간이 안 맞으면 혼자 드시고 가라고 해야지 뭐 별수 있겠는가?
세 번째 거래처 사장님은 꼭 본인이 운용하고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빼내어주신다. 사장님과 그리고 그 전 직원과 했던 습관적인 일들을 나한테도 똑같이 해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땀을 조금 식히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잠시 잠깐의 여유를 갖는다.
마트를 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하는 골목에 있는 언덕이 가파르다. 수동 기어를 작동하는 운전자에게는 늘 부담스러운 것이 언덕 오르막길이다. 중간에 멈출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반대쪽에서 차가 오는 일이라도 생기면 차를 멈춰야 하 기 때문에 언덕에서 멈춰진 차를 다시 달리게 하려다가 시동을 꺼먹은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언덕을 넘을 때는 언제나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 엑센트를 탈 때 생긴 트라우마는 쉽게 없어지진 않았다.
높은 언덕을 지나고 좁은 지하도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언덕을 오르고 나면 다음 거래처가 나온다. 도로 위에 좁은 공간에 위치한 작은 슈퍼다. 아주 작은 일로도 전화가 오는 거래처라 신경을 쓰라는 말을 들었는데 80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아주 작은 슈퍼였다. 이곳에선 200미리 우유와 바나나 우유가 잘 나간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화물차를 잠시 멈춰 세워놓고 허기를 달래거나 담배를 사는 곳이다.